서울 
광주 
▲ 명리학자 김태규 칼럼니스트 ⓒ스카이데일리
얼마 전부터 상담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한 아주머니로부터 간곡한 요청이 있어 그분 아드님과의 상담에 응했다. 대학 1학년에 다니는 청년이었는데 도랑도랑한 눈빛만으로도 총명한 자질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슨 걱정이 있고 갈등이 있으신가 하고 물어보니 의대를 가고 싶어서 재수를 했지만 실패했고 이공계열에 진학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 흡족하지 않고 해서 한 번 더 도전해볼 것인지 갈등이라고 했다.
생년월일시를 통해 뽑은 사주를 보니 청년의 갈등과 고민은 물론이고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청년의 운세 흐름을 보니 이제 더 이상 극도로 긴장하고 집중해서 입시에 도전해보는 것은 무리이고 억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너는 이제 싸우는 일이 싫어졌다”며 “기를 쓰고 악을 써가며 또다시 힘들게 입시경쟁 판에 뛰어들 자신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청년은 수긍하는 몸짓을 보였다.
이어 이젠 입시가 아니라 조금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활을 해보고픈 데 한편으론 또 이대로 주저앉아도 되는가 싶은 생각에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청년은 웃음과 함께 긍정했다.
세상에 백 프로 만족하는 상황은 없는 법이니 이 정도에서 현실을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하고 물었다.
의대를 목표로 했던 것이 빗나갔을 뿐 사실 이공계열 자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대학생활을 통해 삶의 가치관을 잘 정립해보고 싶다는 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 나이에 내성적이고 총명한 청년이라면 당연히 가질 법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시 감싸주는 말투로 얘기해줬다.
가치관이란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사람을 포함해서 무언가에 대해 주관적으로 값을 매기는 시스템이 아니겠냐는 얘기로 시작했다.
그런데 자네는 아직 학생 신분으로서만 살아왔을 뿐 사회생활, 즉 사람들 사이에서 밥벌이하는 생활을 해본 적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대학을 다니면서 튼튼한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학생 신분일 적엔 물론 성적을 놓고 다투는 경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동기나 급우들은 기본적으로 친구로서의 측면이 더 크다. 하지만 세상에 나가 활동하다 보면 모든 이가 친구이자 적 혹은 라이벌이란 말을 해줬다.
일을 통해 만나는 모든 이를 적이나 라이벌로 여긴다면 사는 것이 너무 비정해질 것이고, 그렇다고 오로지 친구로만 여긴다면 언젠가 배신의 쓰라림을 겪게 된다는 말을 해줬다.
내 얘기인즉 아직 학생인 관계로 세상의 나머지 모습을 미처 겪고 보지 않은 상태에서 나름의 좋은 가치관을 정립하기란 아직 시기상조란 얘기, 아울러 가치관 역시 하나의 가설이고 모델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살아가면서 부단히 수정되고 정정해가야 하는 것이지 특정한 시점에서 이거다 하고 확립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곁들였다.
이에 청년은 명쾌하고도 싹싹하게 공감하고 긍정해줬다. 내 말에 흥미를 느끼는 눈치라서 좀 더 얘기를 이어갔다.
인간 세상이 어떠하다는 것에 대해 대략적인 감을 잡을 때가 되면 이미 나이가 사십 중반이라는 것, 하지만 살아오면서 보니 체내 호르몬 변화와 함께 그 또한 중년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말도 해줬다.
그러니 가치관이란 것 역시 삶을 어느 정도 마감하는 시점에 이르러 각자 나름의 최종 버전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는 얘기도 했다. 또 그런 것은 정답을 찾는 문제와는 다른 성질이란 얘기도 곁들였다.
가치관의 문제는 학생 시절 늘 해야 하는 과제, 즉 문제풀이에서 정답 혹은 정해(正解)를 찾는 것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문제라는 얘기를 해준 셈이다.
청년은 상담과 대화가 나름 흥미로웠던 모양인지 그 사이에 불편한 마음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았다. 이에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작업실을 떠나갔다.
혼자 생각에 잠겼다.
가치관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는 것은 한 인생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나 호호당 역시 어언 한 세월 살아보니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생각 자체가 늘 변해왔음을 느낀다. 이는 비단 나 호호당 혼자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라 여긴다.
예전 40대 시절 중국에서 지낼 때, 서울로 돌아가서 집에서 라면 두 개 끓여서 식은 밥 한 공기 거하게 말아먹을 것 같으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기억이 난다.
객지에서 고생을 좀 해보니 잘 산다는 것이란 결국 일시적이라 해도 욕망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되는 삶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 하지만 그 또한 일시적일 뿐 욕망은 끊임없이 새롭게 생겨나고 반면에 현실의 제약을 받게 되니 잘 사는 삶이란 생각 자체가 신기루와 같은 것이란 생각도 들곤 했다.
이에 다시 그로부터 세월이 2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은 또 다르다. 그럭저럭 지내는 삶이 잘 사는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삶의 흐름은 그 어떤 이도 순탄하지 않고 순조롭게 이어가는 법이 없다. 그 어떤 사람도 당신의 지나온 삶을 얘기해보라고 멍석을 깔아줄 것 같으면 책 세 권 분량은 나온다는 말이다.
모든 스토리에는 당연히 기승전결이 있고 엔딩이 있다. 다만 우리의 삶은 숨을 쉬고 살아있는 한 아직 최종 엔딩이 없을 뿐이다. 하지만 기복이 있고 우여곡절이 있으며 때론 파란만장한 사연들로 점철되기도 한다.
영광의 세월이 있을 것 같으면 그 반면에 굴욕과 좌절의 시간들 그것도 때론 대단히 길게 이어져가는 힘든 구간도 있는 우리의 삶이다. 여기에 예외가 없다. 그렇지 않은 사람 있는 것 같아도 그건 그저 그 사람의 자세한 사정 모르는 타인의 시선에서만 그러하다.
잘 살아보고자 애쓰는 것이 잘 사는 것이지 달리 잘 사는 것이 있으랴 싶다.
그 총명한 청년이 다녀간 후 혼자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지었다.
그 청년이 장차 겪게 될 영욕의 세월이 대충 어떻게 전개되리라는 것을 엿보고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저 앳된 얼굴에 서리가 내리고 등이 굽어갈 것이라 생각하니 한숨짓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김태규의 희희락락호호당
http://www.hohodang.com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