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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은 오랜 기간 이른바 피를 나눈 혈맹 외교관계를 유지해 왔다. 6·25 전쟁을 통해 맺은 한·미 동맹 관계는 전쟁의 참화를 격은 세대들에겐 ‘형제의 우(友)’로 자랑스러움이 되기까지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서도 이 같은 양국의 동맹관계가 외견상 굳건히 재확인됐다. 당초 좌클릭 문 대통령과 우클릭 트럼프 대통령 간의 만남은 사실 기대보다 긴장을 넘어 조바심까지 갖게 했지만 예상외의 남다른 혈맹관계를 과시했다.
문 대통령은 ‘좋은 동맹’을 넘어 ‘위대한 동맹’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동맹을 위해 양국이 같은 길을 간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백악관 방명록에도 ‘한미동맹, 평화와 번영을 위한 위대한 여정’이라고 썼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우리에게 보여 온 막무가내식 행태를 생각하면 문 대통령의 행보는 예상을 넘는 파격이다.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좌행보 대통령이 과감히 미국 이기주의에 빠진 보수행보 트럼프에 아픈 고개를 숙였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한다.
미국주의 깃발을 내건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에게도 예외 없이 일방주의 행보를 거침없이 해 왔다. 사드 배치비용, 한·미 FTA 재협상,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을 놓고 노골적인 갑의 요구를 지속했다. 특히 트럼프는 FTA 재협상과 관련해 북핵 못지않은 태도로 우리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방미를 통해 혈맹을 넘는 진정성 있는 극진한 립 서비스와 40조(352억달러)에 달하는 한국 경제인단의 대형 선물보따리도 트럼프는 아랑곳 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북한문제에 관한한 한국에 일부 주도권을 주는 듯 했으나 여전히 북한이 우리를 미국의 곁방으로 보게 하는 태도는 솔직히 변하지 않았다. 한·미 정상회담을 불과 20시간 앞두고 하필 하루전에 예고도 없이 북한의 목줄인 돈줄(금융제재)을 죈 것은 정작 우리를 겨냥한 경고적 성격이 짙은 이중적 행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 ‘현대판 나치’ 같은 노선을 걷고 있다. 그는 순혈주의 못지않은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 노골적인 인종차별정책을 마다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배타적 미국주의 깃발을 나부끼고 있다. 마치 히틀러의 나치당처럼 자국민 중심의 절대가치를 내세우며 노동자 보호라는 명분도 휘날린다. 파쇼의 전형이었던 나치가 민족·노동자·농민을 내세워 전체주의를 노골화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 절대강국이라는 파워를 기반으로 현대판 파쇼적 행태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경제·군사적으로 감히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 지위에 있는 미국의 이 같은 포효는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아연 긴장시키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가 아무리 진보정권이라고 해도 미국의 힘 아래에서는 무조건 굴복해야 할 처지다. 그런 점에서 한·미동맹은 외견상 끈끈한 관계를 확인했다고 하지만 신뢰라는 든든한 다리가 흔들리는 살엄음판 위를 걷는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미국과 미국인을 위해 그리고 한·미 양국 간 혈맹관계의 백년대계를 위해 트럼프 행정부에 진정성의 회복을 요구하고 싶다. 작은 나라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자양분 삼은 미국 패권주의의 강화가 아니라 글로벌 세계전략에 대국다운 포용력과 너그러움을 반드시 녹여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죽하면 진보정권의 대통령이 수많은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들어가 미국과 미국인 전용의 ‘트럼프식 신작로’에 도움이 되는 다리를 깔겠다는 입장에 섰을까에 대해 혜량해 달라는 호소다.
미·소 냉전시절만 해도 미국의 약소국 또는 개도국에 대한 포용력은 컸다. 하지만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미국은 글로벌 절대권력에 안주한 채 포용력을 잃어갔다. 스스로 미국 자본주의가 전 세계 경제시스템의 맹주가 됐다고 자임하면서 자국 우월주의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에 풀무질을 한 레이거노믹스 조류가 미국 우선주의를 키웠다. 하지만 그것은 양날의 칼이었다. 실제로 미국의 글로벌 경제패권이 무소불위 권력이 되면서 미국 자본주의는 한때 큰 위험을 맞았다. 2008년 리먼 사태는 자아 도취된 미국 자본주의의 내적 폭발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스스로 돌아보지 않고 그 후에도 무한적자가 가능한 기축통화국의 무한권력을 기반으로 전 세계 경제우물의 수문을 더욱 단단히 틀어 쥔 채 금융(달러)패권의 지위를 더욱 견고히 쌓았다.
