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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亂世)가 영웅을 배출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한국 언론에서 꽤 많은 주목을 받았다. 슈뢰더 전 총리는 영국병(病)을 치유한 마거릿 대처 총리와 더불어 독일병(病)을 치유한 강력한 지도자로 세간에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필자가 유럽에 주재할 당시인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슈뢰더는 독일 총리로 재임했다. 1990년 독일 통일 후 마이너스 경제 성장 지속으로 실업률이 20%에 육박함에도 불구하고 슈뢰더는 엄청난 연금과 복지를 퍼붓는 ‘유럽의 환자’ 독일을 수술하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2003년 ‘어젠다 2010, 혁신·성장·일·지속가능성’이라는 개혁 청사진으로 강력한 노동과 복지의 개혁을 밀어붙였다.
보수적 성향을 띤 지도자였음에도 더 진보적인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그의 용기 있는 개혁은 차기 선거에서 그를 낙마시켰으나 오늘날 독일을 유럽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완벽하게 부활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그 열매는 현재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타 유럽국들은 이를 벤치마킹 하도록 만들었다.
지금도 시대를 바꾸려는 개혁적 리더십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미국의 트럼프,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등도 비슷한 부류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패권 지향적이고 타국의 이익까지 간섭하려는 경향이 짙어 썩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는 못하다. 이들 외에도 집권 이후 지지율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미 있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지도자도 있다.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경우 온갖 구설에 시달리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는다. 마약을 퇴치하지 않으면 필리핀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소신이다.
근래 두각을 나타내는 정치인이 또 한 사람 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다. 한때 64%까지 갔던 지지율이 30%대로 뚝 떨어졌지만 그의 개혁 노선에는 거침이 없다. 국민 대다수가 싫어하는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면에서 제2의 유럽판 슈뢰더인 셈이다.
저성장·고실업의 프랑스병(病)을 치유하는 우선순위에 마크롱은 노동개혁을 올려놓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23.4%에 달하는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부터 살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개혁의 후퇴가 오히려 그에게 더 큰 정치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오직 결과로만 승부하겠다는 정치적 용기가 돋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이 노동개혁과 더불어 또 하나 강공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 있다. 바로 스타트업 열풍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최근 파리에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센터가 개장됐다. 청년 4명 가운데 1명이 실업자인 프랑스가 창업을 통해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파리는 더 이상 문화·관광의 도시가 아니라 경제 혹은 창업의 도시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의 도전도 신선하다. 뉴욕의 맨해튼을 제2의 실리콘밸리로 만들겠다는 플랜이 나와 주목을 끈다. 코넬대학과의 산학협력을 통해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스타트업 창업의 산실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는 도시와 대학의 리더십이 잘 접목되고 있는 사례다.
브렉시트(Brexit)를 통해 새로운 영국 만들기에 돌입한 런던, 독일판 4차 산업혁명의 핵심도시인 베를린, IT혁명을 통해 스타트업 메카로 재도약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더블린 등은 유럽에서 돋보이는 혁신 도시들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도 지방 중소도시들을 중심으로 스타트업 열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다.
달아오른 지구촌 열기…대조적인 대한민국, 스타트업에 ‘냉랭’
아시아에서도 이러한 바람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중국이 그 선봉장이다. ‘수퍼 스타트업’이 중국 경제의 신(新)병기라고 할 정도로 그 기세는 하늘을 찌른다. 매일 1만6000개의 스타트업이 탄생할 정도다. 인재와 자금이 몰리고 정부의 백업이 시기적절하게 잘 받쳐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10조달러 규모의 거대한 내수시장이 버텨주고 있어 잘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도록 안전장치도 마련돼 있다.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으로부터 중국에서 스타트업을 하려는 인재와 돈이 넘쳐나는 실정이다. 한국의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더 큰 시장, 더 유리한 환경에서 대박을 터뜨려 보겠다는 계산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성공하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꿈을 키우는 것이다.
일본은 대학을 중심으로 창업 열풍이 거세다. 100세 시대를 살면서 일생에 한번은 창업을 해봐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대응 1위 국가로 평가되는 싱가포르와 홍콩도 스타트업 열기가 살아나고 있다. 평생 직업훈련은 새로운 국가 어젠다로 부상하고 있다. 포스트 차이나 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동남아·인도에서도 스타트업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인도 모디노믹스의 핵심 골자 중 하나가 스타트업 육성이다.
이처럼 지구촌 전체가 혁신과 스타트업·창업 열기로 후끈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냉랭한 편이다. 서울이나 지방 어디에서도 가시적인 모습을 잘 만나기 힘들다. 굳어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겠다. 청년들은 스타트업·창업보다는 쉽게 평생을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안간힘쓴다.
부모도 자식들이 구태여 모험하지 않도록 무리해서라도 보호하려는데 급급하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기보다 물고기를 안겨 주기 위해 연연한다. 모두가 미래보다는 현재가 중요하고 당장 잘 살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모험이나 도전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아무도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회의 말로는 심히 우려된다.
사회지도층은 물론이고 언론이나 대학에서도 자각하려는 모습이 실종된 지 오래고 자기 이익을 위한 목소리 내기에만 열중한다. 이러다가 우리 전체 사회가 좀비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더 이상 치졸한 이기주의·냉소주의·편가르기 등으로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 세상 돌아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국가의 장래와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지 인지하고 과감하게 혁신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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