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정치권 ‘가을의 甲질’ 또 재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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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기자페이지 + 입력 2017-09-20 00:46:56

“문화·예술계는 당연히 진보적인 성향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박형준 동아대학교 교수는 본인이 출연 중인 인기 시사프로그램 ‘썰전’을 통해 이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매사 세상을 날 선 시각으로 봐야 하는 예술인들의 태생적 한계를 언급한 그의 발언은 이념적 성향을 떠나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보수계 지식인으로 꼽히는 박 교수는 지난 2004년 부산 수영구에 출마해 한나라당 소속으로 17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또 그는 대표적인 MB계 인사다. 이명박 전 대통령 대통령직인수위원회기획조정위 인수위원으로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대통령실 홍보기획관·정무수석비서관 등을 차례로 역임한데 이어 사회특별보좌관도 거친 이력을 자랑한다.

그가 남긴 말이 수주 만에 재차 화두로 떠올랐다. MB정부 당시 작성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부상하면서 부터다. 쓴 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명단에 오른 인사들. 명단의 작성 배경이 ‘권력의 지시’였는지 ‘권력에 아부’였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인 가운데 지구 반대편에서 열린 제69회 에미상 시상식은 참으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이날 시상식의 주인공은 자리에 없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오프닝부터 시상소감 등에서 할리우드의 강한 반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현지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풍자로 시작해 조롱으로 맺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수위는 높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다 해임된 숀 스파이서 전 백악관 대변인의 출연은 이날 시상식의 하이라이트였다.

에미상에서 느낄 수 있던 2017년 미국과 동시대의 대한민국은 분명 달랐다. 자유라는 이념아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도입된 두 나라의 이와 같은 수준 차의 원인을 두고 정치력에서 해답을 찾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발전할 수 없는 우리 정치권의 한계를 ‘반복’이란 키워드에서 찾기도 한다.

정치권에서 반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새정부 출범과 더불어, 특히 정권교체기와 맞물려 으레 재현되는 ‘복수의 정치’를 비롯해 말 바꾸는 것은 기본이고 이념적 줏대도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행동들은 너나 할 것 없다. 그리고 매년 반복되는 정치권의 고질병이 있다. 가을이면 찾아온다는 갑질. 국감이다.

올 국감은 이른바 황금연휴를 지낸 뒤 내달 1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매년 이 즈음이 되면 질의내용을 인지하지 못한 채 엉뚱한 고함을 치는 국회의원들을 뉴스화면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시기기도 하다. 대기업총수·전문경영인 등을 불러놓고 수 시간동안 방치해 망신을 준 뒤 차례가 되면 따끔하게 큰 소리 치는 의원들이 여럿 보이기도 한다.

이들이 경영인들에 애착을 보이는 특별한 이유는 있다. 뉴스의 관심을 얻어 덩달아 인지도를 높이고 지역구엔 자신이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음을 주지시키는 일종의 합법적 사전선거운동. 모름지기 올해도 수 명의 경영인들이 이 같은 놀음에 불가피하게 이용될 것이다.

가을이면 반복되는 군기잡기에 재계 안팎에서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지만 국민의 대표가 부르는데 그들 역시 함부로 빠질 순 없다. 한 국회의원은 총 10명의 기업인 증인을 요청했다고 한다. 최다인원을 불러 모은 셈이다. 면면을 보면 일부 고개가 끄덕여지는 업체들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발언시간을 감안하면 굳이 전부를 부를 필요가 있나 싶다.

국감은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의 대표로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어내야 하며 적절한 국회의 대정부 견제와 감시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시기다. 물을 것이 있으면 불러야하지만 자신의 차기 총선을 위한 기업인 소환은 국민이 준 지위를 그릇되게 사용하는 셈이다.

정치인이 기업인에 군기를 잡는 모습은 국민들에게도 일종의 카타르시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돈 많고 수많은 직원들 위에 서 있는 재벌이 TV에 등장해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충분히 그렇게 비칠 수 있다.

다만 명심할 것이 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유권자들이 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그 직장이 영속할 수 있게 동분서주 뛰고 있는 산업역군이란 점 잊어선 안 된다. 어차피 재현될 국감의 전경이지만 속는 셈 치고 한 번 더 바라본다. 부디 이번 국회에서는 지난해와 그 전 해에 반복됐던 불필요한 군기잡기 문화가 사라졌으면 한다.

[김도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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