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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1개월을 맞이하면서 국내적으로는 대선 캠프와 러시아 스캔들 관련 여진이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확실히 부활의 조짐을 보이면서 정권의 불안감은 사라지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국익 우선’이라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접근이 정책적으로 백업이 되면서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고 일자리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외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해 갈 수 있는 여건이 생겨나고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런 시점에서 미국의 절대적 이익이 걸려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일정은 눈길을 끈다. 트럼프를 맞이하는 아시아의 주변 상황을 보면 여전히 매우 복잡하다. 중국은 시진핑 2기가 출범하면서 신(新)시대라는 기치에 걸맞게 외견상으로는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일본은 아베 정권이 재신임을 받으면서 일본의 부활 혹은 재건이라는 가치에 더욱 힘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독불장군식 핵무장을 통해 미국과 직접 상대하려는 속셈을 굽히지 않고, 한국은 북한의 핵보유에 대한 우려로 군사적으로는 미국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여러 형편들이 트럼프의 순방을 며칠 앞두고 한·중 간의 사드 봉합을 위한 정치적 화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의 패권 야욕과 경제적 공세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판국이다.
이러한 제반 상황들이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시선을 놓치지 않게 하고 있다. 오바마 전(前) 대통령이 추진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Partnership)’으로부터 전격적인 탈퇴를 선언했지만 미국이 아시아에 대한 이익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트럼프식(式) 아시아 다루기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즉 다자간의 협정을 통해서는 미국의 확실한 이익을 지켜낼 수 없기 때문에 양자 간의 협상을 통해 보다 큰 이익을 챙기겠다는 계산이 이면에 깔려있다.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봉쇄하겠다는 셈법이다.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은 다양한 포석을 깔고 있는 다목적 성격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경고와 중국의 압박 유도,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한 한·중·일 3국과의 양자 협상, 중국보다 미국 편에 서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강력한 시그널을 동남아 국가들에게 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순방 이후 형성될 아시아의 분위기와 질서에 관심이 주목된다
트럼프 순방을 맞는 아시아 각국들은 또 다른 손익계산으로 분주하다. 우선 일본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절대적 동맹이 일본이라는 눈도장을 확실히 찍으려고 한다. 경제적인 양보를 하더라도 시차를 둠으로써 일본 기업에 대한 불이익이 일시에 닥치지 않도록 비위를 맞춘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면전을 피하는데 모든 제스처를 동원할 것이다. 북한과의 압박 요구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통상 보복에 대해서는 카운터펀치를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구태여 먼저 이를 끄집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와 동행하는 미국 기업에게 일부 시장을 오픈하더라도 불필요한 긴장 국면을 조성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를 맞는 동남아 국가들의 속내는 더 복잡하다.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실리 챙기기 카드를 버리지 않을 것이나 일시적으로나마 트럼프 편에 설 확률이 높다.
과거와 다르게 우리의 입장도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안보를 미끼로 한 한·미 FTA 재협상이라는 미국의 공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데 익숙한 트럼프식 강공 작전에 대한 다단계 협상 카드가 준비돼야 한다. 소나기를 피하려면 가급적 협상을 길게 끌고 가는 방법도 필요하다. 주고받는 협상에서 명분과 실리가 확보돼야 한다.
주는 것을 통해 개방의 실익·경쟁력 확보·일자리 창출·시장의 확대 유지 등 큰 틀의 기조를 철저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어공(어쩌다 공무원)’같은 아마추어적 접근이나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에 치우친 학자적인 접근도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 국가나 지역에 미치고 있는 힘의 논리나 균형추를 잘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와중에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와 그것들을 활용하는 지혜도 요구된다.
트럼프의 이번 아시아 순방은 역내 질서를 새롭게 구축해 나가는 또 하나의 시작이 될 공산이 크다. 때마침 중국은 ‘분발유위(奮發有爲·분발하여 성과를 만들어낸다)’를 천명하면서 주변국에 대한 외교적 공세를 더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중국판 신(新)시대 즉, 뉴 차이나(New China)의 모습이다.
중국의 저의는 미국에게 아시아에 대한 공세를 한 치도 늦출 수 없도록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아시아 각국의 정서가 미국에게 썩 우호적이지 않지만 중국의 야욕에 대해서는 더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미국이나 중국도 이런 판세를 잘 간파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을 통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경쟁을 서슴지 않게 하는 원인 제공을 하는 셈이다. 어느 쪽이든 모두가 자국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이다.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 이후 형성될 이 지역의 질서와 분위기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실로 복잡다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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