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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군 수뇌부들을 상대로 막대한 국민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화를 낸 것은 단순한 화풀이가 아니라 수십년 해묵은 과제인 ‘국방개혁’이 다시 시동이 걸렸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일이다. 국방개혁은 보-혁 진영논리를 넘어선 그 이상의 현안이었기에 국민들이 먼저 화내고 싶었다는 말로 화답하고 싶다. 국방이라는 특수지대가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 그들만의 철옹성 밥그릇을 챙겨 왔다면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국민적 배신행위다.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담보할 국방개혁 추진은 보수-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어 역대정권 모두가 추진했던 사안이었지만 사실상 번번이 실패했다. 특히 청와대 권력이 군의 반발에 늘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여 장성들의 무소불위 ‘별들의 잔치’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한해 수십조원씩 퍼붓는 국민혈세가 국방비리 문제 뿐만 아니라 시스템적으로도 엉뚱한 곳에 쓰여져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결코 방치할 수 없는 긴급 사안이다.
군 개혁은 반드시 고강도로 일사분란하게 추진돼야 할 현안이지만 군사정권인 노태우 정부시절부터 수십년째 큰 변화 없이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도 10여년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육성이 재생된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보수가 노 전 대통령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할 말이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보다 수십배가 넘는 국방비를 수십년간 쓰고도 국방력이 약하다면 그 많은 돈을 우리 군인들이 떡 사먹었느냐고 원색적으로 질타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방개혁 2020은 군에 관한한 극보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방위적으로 추진됐다. 당시 군 통수권자인 노 전 대통령의 자주국방 의지는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것과 비견될 정도로 강력했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방식은 조금씩 달리하면서 국방개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체면만 구겼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의 시작을 방위사업 비리 근절을 위한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는 방식으로 시작한 듯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군개혁의 성공 방점에 국민을 배수진으로 삼지 않으면 또다시 국민을 불안케 하는 군의 논리에 후퇴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국방개혁은 대통령의 의지로 추진될 경우 군과의 헤게모니 싸움을 피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군은 권력을 제압할 명분으로 국민의 생명을 잡고 흔들었다. 따라서 군의 개혁이 필요한데 대한 추진과정에서 지속적인 투명성이 성공의 관건이다. 작금의 육·해·공 구조가 현대전은 물론 미래전에 대비하지 않는 구시대적 혈세낭비 시스템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알려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청와대 권력으로 군 개혁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전례로 보면 힘들다.
군 개혁의 핵심은 근미래 전쟁에 대비해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핵심 전략자산을 전개하는 시스템의 조기정착에 있다. 육·해·공 통합작전 능력의 제고가 핵심이라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첨단화된 네트워크 및 정보화가 또한 열쇠다. 이를 기반으로 한 통합작전 능력은 수세적이 아니고 공세적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의 국방개혁 방안만 봐도 육·해·공 전군이 모두 긴밀하게 엮인 네트워크 속에서 합동군 작전 및 전투능력을 향상시켜 선제공격을 통한 안보역량 강화를 하고자 하는 것이 골자였다.
그에 한참 앞서 노태우 정부는 참모총장에게 육·해·공 단일지휘체계 하에서 군령권과 군정권을 모두 주는 통합군제를 추진했지만 군의 반발이 일어나면서 군령 통할권과 집행권 부여 선에서 끝났다. 이어 문민정부 첫 김영삼 정권 역시 통합군 체제 개편을 시도했지만 좌절됐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육군 중심의 부대를 구조개편하는 방안이 안보위기라는 이유 때문에 철회돼야 했다. 노무현 정부는 DJ의 정책을 이어받아 육군 위주의 전력을 군 현대화에 방점을 두고 국방개혁법안까지 만들면서 3군 통합작전 자위능력의 향상을 꾀했지만 이 역시 안보위기라는 이유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도 개혁 큰 줄기는 다르지 않아 통합군 체제의 깃발을 올렸다. 합참의장에게 군령권은 물론 일부 군정권을 부여하고 합동참모본부 중심의 강력한 합동성을 꾀하고자 했지만 민간인이 된 예비역 장성들까지 반대하고 나서 백지화 됐다. 박근혜 정부 역시 육군 중심의 군을 통합군 위주로 개편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우리 군의 첨단전력 강화에 초점을 뒀지만 이 또한 북한의 직접적인 국지전, 전면전 우려라는 반대논리에 휩싸여 흐지부지됐다. 결국 수십년간 이어진 국방개혁은 속된말로 노태우 정부 당시 실패했던 쌍팔년식 시스템으로 유지되고 있는 격이다.
고 노무현 정부 때 마련된 ‘국방개혁 기본법’은 보-혁 모두에 바이블이 됐지만 군권력 막후 별들의 연대는 이를 무력화 시켰다. MB 정부의 경우 2009년 ‘국방개혁 기본계획 2009-2020’, 2011년 ‘국방개혁 기본계획 2011-2030(307계획)’, 2012년 ‘국방개혁 기본계획 2012-2030’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밀고 당기기 개혁의지를 지속했으나 화려한 수사(修辭)가 됐을 뿐이다.
한국의 국방비는 정부 재정대비 약 15% 정도에 이른다. 올해만 해도 40조원이 조금 넘었고 내년에는 4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그야말로 국민들 허리가 휘는 천문학적 돈이 국방비로 쓰인다. 문제는 국방비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나야 한다는데 있다. 정부는 오는 2021년 약 50조가 넘는 돈이 국방비로 쓰일 것으로 추계하고 있다. 이처럼 큰돈이 국방비로 쓰인다면 우리의 독자적 방위능력이 커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의 국방비는 여전히 북한의 현실적 위협이라는 상황 때문에 구태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휴전선 155마일 담벼락 방어가 신성시 되면서 오히려 그 명분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과 영토를 못 지킬 구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수십조원 중 경상운영비가 70% 가량에 이르고 30%만 방위력 개선비에 쓰이는 구조를 개선해야만 미래전에 대비한 군 현대화가 조기에 가능하다. 작년만 해도 국방비 중 경상운영비가 28조에 달한 반면 방위력 개선비는 12조에 불과했다. 이 구조가 최소한 절반의 비율로 바뀌어야 한다. 이 기반 하에 합동전, 공세, 네트워크, 정보화 등의 키워드가 먹히는 군 현대화가 가능해진다. 시스템적으로는 상부 지휘구조 개편에만 집중해 매번 조직적인 반발을 살 것이 아니라 병력·부대·전력 등의 구조개편까지 함께 고려돼 추진돼야 성공적인 명분을 쥔다.
북한의 10배 이상에 달하는 국방비를 쓰면서 우리는 늘 북한에 끌려 다니고 위협을 당한다. 핵 비대칭 뿐만이 아니고 재래식 무기인 탄도미사일, 방사포, 잠수함 등에서 우리 국민들은 북한의 위협 아래에서 항상 전쟁의 공포감을 인고 산다. 외적으로는 군 현대화 과정에서 미국산 낡은 무기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상황일 뿐만 아니라 안으로는 그 마저도 숱한 방위사업비리가 얼룩져 현대화가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한·미 연합방위능력이 물론 중요하지만 자위권 차원의 각종 무기개발이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은 우리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국의 글로벌 군사작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연합작전능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미국 측을 상대로 우리의 국방력 강화가 필수적 요건이라는 것을 일사분란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설득해 나가야 한다. 미국은 우리의 국방개혁 의지를 도와야만 국민적 지지를 받는 한미동맹의 지위를 더욱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국답게 생각의 틀을 전향적으로 바꾸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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