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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정치·돈 등 우리가 숭배하는 모든 것들은 현재를 수단으로 놓고 미래를 목적으로 놓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스님은 벽만 보고 수행합니다. 불교에서는 윤회를 믿습니다. 윤회는 돌고 도는 인생이죠. 이번 생에는 운 좋게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다음 생에는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의 가르침 중 성불이 있습니다.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이죠.
부처가 되면 윤회를 하지 않습니다. 즉,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이번 생에는 운 좋게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다음 생에 개미로 태어나면 부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수행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번 생의 모든 것을 바쳐가며 부처가 되려 노력하는 것이죠. 그것도 벽을 보고 말입니다.
그럼 이번 생은 수단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가 되기 위한 수단이죠. 목적은 부처입니다. 하지만 부처는 죽은 다음에 그것을 알 수 있고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생은 그냥 열심히 수행하다 가는 그런 고난의 길이 됩니다.
종교는 이렇게 현재를 수단으로 삼는 걸 강조합니다. 종교가 예전에 평민들을 지배했던 논리는 사후세계입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 평민으로 태어났지만 죽은 다음에는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참고 살아라”라고 하는 것이죠.
이 또한 현실을 수단으로 삼고 목적은 죽음 다음이 됩니다. 이런 논리는 종교인들이 만들어냅니다. 그래야 사후세계를 위해 열심히 헌금을 하고 사주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종교를 자본으로 생각해 봅시다. 자본주의는 목적이 자본인 사회입니다. 자본이 목적이니 사람은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현실도 수단일 뿐 나중이 목적이 됩니다.
사람들은 10억원을 모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라 생각하죠. 그리고 10억원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그럼 이런 10억원 만들기 목표는 자본가들이 만들어 냅니다. 왜 그럴까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고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왔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거대한 은광을 발견하고 원주민들을 이용해 은을 채굴했죠. 그러나 원주민들은 왜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에게 일을 시키기 어려웠죠.
그들의 유인은 돈을 주는 것인데 돈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즐기고 잘 수 있는데 그깟 돈을 벌기 위해 왜 일을 죽어라 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득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은을 캐내 스페인으로 가져가야 하는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을 강압적으로 은을 채굴하는데 동원했죠. 그러다 원주민들이 돈의 가치를 알게 될 무렵 정복자들은 원주민에게 10시간 일하면 돈을 5 정도 줬는데 10시간을 일하면 10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이 밤낮으로 10시간 일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원주민들은 일하는 시간을 5시간 줄이고 5의 돈을 받아갔죠. 원주민들은 돈이 더 필요한 게 아니라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겁니다.
자본가들은 현재를 저당 잡아 열심히 일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야 일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재 자본가들이었다면 5시간만 일하고 5의 돈을 받아가는 경우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집에 가서 쉬라고 했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10의 돈을 받고 10시간을 일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는 우리들은 10시간을 일하고 10의 돈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죠.
현실을 저당 잡은 자들은 자본이 목적인 자본가들입니다. 물론 우리들도 자본이 목접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 시간은 수단이죠. 국가도 현재를 수단으로 삼고 미래를 목적으로 삼습니다. 열심히 국가를 위해 일하면 나중에는 위대한 나라의 국민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힘들지만 참고 견뎌야 한다고 말이죠.
그런데 현재가 수단이면 목적을 이뤘을 때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래에 그것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처럼 황당한 경우가 없습니다.
면벽으로 50년간 수행하는 스님이 언제 크게 좌절할까요. 죽기 직전입니다. 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50년 동안 수행을 했는데 죽기 직전에 문득 “그런데 만약 극락이 없다면 어떻게 되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럼 50년을 바친 자신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무엇으로 보상 받겠습니까.
10억원을 벌면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쓸 것 안 쓰고 먹을 것 안 먹으면서 나이 80세가 돼 겨우 10억원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 80세가 돼 자신이 생각한 그 무엇이 없다면 어떨까요. 여행을 가고 싶어도 관절염 때문에 어디를 다니지 못하고 아무리 맛있는 스테이크가 있어도 이가 좋지 않아 씹지를 못합니다. 게다가 병까지 걸렸다면 그 인생은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가족을 목적으로 삼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이 목적이 돼선 안 됩니다. 그래서 자식은 자식, 부모는 부모가 돼야 합니다. 다 클 때까지만 키우면 됩니다. 자신의 노후자금으로 사교육에 올인 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대학교 들어가면 ‘네 인생, 나의 삶(Your Life, My Life)’이 돼야 하는 거죠.
정치·경제·종교 등 현재를 수단으로 삼는 모든 것은 미래 혹은 사후를 목적으로 둡니다. 그리고 현재를 희생하라고 하죠. 현재를 희생하면 미래에 큰 대가가 따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 미래에 그 무엇도 없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뭐가 되겠습니까.
현재는 미래를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그리고 종교·정치·경제 등 현재의 나를 억압해 미래에 무엇을 하라는 모든 것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래서 목적은 미래가 아닌 현재가 돼야 합니다. 현재가 목적인 경우 어떤 것을 목적으로 둬야 할까요. 10억원, 천국, 가족, 부동산일까요.
아닙니다. 항상 현재의 목적은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죽을 만큼 너무 힘들면 그만 둬야 하죠. 대학교 떨어졌다고 사업에 실패했다고 자살하면 안 됩니다. 그 까짓게 왜 목표가 돼야 합니까. 내 삶의 목적은 나 자신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어차피 나 잘 살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10억원을 모을 수 있다면 좋지만 모을 수 없다면 애들이 클 때까지 만이라고 기한을 정해 둡시다. 현재 좋은 삶을 매일 살아가는 것이 존재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생은 생산품(Product)이 아닌 행동(Action)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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