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점이 만든 천만, 독점이 없앤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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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기자페이지 + 입력 2017-08-09 01:26:12

최대 2027개의 스크린을 점유했던 영화 ‘군함도’의 스크린 독과점 논란으로 영화계가 파열음을 냈다. 누군가는 류승완 감독을 질타했고 제작사를 힐난했다. 이들이 상당히 고충을 겪고 있다는 후문도 들려온다.

사실 이 같은 논란의 배경에는 대기업 중심의 영화산업 자체에 문제점이 있다. 대부분이 공감하는 바다. 배급과 상영을 동시에 도맡은 대기업이 영화관을 독점해 관객들의 선택권을 침해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CJ그룹·롯데그룹 등이 운영 중인 멀티플렉스 극장의 출발점이 다양한 관객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 여러 스크린을 갖췄다는 점에서 충분히 나올만한 비판이다. 다양한 영화가 아닌 특정 영화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레 관객의 볼 권리를 앗아가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스크린 과점현상이 나쁜 것일 지에 대해서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만 같다. 관객의 선택권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 역시 관객 때문이다.

한국 영화의 부흥기는 1990년대 말엽부터였다. 암울한 경제상황을 반영한 듯 건달들이 등장하는 블랙코미디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범죄인을 미화하며 반복되는 식상한 전개에 관객들은 금새 외면했다. 누군가는 한국영화의 위기라 표현했으나 그 때마다 다양한 소재를 다룬 이른바 대작들이 침체된 한국영화계를 부흥해 온 것이 사실이다.

사실 1990년대 말 부흥기를 이끈 것도 대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97년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쉬리’였다. 분단을 소재로 남·북 첩보원들의 활약과 사랑을 다룬 영화였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한석규·최민식·송강호가 한 데 출연한 영화였으며 오늘날 월드스타 김윤진이 있을 수 있게 한 작품이었다.

강 감독이 당시로선 보기 드문 대작을 연출할 수 있었던 까닭도 앞서 1996년 개봉한 영화 ‘은행나무 침대’를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었고 강 감독은 자신이 머릿속에 그린 것을 스크린에 옮겨 담을 수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와 견줄만 하다는 표현이 조심스레 쓰였던 것도 이쯤 이었다.

누군가는 반론할 수 있다. 쉬리라는 대작이 한국 영화계를 부흥시킨 것이 아니며,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를 구한 것 역시 대작이 아닌 작품성을 앞세운 작품들이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영화사 입장을 생각해보자. 대작들이 인기를 끌어 축적된 자본이 있었기에 다양한 투자를 감행할 수 있었고 다양성적인 면 역시 풍성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같은 긍정적인 순환 속에서 대작들 역시 변하게 된다. 규모와 CG 등에 초점을 맞춰 볼거리적인 요소에 치우친 오락영화였던 대작영화들이 작품성을 갖추게 된 계기가 된 것이었다. ‘압도적인 스케일’이란 문구는 더 이상 흥행에 도움 되지 않는 문구로 전락했다.

대작에 대한 수요는 점차 높아졌고 덩달아 투자자들도 대기업 제작·배급·상영을 선호하게 됐다. 영화계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다. 더 큰 자본이 투입되는 헐리웃에서도 일부 대형 제작사를 중심으로 M&A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인 셈이다.

한정된 수요층을 대상으로 막대한 공급이 이뤄지는 영화판에서 수요를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어쩜 개봉관을 확보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논란이 된 영화 군함도의 손익분기점은 700만명이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혈안이 돼 스크린을 확보해야 하는 나름의 이유 또한 있었다.

논란은 또 올 것이다. CJ, 롯데 혹은 마블의 영화가 독점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논란은 또 오게 돼있다. 사실 단 한 관만이라도 대형 극장체인들이 양보하는 자세만 취했다면 과점논란이 이토록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관객들도 다 알지 모른다. 한 개관 정도는 프라임시간대에도 다른 영화를 틀어줬더라면, 그래서 대작도 아니고 인기작도 아니었지만 그 영화를 보고 싶었던 관객이 편하게 볼 수 있게 해줬더라면 독점 논란은 필요악 정도로 치부됐을지 모른다.

만들어진다는 ‘천만영화’도 중요하다. 기업에 본연의 목적인 이익추구를 지양할 걱을 주문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멀티플렉스란 그 자체의 의미를 대기업 멀티플렉스 극장체인들이 인식해야 할 때다.

[김도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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