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름 권하는 사회, 폭력적 44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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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아 기자페이지 + 입력 2017-08-07 00:12:35

“저는 44사이즈도 커서 33반(半)을 입어요”

TV를 틀면 마른 몸매를 가진 여자 연예인들이 자랑스레 꺼내는 말이다. 한 때 개미허리의 기준이었던 24인치 허리는 보통이 됐고 19인치는 돼야 방송에서도 ‘개미허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말이다.

가늘수록 아름답다고 포장된 미(美)의 기준이 브라운관 밖까지 점령한 모습이다. 화면에 예쁘게 비춘다는 가는 몸매에 맞춘 사이즈가 마치 표준인 냥 여성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코르셋이 등장한 후 경쟁적으로 가는 허리가 각광받던 시대에 갈빗대를 포기하면서까지 몸을 맞췄던 중세의 여인들이 떠올려질 정도다.

현재 국내 주요 백화점에 입점한 여성캐주얼 브랜드 대부분은 44사이즈부터 66사이즈까지만 판매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과 SPA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백화점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부터 개인이 운영하는 쇼핑몰까지 사정은 비슷하다.

크고 작음의 기준조차 모호한 ‘빅사이즈’란 표기가 없는 경우 대게 66이 가장 큰 사이즈다. 언뜻 누구나 입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프리(Free)사이즈’ 역시 66이하의 여성들에게나 자유로운 사이즈였다.

취재 중 매장들을 돌면서 “77사이즈는 없느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불가능했다. 오히려 기자를 위 아래로 훑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44사이즈를 입는 것이 마치 자랑스럽게 포장되면서 66을 넘어선 옷을 구하는 것이 마치 부끄러워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셈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사회적 풍토 속에서 여성들이 ‘44의 삶’을 위해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감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지 원하는 옷을 입기 위해, 원하는 디자인의 옷을 구입하기 위해한 가지 음식만 먹는 원푸드 다이어트를 감행하거나 극도로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당연한 수순으로 건강은 악화됐다.

한 여성은 “다이어트를 하면서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며 “빈혈이 생기고 숨이 잘 안 쉬어지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렇지만 결국 원하는 사이즈 옷을 입고 나서는 만족감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44~66사이즈는 1981년에 생긴 기준이다. 성인 평균 키가 155cm인 시절이다. 지난해 여성 평균 키는 160.9cm로 5cm나 커졌지만 사이즈는 여전히 과거에 멈춰있다. 자연히 골격이 커진 여성들에 더욱 마른 몸매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상함을 깨달은 여성들은 최근에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성환경연대는 기형적인 여성복 사이즈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이에 많은 여성들이 동감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단순히 여성들을 위한 옷을 판매하는데 그치지 않고 라이프스타일과 세련미를 서비스한다고 입을 모아 광고하는 업계가 귀를 기울일 차례다. 마른몸매를 추앙하는 매스컴도 고민해야 한다. 획일화 된 미의 기준이 자칫 폭력성을 띨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김민아 jkimmina@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