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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차 한·미안보협의회(SCM) 이후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를 둘러싸고 또다시 찬반논란이 격화되고 있는 모습은 우리의 안보를 스스로 위협하는 우려스러운 분열상이다. 논란의 양상이 국가안보라는 공동의 목적 보다 마치 상대진영을 이기는 것이 목적인냥 된 듯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다 이른바 보수-진보 진영 간의 이데올로기 논쟁 같은 싸움으로 비화되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한·미 양국 국방장관이 공동 주재한 이번 SCM 회의는 하루 앞서 양국 합참의장이 주재한 제42차 한·미군사위원회(MCM) 회의 직후 열렸다는 점에서 양국 간 국방라인 최고위급 실무 회의의 성격을 띤다. 우리가 처한 위기의 안보환경에서 아주 중요한 이슈들을 결정하는 자리였다는 점이다. 특히 양국 군사협력 문제와 함께 한·미 최대 현안인 전작권 이슈가 관심이 모아진 이유다.
한·미 국방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전작권의 신속전환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내년까지 전환계획을 보완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부터 본격 깃발이 오른 전작권 환수는 노무현 참여 정부 당시 2012년으로 환수일정을 잡았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2015년 말로 1차 연기된 후 다시 조건부 전환으로 무기 연기됐다. 전작권 이슈가 진영논리로 비화된 것은 이 같은 보-혁 정권 간 전혀 다른 정책의 변화이유가 컸다. 그 중심에 잘못된 보수의 여론이 있음을 우리는 엄정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전작권 환수에 속도를 내는데 대해 보수진영의 반발이 거센 것은 충분이 예견된 대목이었지만 보수진영의 경우 보수 전체의 의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늘 그랬던 것처럼 전작권 환수에 관한한 일부 현역장성을 포함한 예비역 장성들의 목소리가 유달리 크기 때문이다. 보수라는 이름을 빌어 안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국민과의 괴리현상을 촉발시킬 뿐이다.
예컨대 보수정권도 육군중심의 이른바 ‘별들의 잔치’를 개선하기 위한 국방개혁을 진보정권 못지않게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그 한계를 넘어가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국가안보라는 절체절명의 사안이 이념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는데 있다.
지금보다 굳건한 한·미 방위동맹은 우리의 여건상 분명히 필요한 일이다. 아이러니컬하지만 그런 점에서 더욱 전작권 환수가 필요하다. 보수층 대부분으로부터 마음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과의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자주국방 노선은 그 단적인 예다. 박 전 대통령의 자주국방 정책을 반추해 보면 한·미간 결속이 아무리 든든한 방위동맹이라고 해도 미국은 더 큰 국익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공포스럽게 회상할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북한이 청와대 인근까지 암살단 특수부대를 침투시키는 전무후무한 1·21 사태를 일으키자 군사적 대응을 위해 미국에 간절히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약 30만명에 달하는 파병으로 수만명의 젊은 피들을 흘려준 희생이 있었음에도 싸늘히 우리를 무시했다. 이유는 큰 그림으로 본 미국의 국익 때문이었다. 미국은 또 1·21 사태 이틀 후 발생한 북한의 푸에블루호 나포사건에서는 정 반대로 영해 침범 사과까지 했다. 이는 소위 피의 혈맹국이지만 미국의 국익과 자국민 보호를 우선한 정책이다. 다시 말해 우방국인 우리를 철저히 배신한 사건에 다름 아니었다.
미국은 나아가 구소련과의 동서 화해무드 국면인 데탕트가 자국의 이익에 우선한다고 보고 ‘닉슨 독트린’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이후 사실상 우리를 사지에 방치한다. 베트남에 대규모 군사를 파견하고 사실상 미국의 전쟁터에서 우리의 젊은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주한미군 철수가 감행된다. 미국의 데탕트 정책은 패전이나 다름없는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자가 영향을 미쳤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 전쟁에 동참해 준 피의 우방을 향해 등을 돌린 미국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눈으로 보면 그 선택이 틀리지 않는다는데 오한이 돋는다. 이런 상황이 과연 앞으로 재연될 가능성이 없을까. 국가의 명운이 수시로 왔다갔다하는 전쟁 상황에서 미국이 국익을 우선해야 할 국면은 수시로 닥친다.
