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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정책이 새 정부 들어서 단연 화두이지만 그리 달갑지 않은 이슈다. 신고리 5·6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 재개를 둘러싼 극도의 국론분열 양상이 일단 봉합됐지만 원전 정책을 둘러싼 찬반논란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가시지를 않고 있다. 이른바 시민참여단의 국민들이 원전 필요성에 더 많이 도장을 찍기는 했지만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바뀌지 않는한 국민 여론은 계속 찬반으로 나뉘어 대립할 수밖에 없다.
전기 에너지는 오늘날 인류의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인류는 단 한시도 전기 없이는 살 수 없는 현란한 문명을 만들어 편리한 삶을 누리고 있다. 전기는 앞으로 이어질 4차 산업혁명에서도 에너지 원천이 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인류는 상상할 수 없는 문명의 도약이라는 토대에 전기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바로 그 에너지 정책에 따라 한 국가의 운명이 달라진다. 전기 에너지 정책에서 반드시 국정철학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에너지 철학은 곧 장기 로드맵이다. 다른 말로 단기 여론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강한 의지에서 출발한다. 국민적 지탄을 받는다고 해도 중장기적으로 국민과 국가에 실익이 있다면 절대 변하지 않아야 할 정책이 바로 에너지 정책이다. 국가 명운을 좌우할 이 같은 에너지 정책이 신고리 5·6호기 처럼 과연 여론재판에 의지할 사안인가를 엄정히 자문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국정철학에 자신감이 없어 정부가 국민에 묻는 식으로 면피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에너지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가장 강력한 권력의 방편이 될 중심에 서 있다. 과거 치수와 식량이 통치권력의 핵심에 있었지만 지금은 에너지가 그 자리를 상당부분 대체했다. 에너지 없이는 한 국가의 경제행위 자체는 물론 미래의 운명을 논할 수 없다. 그 에너지의 근간이 바로 전기이며, 전기 생산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원자력이다. 탈원전의 공약이 틀렸다면 바로 잡아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국민을 위한 역선택이라면 그것은 용기 있는 결단으로 박수를 받을 일이다.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위험을 담보한 채 원자력에 매달린 이유는 에너지 권력의 우위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국가도 개인도 희망이 없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에너지 전쟁이다. 보다 많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호간 두려움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 전쟁을 촉발시켰다.
원전의 위험성만을 본다고 해도 이웃한 중국의 경우 바로 우리 바다 코앞에서 무수히 원전을 짓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원전의 위험성이 한반도에 드리운 이상 우리가 선제적으로 탈원전을 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볼 일이다. 우리의 원전이 훨씬 안전하게 지어지고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스스로 걷어찰 이유도 없다.
에너지 정책이 국정철학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단호하다. 수십년 장기 마스터플랜을 갖고 높은 자체 기술력으로 치밀하게 짜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적지 않은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당장은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실익이 많지 않기에 인기 없는 정책을 펴야 하는 것이 에너지 정책이다. 그래서 국민에 대한 진정성 있는 책임감을 절절히 부여잡지 않고서는 에너지 국정철학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원전과 반도체는 분야가 다른 산업군이지만 우리 경제에서 닮은 꼴이다. 장기간 고통의 터널을 감내한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반도체는 민간에서, 원전은 국가 주도로 사실상 ‘자수성가’를 한 케이스다. 극빈국의 나라가 이루기 힘들었던 반도체 선진국과 원전 강국의 지위를 우리는 꿰찼다. 두 분야 모두 유사하게 선진국들의 냉혹하기 그지없는 냉대와 무시 속에서도 수없이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렸기에 성공이 가능했다. 나름의 강인한 철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반도체와 원전은 우리 경제에 큰 빛이 돼 주었다. 삼성전자가 최근 사상최대 실적을 이어간데는 반도체가 자리했듯이 우리 경제가 선진국 문턱까지 온데는 전기가 바탕이 됐다. 반도체 없는 전기 문명 그리고 전기 없는 반도체는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이를 해냈다. 특히 한국 기술로 만든 반도체는 전 세계 사람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전자기기들에 거의 대부분 사용되고 있다.
에너지 정책에 영혼이 담겨야 하는 이유에는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사용할 에너지는 순수과학으로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데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정책은 전기를 생산한다는 아웃풋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 무엇을 투입해야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 인풋에는 반도체와 원전의 기술확보 과정에서도 그랬듯이 고된 과학적 접근이 수반된다. 이들 과학은 당장 돈이 되지도 않고 기약도 없어 보인다. 지금의 선진국들은 이 분야에 사활을 걸어 왔다.
전자기유도의 발견으로 수천년간 하늘에 있으면서 신성시 됐던 빛이 땅으로 내려왔다. 서양과학사에서 이는 출발 당시 돈이 되지 않는 과학이었다. 지구상 모든 생명의 에너지 원천인 빛의 정체는 전자 등 전하를 가진 소립자의 ‘가속도 운동’으로 탄생한다. 원운동과 함께 파동(방향전환) 또한 가속도다. 극미의 원자 속 소립자 전자는 이렇게 파동적 성질로 인류에게 빛(전기파+자기파)을 선사해 주면서 동시에 입자적 운동의 성질로 전자문명의 신기원을 낳게 했다.
과학자들의 위대한 발견 중 또 하나는 에너지(보손, 힘의 매개)가 물질(페르미온, 소립자)이 되고 물질은 또한 에너지가 된다는데 있다. 문명의 총아인 전자기력의 매개입자이자 빛의 알갱이인 광자 또한 입자와 반입자의 쌍생성·쌍소멸로 탄생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는 거시의 눈으로 봤을 때 무에서 유가 창조되고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듯 보인다. 마치 신의 원리다.
실제로 이율배반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갖는 전자의 운동성은 신의 놀이에 버금간다. 빛의 원천인 파동성으로 원자의 정상궤도를 유지해 만물을 존재하게 하고, 동시에 입자성으로 역시 물질과 생명의 원천인 화학결합의 주인공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해 나가야할 에너지 정책은 아웃풋이라는 생산과 함께 인풋이라는 연구개발 또는 과학인력에 대한 중장기 투자가 중요하다. 그 핵심에 핵 물리학을 기반으로 해 온 원전이 중요하게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곱씹어야 한다.
엄밀히 원전 또한 청정에너지다. 그만큼 안전관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기술개발에 국운을 건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 부문에서 선진국 보다 앞서가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원전은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는 에너지원이 될 뿐만 아니라 국부 창출의 소중한 근간이 된다. 한국인의 근성을 보면 원전 안전도롤 획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는 연구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가 이를 조직적으로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전기술을 목표 삼고 한국에서부터 이를 적극 운용해 나간다면 우리의 원전 안전성과 기술력이 진정성 있게 신뢰받는 만큼 글로벌 원전 시장을 가꾸어 갈 수 있다. 이를 토대로 한 핵 에너지 기술은 인공태양 기술인 핵융합을 비롯한 미래의 소립자 기반 무한 에너지원 기술개발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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