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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제국>

식민주의 넘어선 자본주의…글로벌 금융축적의 패러다임·다중 이해하기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9-03 21:41:41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집필한 <제국>은 2000년 출간 후 전 세계 석학들의 비판과 각종 논쟁을 수없이 부른 책이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이 책은 21세기로 접어든 전 세계 자본주의가 기존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라는 틀을 넘어섰다고 평가한다.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의 이행, 그리고 그의 대립쌍으로 새로운 저항적 주체가 등장한바 그 이름이 바로 다중(multitude)이다.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19세기에서 20세기 세계의 전쟁을 추동한 원리는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개별 국민국가들이 벌인 식민전쟁이었다. 전쟁의 승리는 더 많은 영토와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전쟁은 자본의 축적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요소였다.

세계대전을 경과하며 20세기 중반을 전후로 기존 식민국가들에서 탈식민 전쟁이 일어난다. 탈식민화의 과정은 제국주의 구도에도 큰 변화를 추동했다. 우선 20세기 후반 이후 전 지구적 통치 메커니즘은 기존의 식민지 지배 형태의 직접 관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주권 자체를 접수하는 제국주의 권력은 너무 많은 비용을 소모케 했고, 전 지구적으로 분산된 저항과 권력 견제를 견대내기 힘들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자본주의가 1980년대를 전후로 본격화한 전략은 주권접수가 아니라 IMF, WTO 등의 국제기구의 중개로 간접적 경제통치의 전략이었다.

이제 국가 간 권력관계는 금융 채권-채무의 관계로 재편되고, 피지배국가들은 국제기구의 감시하에 자국의 경제시스템을 초국적 자본의 입맛에 맞게 변경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1990년대 동아시아 경제위기,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지속된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위기의 핵심에는 IMF와 미국, 그리고 초국적 자본 등의 이러한 경제적 지배가 자리하고 있었다.

네그리와 하트는 주권권력을 접수하며, 영토를 확장하는 기존의 제국주의 패러다임이 20세기 후반을 넘어오며 새로운 네트워킹형 권력 패러다임에 자리를 내주었다고 평가한다. 주권 접수라는 직접적 권력접수 형태는 기본적으로 국경의 외부를 필요로 한다. 식민지로 종속시킬 외부의 영토가 있을 때 제국주의 지배도 가능해진다.

반면, 글로벌 자본을 매개로 한 자본의 새로운 통치는 제국주의 시대가 가졌던 그러한 국경의 ‘외부’를 갖지 않는다.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탈식민전쟁 이후 전 세계가 완전히 자본주의로 일반화된 상태에서, 자본의 새로운 권력 메커니즘은 국경의 확장이 아니라 이미 자본주의화된 땅을 초국적 자본의 입맛에 맞게 조정하는 역할을 할 뿐이기 때문이다.

제국을 압박하고 제국과 충돌하는 새로운 주체성

주지하다시피, 국민국가는 국경을 토대로 영토를 서로 나누고, 그 영토 내의 대중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포섭한다. ‘국민’은 기본적으로 단일성을 추구한다. 수많은 개별자들이 존재하지만, 국민은 이들의 모든 다양성을 ‘국민’이라는 하나의 규율화된 모델 아래 포섭하고자 한다.

국민은 국민국가의 주권자로 명시되지만, 정작 그들이 실제 국정운영에서 주체로 소환되는 일은 오직 국가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에서일 뿐이다. 단일성과 수동성. 이것이 근대의 ‘국민’ 개념이 내포한 핵심 성향이다. 반면, 네그리와 하트는 국민 혹은 인민의 근대적 개념들과는 달리 새로운 네트워크 권력과 공존하며 등장한 주체성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자 한다.

다중(multitude). 이 번역서에서는 ‘대중(大衆)’으로 번역돼 있지만, 영어 원어를 고려하면 새로운 주체성은 큰(大) 무리가 아니라 다층적인 수많은 겹을 갖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후 온라인에 기반한 비물질적 노동(온라인 기반의 지적 노동 등)을 통해 인간들이 국경을 초월해 소통하고 수평적인 대안권력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국민은 국경의 영토 경계에서만 존재하고, 그 영토 내의 문화적-정치적 범주하에서만 동일성을 부여받지만, 다중은 모든 경계를 초월하고, 자신들만의 네트워킹을 통해 초국적 자본에 저항하는 다층적인 존재방식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다중과 제국의 공존. 이 책이 출간되고 한동안 수많은 논쟁이 수반됐지만, 여전히 이 시대를 ‘제국’의 시대로 명명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크기도 하다. 최근 중국과 미국 간의 열강대결 역시 이러한 회의감을 부추기며, 전 지구적으로 퍼져 있는 시민들의 정치적 무기력감이나 냉소주의 역시 다중의 대안권력의 존재를 낙관하기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분명 20세기 후반 이후 무언가 패러다임의 큰 변동이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은 그 변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논쟁적인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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