전작권은 전시상황에서의 최종 결정권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최종 결정권자는 우리 국민의 생명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그런데 전시상황에서 우리 국민의 생명과 미국의 국익이 정면충돌할 경우 우리는 미국에 우리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 담보해 줄 것을 강제 요구할 수 없다. 미국의 국익에는 미국 국민의 희생도 직·간접 포함 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들 국민의 안전과 국익을 우선하는데 대해 우리가 대책이 없다면 우리 국민은 고스란히 전쟁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처지에 빠진다. 전쟁이 용서가 없는 무자비한 살육전임을 감안한다면 대량 살상무기들이 넘실대는 현대전의 참상은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전시에 국민생명 안전을 최우선 담보해야 할 분단 한국의 절절한 대책 최전선에 바로 전작권이 있다는 것이다.
전작권 환수가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흔들거나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처럼 상황을 와전시키는 잘못된 여론이 있다는데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해 전작권 환수가 연합방위능력 강화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북한의 현실적 위협이 늘 상존하기에 미국의 가공할 전략자산을 활용한 전시운용을 우리가 해내기 버겁다. 그럼에도 미국이 진정한 우방이라면 우리에게 전시 결정권을 주고 전략자산 운용능력으로 우리를 돕는 식으로 하는 것이 옳고, 그래야만 미국도 스스로 국제적 위상을 높힌다. 전작권은 속된말로 자신보다 약한 나라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모양새로 비춰진다.
우리는 미국에 단일 군사기지로는 세계 최대규모로 평택을 제공하면서 천문학적 주둔비를 분담하고 있다. 한반도 내 미군기지가 단순히 대북용일 수 없다는 것은 과거 냉전시절부터 증명돼 오기도 했다. 한반도는 지금도 미국의 글로벌 군사작전에 큰 도움이 된다. 중국이 미국의 유일한 대항마로 구소련을 대체하며 부상하면서 미국에겐 한반도가 최적의 전선이 됐다. 그것은 한반도 통일 이후 더욱 절실해진다. 그럴수록 우리가 대비해야 할 것은 과거 미-소의 데탕드 변화처럼 미-중의 관계도 언제든 소용돌이 칠 가능성이 있다는데 있다.
한 국가의 진정한 주권은 스스로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가 가늠한다. 가령 한국군대가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국민들 생명을 보호하는 군대로 파견돼 있고 전쟁권한을 갖고 있다면 아마도 많은 우리 국민들은 그 나라가 진정한 주권국가인지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전작권 환수에도 주권의 잣대인 5000만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걸려 있다. 그런 점에서 마치 이권이 걸린 듯한 세력싸움, 이념논쟁으로 지향하고 있는 전작권 환수 논란은 정말 창피하고 소모적이기에 부질없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 미국과의 지속적인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전작권 환수에 대한 명분을 우리 스스로 쥐는 방법 이외에는 적절한 대안이 없다. 과거 미국이 우리보다 먼저 전작권 환수를 꺼내들고 그런 입장을 취했던 것을 상기해해야 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주한미군의 장기 주둔을 위해서도 전작권으로 인해 한·미 간 불협화음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아울러 미국은 한반도 전쟁권한이 없다고 해도 전쟁 발발시 우리의 불가피한 협조요청이 있을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굳이 전작권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배경들이다. 오히려 우리 정치권력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전작권 논란이 계속되면서 전작권 이슈가 진영 간 싸움으로 전락했다. 대통령 자신과 국운을 건 소위 빅베팅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주국방 정신 만큼은 보-혁을 떠나 희석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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