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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드 보복이 계속되고 한·중 간의 갈등은 전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실타래가 더 꼬이면서 중국의 압박 수위는 더 거세지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가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의 눈치를 보면 볼수록 그들의 태도는 더 기고만장해진다. 이참에 한국 정부의 기(氣)를 완전히 꺾어 놓겠다는 계산인 것 같다.
최근 필리핀에서 조우한 양국 외교장관 회담의 과정이나 결과를 보더라도 그들의 처세는 무례하고 치졸하기까지 하다. 상대적으로 우리 외교 고위관리들의 대응 정도를 보면 초라하고 무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시간이 갈수록 양국 민간 레벨의 교류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기도 하다.
양국 관광객들의 상호 방문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고, 감정적 대립도 더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중국 현지에 오래 주재하면서 비교적 중국에 호의적 반응을 보이던 주재원들이나 자영업자들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같다는 푸념까지 들린다. 불과 3∼4년과 비교해 보면 실로 천양지차이다. 금년이 양국 수교 25주년이지만 그 어디에도 화해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정치·경제적 보복이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한국인, 한국 기업의 중국에 대한 관심도마저 예전과 같지는 않다.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양국의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드 문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긴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중국의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두 자릿수 인건비 상승이 지속되고 있고, 인력을 확보가 쉽지 않으며, 로컬 기업들의 경쟁력이 올라오면서 현지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중국 정부도 ‘세계의 공장’을 포기하면서 제조업의 구조조정과 첨단 산업화를 서두르고 있어 외국인 투자에 대한 관심이 과거와는 다르다. 이런 전후 사정으로 인해 실제로 중국의 떠나는 외국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고, 경쟁국 기업에 비해 의사결정이 다소 늦긴 하였지만 한국 기업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모습이 가시화되고 있다. 양국 간 사드 갈등이 한국 기업의 중국에 대한 애착이나 미련을 버리도록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을 대신하는 대안(代案) 시장으로 ASEAN 10(아세안·동남아시아 10개국의 연합체)와 인도 시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 지역이 중국에 이어 ‘세계의 공장’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뿐만이 아니고 세계 각국이 중국에 대한 투자를 접고 경쟁적으로 이 시장에 몰려가고 있다. 특히 아세안 시장은 인도보다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훨씬 친근하면서도 의외로 가까운 시장이다.
실제로 아세안에 대한 우리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베트남이 일본을 제치고 우리의 3위 수출시장으로 부상하는 등 아세안에 대한 우리 교역 비중은 13.2%로 중국의 23.5%보다는 낮으나, 미국의 12.2%보다는 높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 대한 우리 수출도 11∼15위권 머무르고 있어 10대 수출시장 언저리까지 치고 올라오고 있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시들해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아세안에 대한 관심은 부쩍 증가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 다변화를 할 수 있다는 점과 아세안 역내에 우리의 거점을 마련할 있는 분위기가 성숙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아세안 시장에 대한 우리의 관심 부활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지난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아세안은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전초기지이자 수출, 건설 등에서 미국, 일본에 이은 주력시장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많은 경제적 이익을 안겨준 효자시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사태에 우리를 포함한 동남아 국가들이 직격탄을 맞음으로써 당시 치솟던 불길이 일시에 꺼지고 말았다.
이 불씨가 1992년에 우리와 수교를 맺고 경제 교류가 한창 시작되던 중국으로 빠르게 옮겨붙었다. 기업도 중국으로 들어가고, 수출 물량도 중국 시장을 향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잃어버린 20년’이 일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중국의 그늘에 가려진 아세안 국가들에게도 인고의 세월이었다.
기억에서 잊혀진 투자처이자 수출시장이던 이 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은 중국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승승장구하던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이 종지부를 찌고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를 학수고대 해오던 아세안 국가들에게 마침내 기회가 온 것이다.
위에서 동 언급한 바와 같이 아세안 시장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 지역에 일찍 들어가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들도 많고, 근래에 들어서는 베트남이 우리 기업의 아세안 시장 진출 주력 거점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시장에서 경쟁국인 일본 혹은 중국에 비해 결코 우위에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이 지역에 진출하였고, 시장 장악력이나 일본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매우 높다. 중국의 이 시장에 대한 공세도 만만치가 않다. 기본적으로 이 지역에 골고루 분포돼 있으면서 현지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계 화교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한편으로는 막대한 자금력을 가지고 이 지역의 인프라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수주 전과를 올리고 있기도 하다. 아세안 시장이 한국, 일본, 중국의 신(新) 삼국지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세안 국가들도 이 3국의 공세를 적절하게 저울질하면서 보다 많은 수혜를 받기 위한 계산법으로 분주하다.
중국, 일본 등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그들과 차별화되면서 우리의 특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양국이 갖고 있는 패권지향적 공세와는 다른 특유의 윈-윈 솔루션을 만들어야 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아세안 국가들 내부에는 원주민들과 화교 간의 갈등과 경쟁 구도가 있다.
화교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면 원주민들은 대형 인프라, 국책 프로젝트 등 이권을 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시장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고 타깃에 따라 다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시장의 성숙 정도에 따라 싱가포르 등 선발 6개국과 후발 4개국(CLMV: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으로 분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태국·베트남 중심의 인도차이나 반도 시장과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중심의 말레이 반도 시장으로 구분하는 디테일한 전략을 만들 필요가 있다. 자본재, 중간재, 소비재, 인프라, 서비스 등 품목 혹은 업종에 따라 시장을 세분화해야 한다. 사드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게 아세안 시장은 명실상부한 최고의 대체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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