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서 가난한 고령 남성들의 삶의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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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최현숙의 <할배의 탄생>

가부장 남성의 정상적 규범을 찾아간 빈곤 남성들의 생애사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7-01 10:11:35

▲ 문화평론가 정현 ⓒ스카이데일리

혐오 발언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가장 흔하게 회자되는 말이 바로 ‘꼰대’다. 한동안 20대를 향해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는 비판이 가해지기도 했다. ‘20대 개새끼론’이라 불렸던 이 혐오표현에 거울이미지가 된 것이 바로 꼰대, 혹은 ‘K저씨’라는 표현이다.

탄핵 국면에서 태극기 집회를 주도한 노년층을 향해서도 유사한 혐오표현이 나타났다. ‘틀딱’이라는 이 표현은 ‘틀니를 딱딱거린다’를 뜻하는 것으로 노년층의 정치적 시위 자체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됐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정치적 행위에는 평가가 수반돼야 한다. 문제는 꼰대와 틀딱 등의 혐오표현이 오히려 정치적 평가 자체를 차단한다는 점이다.

할배는 ‘가난한’ 고령층 남성을 지칭하는 말

지은이의 문제의식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꼰대라고 부루는 노년층 남성의 삶은 어떠한 것인가. 꼰대라는 말이 그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혹은 ‘할배’라는 존재는 특정 연령대 안에서도 특수한 계층들을 지시하는 것은 아닌가. 지은이는 이미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80대 여성들과 60~70대로 가난한 여성들의 생애사를 연구해 출간한 연구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꼰대 혹은 할배라 불리는 이들은 대체로 가난한 노년층 남성이다. 부유한 재벌가나 상류층의 노인들은 회장, 대표, 사장님 등 사회지도층을 암시하는 여타의 지위들을 갖고 있으며 언론에서도 이들의 풍요롭고 신사적인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반대로 지은이는 빈곤의 생활환경을 바탕으로 70 평생을 살아온 두 명의 남성들을 인터뷰 대상으로 한다. 가난한 시절 모두가 배움에 목말랐지만 이들은 가난으로 인해 초등학교만 나온 후 생계노동을 시작했다. 한 명은 양복재단사로, 다른 한 명은 목수로 본인의 생계를 시작했지만 그들에 따르면 당시에는 노력하면 먹고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 때였다.

그들의 삶은 한국현대사의 질곡과 함께 변화했다. 손으로 직접 노동을 하고 생계를 보장받던 그들의 삶을 1차적으로 흔든 것은 ‘산업화’의 물결이었다. 양복재단사의 길은 양복재단업에 재벌기업들이 손을 내밀면서, 목수의 길은 아파트 건축과 거대 건축사들의 부상 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난한 남성들의 정상성을 향한 여정

이들의 삶을 특징지은 핵심적인 것 중 하나는 가부장적 남성규범에 대한 추구였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사회의 변화 속도를 가속화했다. 이 가속화된 변화 속도에서 사회의 규범을 주도한 것은 부유한 엘리트층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빈곤층은 변화에 뒤쳐진다는 불안과 함께 엘리트층에 이해 주도되는 규범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이게 된다.

예컨대, 도시의 ‘핵가족’이라고 불리는 가족모델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핵가족의 기반이 되는 것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남성의 경제능력과 자녀양육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전업주부형 여성의 결합이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4인 가족 모델은 한국사회에서 ‘중산층’ 가족의 모형으로 회자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빈곤층의 삶은 먼저 이러한 가족 모델에 융합될 수 없었다. 남성들의 노동이 가족생계를 일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못했고 여성들은 자녀양육과 생계노동의 이중고를 경험한다. 오늘날 중산층 가족의 이미지를 완성시켜 주는 것이 ‘아파트’이듯, 국가 차원에서 생산해 낸 가족모델들은 자가주택에 기반한 정주 모델을 취하기 마련이다.

반면, 인터뷰에 응한 빈곤 노년층 남성들의 삶은 끊임없는 이동의 모델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목수를 했던 이영식(가명) 씨는 가정을 꾸리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김용술은 동거와 성매매를 반복했고 이혼을 경험하며 거주지를 숱하게 바꾸기도 한다. 이들은 정주가 아니라 이동하는 삶을 선택했고 사회가 주입하는 규범적 가정의 모델과도 분리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들의 이동이 국가와 사회가 주도한 경제발전과 사회변화의 모델을 거부하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은 본인들이 못 배운 게 평생의 한이었다고 한다. 당시에 배움은 사회의 주류로 편입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그들은 ‘군대’에 가서 남자가 돼야 한다고 느꼈고 본인들의 노동경험과 달리 오늘날 청년층의 ‘유약함’을 비판한다.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아야 강박은 사회 주류층에게는 발견되지 않는 심리다. 할배 혹은 꼰대라는 말의 역사적, 계층적 특성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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