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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사그라지는 성격을 두고 흔히들 냄비 근성이라고 한다. 별로 달갑지 않지만 한국에 오래 살아본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특징으로 곧잘 이를 빗대곤 한다.
근자에는 이런 냄비 근성을 잘 활용하는 상술(商術)까지 등장하고 있다. 만성적인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업계도 이를 잘 써먹고 있는 듯하다.
요즘 서점가에 가보면 온통 깔린 게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책들이다. 경제·경영 코너에 가보면 십중팔구에다 내용도 거의 유사하다. 예를 들자면 ‘2030년 일자리가 사라진다’와 같은 충격적인 멘트를 달수록 더 흥행이 된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이와 관련한 강연 비즈니스도 널을 뛴다. 삼삼오오 모여 이를 연구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이 정도 되면 상술이 잘 먹혀들어간 셈이다.
이를 가장 먼저 주창한 세계경제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의 인기가 한국에서 가장 높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 붐이 언제까지 갈까? 아마도 연말까지는 계속될 것 같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을 소재로 한 책들이 서점에 즐비했으나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이런 냄비 근성이 혹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단점이 되기 십상이다.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해서는 글로벌하게도 큰 이슈임은 분명하다.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는 AI(인공지능)가 인간 문명에 대한 근본적 위협이 될 것이라고 역설하면서 미래 위험에 대비해 화성 이주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AI 종말론(둠스데이: Doomsday)을 부추기는 사람들에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면서 궁극적으로 AI는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편다.
한편 뉴욕타임즈 칼럼리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은 보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근한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변화와 시간인 것은 인정하지만 결과적으로 인간과 AI가 타협을 하는 팀워크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어느 것이 보다 타당한 평가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체적인 흐름이 극단적인 비관론에서 균형 내지 낙관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이를 가지고 상업적인 재미를 보려는 부류의 입장에서는 계속 충격적으로 몰고 가려고 여전히 애를 쓴다. 이들의 약발에도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할 즈음에 미래에 없어질 업종으로 인쇄 매체와 카드 회사가 우선순위에 꼽힌 적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까지도 건재하며,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있다. 당연히 없어지는 업종, 일자리가 있겠지만 그만큼 늘어나는 반대쪽도 있다.
4차 산업혁명 선두주자인 독일이나 요즘 부쩍 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일본의 경우를 보면 진위 파악이 가능하다. 이 양국은 자타가 인정하는 제조업 강국이다. 전통 제조업에 있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추격이 거세기 때문에 이들을 뿌리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설상가상으로 이들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인구절벽과 노동력 부족이다. 지난 5년간 독일에는 일자리가 270만개나 늘었지만 작년에 70만개의 일자리가 주인을 찾지 못했다.
일본도 이와 유사하다. 구직자 수 대비 구인 수를 표시하는 유효구인배율이 무려 1.52로 43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 은퇴한 고령층, 여성 유휴인력까지 현장으로 유도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AI, 로봇, 빅데이터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스마트 제조업에서 정답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술 더 뜨고 있다. 소위 말하는 제조업의 귀환이다. 세계 2위 스포츠용품 업체인 아디다스는 90%의 공장이 아시아에 있지만 스피드 로봇 공장 개념 도입으로 공장을 다시 독일로 불러들이고 있다. 일본은 로봇 신(新)전략을 통해 ‘Made in Japan' 부활의 꿈을 키우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나가 있던 제조업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제조업의 기반이 더욱 강해지고 일자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선순환 효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만 98개의 일본 기업이 본국으로 유턴을 했다.
스마트 팩토리의 현실화는 단순히 생산성 향상과 인력 감축이라는 도식에서 탈피해 고객과 시장이 있는 것으로 공장이 이동하는 글로벌 제조업 지도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다시 인바운드(Inbound) 경제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나가는 경제가 아닌 들어오는 경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나가있던 제조업이 귀환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조세 감면, 평화적 노사관계, 안정적 환율, R&D, 부품·소재 서플라이 혹은 밸류 체인 등이 이들의 구미에 맞도록 재정비돼야 한다.
뒤늦게나마 정부에서도 제조업 귀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틀을 만들겠다고 서두르고 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데 이미 헝클어진 수순으로 얼마나 효과적인 인센티브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우리의 내수시장이 미국이나 일본과 같이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것도 제조업 유턴에 걸림돌이다. 역수입 전환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에 나가 있는 많은 우리 기업들이 현지에서 고전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 더 버틸 여력이 없는 업체들은 새로운 둥지를 찾을 수밖에 없지만 이들의 눈에 한국은 잘 보이지 않고, 동남아 혹은 인도 등의 국가들만 시야에 들어온다.
정부에서도 4차 산업혁명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추진 과제를 설정해 놓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겉돌고 있는 듯 한 분위기이다. 이를 실현해 나가는 큰 그림은 물론이고 작은 그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몇 년 전과 같이 단지 구호에만 그칠지 두고 볼 일이다. 외부에서 우리를 비아냥하는 것 중에는 냄비 근성 이외에도 또 한 가지 더 있다. 매사에 진지하지 못하고 대충대충 하는 습성이다. 이는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것과 연결이 된다. 눈치코치에만 익숙한 우리의 또 다른 단면이자 자화상이다. 더 늦기 전에 큰 뼈대를 만들고 살도 채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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