미국은 신자유주의라는 깃발이 나부끼는 글로벌 전체주의 국가로 나아갔고, 우리도 그 권력의 도그마에 빠져 충실히 그것을 따랐다. 속된말로 미국이 뭐든 하라고 하면 기침소리만 내도 다했다. 특히 지금의 FTA로 대변되는 다자간 무역라운드에서 우리는 행동대장으로 앞장섰다. 미국 주도의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경제클럽(OECD)에도 잇따라 가입해 안방 금고문을 열어 젖혔다. 군사정부 당시 1달러도 새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잠갔던 금융시장의 문을 개방한 것이었다. 결국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한 국제금융의 이리떼들은 우리 경제의 뼈와 살을 파먹는 IMF 환란의 막후 사냥으로 푸짐한 잔치를 벌였다.
그럼에도 IMF 이후 현 문재인 정부의 태동이 됐다고 할 김대중 정권은 물론 그 뒤를 이은 노무현 정부까지 미국 자본주의 최고를 외치며 쫓아갔다. DJ 당시 우리는 알짜 살림(기업)들을 대거 팔아치우면서 속된말로 미국 자본주의 만세를 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라는 메타포어엔 시장자유주의가 있고, 그 코어엔 무한 괴물인 통화주의가 웅크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조차 알면서 열심히 따랐다. 신자유주의 심부에 똬리를 튼 금융선진화의 화려한 장막 뒤엔 산업자본의 부가가치를 노리며 쉽게 약탈하는 전가의 보도 미국식 금융패권이 자리했고 우리는 그 희생양이 됐다. 지금도 트럼프는 FTA 적자 운운하지만 금융 등 서비스 부문이 빠진 이상한 계산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이런 역사의 아픈 과거와 굴레가 있음에도 여전히 미국 자본주의가 최고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한국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이식시킨 미국에게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은 보람이 될 것”이라는 말로 미국과 트럼프를 극진히 띄웠다. 나아가 전 세계에서 또는 아시아에서 미국 군대의 일원이 되는 약속도 다시 했다. 상황이 이 정도면 미국은 우리에게 아량을 베풀 때가 됐다. 하지만 정반대로 트럼프 행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면서 그에 정면으로 반하는 보호무역의 전면에 서는 자가당착의 행동을 보이는 가운데 우리를 미국의 경제 기생충식으로 몰아세웠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미국 주도의 한반도 ‘군사 옵션’(전쟁)을 노골적으로 언급하며 맹렬히 압박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미국식 자본주의 금융 울타리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나아가 천문학적인 돈으로 미국 땅에서 미국인의 부와 그들의 취업을 위한 공장 굴뚝을 짓겠다는 선물을 주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우리의 태도에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북한 문제에 관한한 우리에게 우리가 선택할 옵션권을 확실하게 넘겨주어야 한다. 앞에서만 주는 척하고 뒤에서는 다른 표리부동한 태도는 안 된다.
북핵과 미사일 문제의 협상권은 중국과의 얽히고설킨 파워게임 때문에 미국이 주도할 수 있다고 해도 대북 군사옵션, 남북 평화협상, 개성공단 가동 및 금강산 관광, 통일 후 북한 재건 등의 이슈는 간접적이라도 일체의 간섭을 하지 말고 우리 정부의 판단에 전적으로 넘겨야 한다. 그것이 힘들다면 빈껍데기 주도권 선물이 아니라 최소한 북한에 ‘남한 통과의례’를 주문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이들 사안은 우리에게 게임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문제인 탓이다. 미국이 글로벌 패권의 절대리더로 장수하기 위해서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고민하고, 그 속에서 모두가 더 크게 얻는 법을 찾는 ‘큰 그림’을 설계하는 대범함에 달려 있다. 미국은 지금 100년전으로 되돌아가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반드시 극에 달해 모두가 망할 수 있는 막시즘의 독점적 자본주의 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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