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선명야당’과 김영삼·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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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강 산업경제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17-09-15 14:08:00

지난 1979년 5월30일 당시 야당인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비주류인 김영삼 의원(YS, 14대 대통령)이 당권파인 이철승 당시 총재를 누르고 신민당 새 총재에 당선됐다.

사쿠라 논쟁을 일으켰던 이철승 총재의 ‘(박정희 정권) 참여하의 개혁’ 노선에 맞서 ‘민주회복 선명야당’을 내세운 YS가 김대중 전 의원(DJ, 15대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승리한 것이다.

DJ는 전당대회 전날 신민당 대의원을 향해 “유신의 길은 동쪽이고 민주의 길은 서쪽인데 중도 통합할 수 있겠느냐”며 YS 지지를 요청했다.

1985년 2월8일 전두환 정권에 의해 미국 망명 중이던 DJ가 급거 귀국했다. 12대 총선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관제야당이던 민주한국당은 전두환 정권에 협조하면서 민주화를 이룬다는 이른바 타협 노선을 걸었지만, 국민들로부터 외면받던 터였다.

구심점이 없는 국내 민주화 세력을 하나로 결집시켜야 한다는 것이 DJ의 귀국 이유였다. DJ와 YS는 다시 한번 손을 잡았고 ‘선명야당 부활’을 기치로 내건 신민당은 그해 2·12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승리했다.

현대정치사에서 ‘선명야당’이란 구호는 수차례 있어 왔지만, DJ와 YS가 내건 두 차례의 ‘선명야당’ 기치는 한국 정치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꿔놓았다. 국민들은 반독재·민주주의 회복이라는 DJ와 YS의 ‘선명야당’ 노선을 지지했고, 결국 민주화를 이루는데 밑거름이 됐다.

8월27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당대표 수락연설에서 “우리의 길은 철저하게 실력을 갖추고, 단호하게 싸우는 선명한 야당의 길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30여년간 잊혀져 있던 ‘선명야당’이란 용어를 끄집어 냈다.

안 대표는 “우리는 실천적 중도개혁정당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확립해갈 것”이라고도 했다. 국민의당은 ‘선명야당’으로 탈바꿈 할 것이며, 실천적 중도개혁이 이념적 토대임을 밝힌 것이다. 안 대표는 한동안 선명야당과 중도개혁이란 말로 모든 연설을 시작하기도 했다. 지난 총선과 대선을 통해 ‘국민의당은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는 당’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든다. 안 대표는 정말 DJ와 YS가 말한 ‘선명야당’의 의미와 자신이 밝힌 ‘선명야당’의 의미가 같다고 판단하는 걸까.

국민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너뜨린 정상과 상식을 우리사회가 다시 회복하는 것, 나아가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해 모든 국민의 삶이 보다 풍요로워지는 것을 원하고 있다. 이를 시대정신으로 규정해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면 안 대표의 시대정신은 동쪽에선 ‘광주오월정신’이 되고 서쪽에선 ‘적폐(문재인 정부) 청산’이 된다. 이도저도 아니면 ‘중도개혁’을 시대정신으로 규정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은 중도통합이 뭔지 중도혁신이 뭔지 아는게 없다.

안 대표가 제시하는 정책적 대안도 찾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기선 제압용 독설만 있을 뿐이다. 안 대표는 ‘수차례에 걸쳐 시대정신을 말해왔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말귀를 못 알아듣는 국민들이 문제인 걸까.

DJ와 YS의 ‘선명야당’과 안철수의 ‘선명야당’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DJ와 YS는 군사독재정권하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것, 국민들의 시대정신을 ‘민주주의 회복’이라고 짚어냈고, 이를 실현할 대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행동했다. 국민들은 희망을 가졌다.

정치인의 행동과 말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을 이용하기 보다 국민에게 이용당하는 정치인이 돼야 한다. 한국현대사의 소중한 자산인 ‘선명야당’이란 말을 오염시키지 말기 바란다.

[김진강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김진강 산업경제부장·부국장 kjk5608@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