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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을 갓 넘겨 폐기되는 방대한 음식물 쓰레기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유통업계에도 일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싼 가격에 판매해 소진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소비자들 역시 호응하는 분위기다.
한국식품공업협회에 따르면 한해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와 이를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은 1조원에 육박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 소위 말하는 ‘시한부상품’이다. 그 양은 연간 식품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무분별하게 낭비되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식품업체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유통기한 임박 상품들을 따로 모아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경기 침체로 주머니가 가까운 소비자들은 유통업계의 이 같은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유통기한 임박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는 분위기다.
정상 제품 대비 최대 90% 저렴…돈도 아끼고 환경도 지키는 ‘유통기한 임박 상품’ 인기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일대에는 학생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다른 지역보다 저렴한 음식과 물건을 파는 곳이 많다. 이 중에서도 생필품을 비롯한 다양한 식품들을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신세계마켓(구·굿모닝홈마트)’이 단연 인기다. 이름은 신세계지만 유통재벌 신세계그룹과는 관련이 없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신세계마켓에는 장을 보러 온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노량진 주민들의 단골 쇼핑장소로 꼽히는 이곳은 경기·인천 일대 물류창고에서 방치돼 있던 상품들이 매장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신세계마켓 부관리자인 김주형 씨는 “(매장에 들여오는 물건) 대부분 유통기한이 1~2달 남은 편인데 3주 정도 짧게 남은 상품 같은 경우에는 원가의 10% 정도에 마진 없이 판매하기도 한다”며 “최대한 버려지는 물건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하게 판매하고 다른 상품에서 이득을 취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들이 원활하게 유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과채·신선류는 관리가 힘들지만 그 외 완제품이나 과자류 등은 당장 섭취하는 데 문제가 없어 매장을 이용하는 고객들도 만족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품질유지기한을 필요로 하는 잼·장류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통기한만 표기하고 있다. 식품위생법상 유통기한을 넘긴 식품은 부패하거나 변질되지 않았더라도 판매할 수 없다. 유통업체들은 이런 이유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품을 싸게 공급하는 방식으로 음식물 낭비를 줄이고 있다.
평소 유통기한 임박 상품 판매 매장을 자주 이용한다는 고의선(28·여) 씨는 “아무래도 공부를 하다 보니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데 같은 물건이라도 여기서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으니까 즐겨 찾게 된다”며 “식품을 구매할 때 유통기한을 따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한 임박 상품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관리만 잘하면 유통기한이 지나도 어느 정도 기간 동안 먹을 수 있어서 괜찮다”고 덧붙였다.
홈플러스와 이마트 등 대형 할인마트에서도 소비기한이 남은 상품이 폐기되는 것을 줄이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신선한 과일·채소류가 있는 식품 코너 한편에는 당일 판매해야 하는 과채류를 최대 50%까지 할인 판매하는 코너를 따로 두고 있다. 할인 코너에는 저녁 식사시간을 앞두고 찬거리를 사러 온 주부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추세다.
장을 보러 온 주부 이현숙(53·여) 씨는 “유통기한이 하루 이틀밖에 남지 않아도 보관만 잘하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 내가 찾는 상품이 있으면 비싼 정품보다는 그걸 사게 된다”며 “1인 가족과 핵가족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제값을 주고도 다 먹지 못해 버리는 것보다 상한 부분을 일부 버리더라도 알뜰하게 다 이용하는 게 경제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유통기한 임박 상품 판매 코너에서 만난 40대 주부 장성숙 씨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장 씨는 “유통기한 임박 상품이라고 해서 육안으로 봤을 때 상품 질이 정품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지거나 나쁜 적은 없었다”며 “오히려 감자나 당근처럼 오래 두고 먹는 저장식품들은 정품을 많이 사는 것보다 적은 양을 필요한 만큼 구매할 수 있으니까 더욱 좋다”고 설명했다.
“Save Earth”…온라인으로 확장되고 있는 유통기한 임박제품 전문마켓
미국·유럽 등지에서는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품을 할인해 판매하는 소비 활동이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개선되면서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따로 모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비기한은 식품을 먹어도 건강상에 이상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식품소비의 최종시한을 일컫는 단어다.
‘임박몰’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유통기한 임박 상품 취급 온라인 쇼핑몰이다. 지난 2011년 문을 연 임박몰은 각종 식품을 비롯해 다양한 생필품을 판매하고 있다. 입소문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임박몰 관계자는 “잘못된 유통기한에 대한 편견으로 멀쩡히 버려지는 식품을 되살려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며 “고객들로 하여금 유통업자가 지켜야 하는 ‘유통기한’과 소비자가 고려해야 할 ‘소비기한’ 두 가지 개념을 확실히 인지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추럴푸드 기업 ‘올가니카’는 약 한 달여 전부터 유통기한이 3~6개월 정도 남은 상품들을 따로 모아 저렴하게 판매하는 ‘제로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Zero Waste’, ‘Save Earth’, ‘Save Money’ 등의 슬로건을 내건 제로마켓은 덴마크 등에서 유통기한 경과상품을 판매하는 마켓이 활발하게 자리 잡은 데서 착안해 문을 열게 됐다.
김알림 올가니카 마케팅팀 팀장은 “곡류는 별도의 유통기한이 없어서 도정일(쌀)·포장일(쌀 이외의 잡곡·슈퍼푸드)로 구분해 표기하고 있는데 보관만 잘하면 기간이 오래 경과돼도 품질이 변하지 않는다”며 “유통기한이 임박했지만 보관상태가 좋은 상품들을 선별해 고객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고 환경 보호에도 동참하자는 취지로 제로마켓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환경오염을 야기하는 음식물 쓰레기 문제에 대해 소비자들의 관심과 이해도가 높아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식약처)는 소비기한을 적극 반영해 유통기한과 함께 병행 표기하는 제도적 장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같은 식품이라도 보관 상태나 주변 환경, 온도 등에 따라 맛과 모양이 변질될 우려가 있어 천편일률적으로 소비기한을 규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환경오염 문제와 소비기한에 대한 여론이 형성된 만큼 이를 적극 반영해 정책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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