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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이트가 금년에 발표한 작년 기준 세계 주요국의 제조업 경쟁력 평가를 살펴보면 중국·미국·독일·일본·한국 등의 순으로 나타나 있다. 6~10위권에는 영국·대만·멕시코·캐나다·싱가포르 등이 있다.
그러나 2020년이 되면 미국이 1위로 올라서게 되고 한국은 6위로 내려앉는 대신 인도가 5위를 차지한다. 한국의 바로 뒤에는 멕시코가 7위로 올라와 호시탐탐 6위 자리를 노릴 것으로 전망된다. 제조업 경쟁력과는 좀 더 다른 차원의 제조업 강국이라는 측면에서 순위를 평가해 보면 독일과 일본이 미국 혹은 중국보다 여전히 우위에 있기도 하다.
최근까지 금융 혹은 서비스 산업 비중을 높여온 미국이 다시 제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야흐로 제조업 혁신을 통한 경쟁력 끌어올리기 샅바 싸움이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에 대한 평가는 내부에서보다 외부에서 더 후한 평가를 받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에 대한 경쟁력 평가는 부품·소재 산업의 경쟁력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80년대부터 30여년간 우리가 추진해 이 부분에 대한 결실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딜로이트 평가와 같이 우리의 경쟁력이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적색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최근 글로벌하게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경쟁이 서비스산업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제조업 경쟁력 순위 싸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제조업의 미래에 대한 외부 평가가 보다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한국무역협회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4차 산업혁명 경쟁력이 서방 국가들과는 비교할 것도 없고 경쟁국인 일본 혹은 대만에 비해서도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내·외부 평가가 공히 한국의 미래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데이터를 보더라도 제조업 경쟁력 5위 국가의 위상치고는 대부분 글로벌 경쟁에서 크게 후퇴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국가별 논문 순위에서 한국은 12위로 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부문별 순위를 보면 빅데이터가 14위, 인공지능 13위, 클라우드 컴퓨팅 12위, 사물인터넷 5위, 3D 프린팅 8위 등이다.
이 부문에서도 미국과 중국은 1~2위를 다투고 있을 정도다. 중국의 부상이 크게 눈에 띈다. 지난 18년간 4.5조원의 돈을 쓰면서 건수 기준으로는 논문이 8배 증가하였다고는 하나 ‘피인용 지수’라고 불리는 국제 학술지 발표 논문게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논문의 질적 수준이 세계 평균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20조원이 넘는 국가 R&D 자금 대부분이 상용화보다는 형식적인 연구를 위한 연구로 전락하고 있는 형국이다. 연구비만 따내려는 교수들로 넘쳐나고 융합은커녕 좀비 내지는 먹튀만 양산하고 있는 뿐이다. 소위 지식인들이라고 불리는 부류들의 도덕적 해이 수준이 이미 극에 달하고 있다.
여기서 더 쳐지면 우리의 미래는 갈수록 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논문 피인용 관련 아시아권 대학 순위에서도 우리 대학은 하위권으로 밀려나고 있다. 카이스트가 4위로 유일하게 10위권 내에 들어와 있으나 서울대는 11위로 떨어졌다. 전반적으로 싱가포르·홍콩·일본은 물론이고 중국 대학보다도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대학 중심으로 하는 산학협력도 유명무실해지고 돈은 쓰면서 성과는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초라하다.
미국·중국·일본 등에서는 산학일체가 대세로 정착하고 있지만 한국은 거꾸로 산학별거(別居)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린다. 이들 나라에서는 대학이 창업의 요람이 되고 있고 교수가 창업가 혹은 기업가가 되는 분위기가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다.
반면 한국은 대학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니 기업은 대학을 쳐다보지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대학과 기업의 찰떡궁합이 오래 전부터 관행화되고 있으며 정부도 멤버로 참여하는 등 대학 주축의 연구개발과 창업이 대세인데 말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대학 구조조정은 이미 코앞에 와 있건만 우리 대학에서는 위기의식이나 선행적 행위들은 거의 보지 않는 듯하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뒤에는 스탠퍼드와 UC 버클리의 물밑 경쟁이 깔려 있다. 미국에서는 창업과 혁신은 대부분 대학에서 출발한다. 4차 산업혁명의 메카로 대학이 되는 것도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다. 대학이 시작하고 기업이 마무리하는 패턴이다. 다시 말해 결과물을 기업이 상용화하여 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해내는 개념이다.
중국도 미국도 이런 방식을 고스란히 벤치마킹 하고 있다. 베이징 혹은 상하이 같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방 도시들도 대학을 기반으로 하는 산학협력이 봇물을 이룬다. 이에 대학 투자 자금이 대학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일개 대학 연구소에 100억원이 지원되는 사례도 있다.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대학·자금·인재 삼박자가 갖춰져야만 플랫폼의 토대가 견실해진다.
4차 산업혁명을 끌고 나갈 혁신 플랫폼 혹은 비클이 대학 중심으로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현장이 결합하는 수순을 밟는다. 정부는 이러한 혁신 활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백업에 초점을 맞춘다.
일각에서는 제조업 강국인 한국에게 4차 산업혁명이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 나갈 동력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현재의 실력 혹은 잠재력을 인정하고 있는 결과로 이해된다. 기분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하는 단순한 립서비스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실로 심각하다. 인건비 상승·세금 인상·규제·친(親)노동 등 정책으로 기업은 더 밖으로 나가려 한다. 일본 기업들은 해외 공장을 정리하고 국내로 들어가는데 우리 공장은 다시 외국에 둥지를 마련하기 위해 곳곳을 기웃거린다. 밖에 있는 인재가 국내로 들어오기는커녕 그나마 국내에 있는 인재들마저 해외로 내쫓고 있는 판이다.
일본과 중국은 미래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복지에 치중한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소득주도에다 혁신주도 성장의 고리를 끼우고 있기는 하지만 과거 정권과 같이 용두사미로 끝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정치인은 무능하고 정부는 소신과 의지가 부족하며 대학은 글로벌 트렌드와 무관한 움직임을 보인다. 기업 혼자서는 역부족이고 대·중소 상생협력도 수박 겉핥기식이다. 정신을 차리고 생태계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갈수록 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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