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변화 파편화된 개인에 던지는 화두 ‘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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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하는 인간과 인간으로부터의 탈주 ‘내재성’ 그리고 ‘노마드적 삶’

정현의 인문 책방…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9-09 19:01:37

이 시대를 특징짓는 요소 중 하나가 ‘가속성’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술발전의 가속성은 세대 간의 봉합이 불가능한 단절을 불러오기도 한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더 많은 부의 축적을 위해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빠를수록 좋다. 기존의 것에서 더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되면 자본주의는 또 다른 곳으로 지배의 영역을 넓히기도 한다. 이것이 19세기의 식민지 전쟁과 20세기 제국주의 전쟁을 유발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1980년경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이들의 새로운 제안이 준거한 것은 그로부터 12년 전인 1968년의 혁명이었다. 두 사람은 모든 것을 동질화하거나 특정의 순종적인 정체성으로 코드화하는 자본주의에 맞서 ‘탈주’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은 단순히 다양성을 부르짖거나 집단에 맞서 개인주의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제안은 좀 더 고차원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들을 수반했다. 이데올로기의 중심성이 무너지고 각 개인이 극단적으로 파편화되고 있던 20세기 후반에 새롭고 흥미로운 논쟁을 던졌다.

내재성의 철학

근대 철학의 기본 준거 중 하나는 초월성에 대한 의탁이다. 근대 정치학의 시초를 놨다고 평가받는 토마스 홉스를 떠올려 보자. 홉스는 종교적 내전이 임박한 시대 속에서 어떻게 하면 세상이 하나의 ‘사회’로 구성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각자는 자신만의 신앙과 신념을 가진다. 그런데 그 신념들이 서로 부딪힐 때 평화는 어떻게 추구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홉스는 하나의 가설을 설정한다. 모든 이들은 각자 서로 적대할 수 있다. 만인은 마치 늑대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투쟁할 수 있는 존재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이 가설 속에는 홉스의 내전으로 신앙이 비화되지 않도록 각 개인의 권리가 양도될 필요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군주는 내전의 위험을 안은 시민사회의 위에 존재하며 갈등의 폭발 가능성을 제어한다.

근대 자유주의의 기틀을 잡은 홉스의 이러한 정치철학은 군주의 자리가 정당이나 주권자의 자리로 대체되며 이어진다. 예컨대 대의 민주주의 선거는 국민의 대표를 뽑지만 그 국민의 대표는 군통수권자로서 계엄령을 선포하며 시민사회에 대한 절대적 통제권을 얻을 수 있다. 20세기는 정당들의 정치적 패권 투쟁에 골몰했던 시대이기도 하고 나라에 따라 일당 독재의 기틀을 확립하기도 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이러한 국가권력 혹은 정당들은 시민사회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일종의 초월적 존재들이다. 각 개인들이 권리를 국가권력에 양도하는 만큼 그들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반면 이 두 사람이 새롭게 주목한 것이 있다. 이른바 ‘내재성’이라는 개념이다. 초월성에 반대되는 이 개념은 시민사회 밖에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각 개별의 존재들이 서로의 공통성들을 찾아가며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내용이자 가치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내재성의 철학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철학자는 스피노자·니체 등이다.

탈주의 철학과 유목민적 삶

스피노자와 니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은 모두 인간세계 외부에 존재한다고 가정된 ‘신’의 존재에 대해 부정했다. 앞서 근대 정치철학에서 신이 가지는 초월적 위치는 정당이나 군통수권자 등이 점유했다. 오늘날 고도화된 자본주의는 인간 개체들의 삶에 수많은 질곡들을 파놓고 이들을 통제하고자 한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주목한 것은 끊임없는 움직임 혹은 탈주다. 탈주는 물리적인 움직임을 단순히 지칭하는 것을 넘어서 삶을 옭아매는 규범으로부터의 이탈을 총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전통이나 관습화된 도덕적 가치처럼 우리 삶에 외재적으로 부과되는 규범에 대항해 탈주하는 삶은 우리들 수수로가 서로에게서 발견하는 어떤 공통성에 주목할 때 생겨난다는 점이다.

노마드(유목민)의 존재는 이러한 점에서 규범으로부터의 탈주이자 동시에 단순한 물리적 이동의 의미를 넘어서게 된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의 꿈이자 그 가치실현의 과정일 테다.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