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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통치자금이 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확히 통치자금의 성격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근거리 인사들인 이른바 문고리 권력을 통해 국정원에서 상납받았다는 특수활동비 수십억원을 놓고 뇌물죄 또는 횡령죄로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과 불가피한 통치자금이라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상납금 전액이 공익적 활동에 사용된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사실 없다. 반대로 일부 사적으로 사용됐다고 해도 그것을 공적 성격으로 보는 반론도 상당하다.
권력의 은밀성은 대체로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든 일어나는 일이다. 대통령제 국가는 유달리 그 권력이 막강하다는 점에서 통치행위가 음지에서 행해질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높인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늘 발가벗겨지거나 단죄되는 우리 대통령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특히 큰 관심사이자 빅뉴스가 됐다. 막강한 권력만큼 은밀성이 따라다니다 보니 부정한 돈의 흔적들이 임기동안 쌓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업무가 100% 공개되는 투명한 권력이 이상적 통치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말처럼 이상이다.
실제로 통치행위가 비밀스럽다는 것을 꼭 정당하지 못하다는 말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청와대 안주인이 되면 그것을 받드는 모양이 이어지고 있는 배경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양한 여론이 상존하는 것은 당연한 만큼 통치과정에서 아무리 옳은 정책이라고 해도 시시비비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물론 그 반대는 더더욱 당연히 일어난다. 최고 권력자의 통치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고 소위 은폐·엄폐가 필요해진다. 탈법과 위법을 넘나들어야 하고 때로는 초헌법적 권력의 힘으로 반대파를 제압해야 하는 탓이다. 아니 대통령은 그런 유혹을 수시로 받는다.
따라서 통치행위를 사법적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면 이번 국정원 사건도 대통령이 권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낯부끄러운 일로 규정된다. 그래서 단죄여론이 많다. 청와대 차원의 정당한 특수활동비가 있음에도 굳이 국가를 위해 사용돼야 할 비밀자금이 청와대로 흘러들어 갔으니 잘못이다. 이 돈 중 수억원이 문고리 3인방에 집행되고 청와대 수석들에게 적지 않은 떡값 등으로 제공됐으니 흥청망청 썼다. 권력의 전횡이고 구태가 틀리지 않는다. 돈으로 측근정치를 하는 오랜 관행, 그리고 그 유혹이 또다시 발가벗은 대통령을 만들어 냈다.
검찰이 국정원 특활비의 사용처를 밝히겠지만 일단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대통령이 주도하고 사적으로 쓴 용도가 추정되고 있다. 쌈짓돈, 비자금이란 말이 낯설지 않은 상황이 됐다. 특활비가 국민의 세금으로 100% 조성이 됐다면 국민의 호주머니를 턴 횡령이고, 설사 이를 대통령이 몰랐다고 하면 관리책임이 있기에 배임이다. 특활비 중 일부가 과거처럼 기업들로부터 강압적으로 상납 받은 돈으로 조성됐다면 그것은 부정한 돈을 받은 것이기에 뇌물수수다.
이처럼 사법적 테두리에서 단죄를 하고자 한다면 박 전 대통령은 추가기소를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법적 판단으로 정의의 집행이라는데 왈가왈부 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사법부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사법부 판단마저 권력에 고개를 숙이거나 또는 정치적 흥행에 휘말릴 경우 그 신뢰가 추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의 사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경우가 흔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당대 정권 아래에서는 넘어가고도 전 정권이 되면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 사례가 적지 않게 목도됐다. 권력의 시녀라는 말은 사법부도 들어왔다.
법학자들 사이에서 통치행위가 사법권력을 넘어서 판단해야 하는 당위성이 그래서 인용돼 왔다. 정의의 최후보루가 무너지면 안 되기에 그것을 넘어선 고도의 정치적 판단인 통치행위가 불가피하다는 논거다. 즉, 사법부의 최후 정의를 살리기 위한 초법적 판단이 통치행위의 정당성으로 부여되는 논리다. 이는 통치행위가 부정부패의 근간이 되도록 문을 열어 준 것도 사실이지만 적지 않은 나라들에서 권력자의 통치행위가 여전히 인용되고 있는 배경에 바로 국익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크다.
아울러 우리의 정치환경을 보면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대통령은 사법적 테두리를 넘나드들 환경이다. 대통령은 권력과 죄인이라는 양날의 칼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으로 입성하기 위해서는 단죄를 통한 ‘시원한 세(勢)몰이’가 국민들 입맛에 맞는 정치환경으로 숙성했다. 역대 이런 환경들은 정치인들이 국민을 권모술수와 교언영색으로 속이면서 만들어 낸 비열하고 조악한 싸움판이다. 적대적 세력에 대한 용서는 정치적 자결로 이어지는 살벌한 시스템이 통치행위의 부정부패를 심화시키고 확산시켰다. 결국 대통령의 은밀한 권력은 필연적으로 반복됐다.
권력으로 정의를 재단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생존수단이 됐다. 그것이 또 다른 권력형 죄가 발생하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사법적 정의’보다 ‘권력형 정의’로 용서가 없는 환경이 되다보니 통치행위에 빠져들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통치자금을 조성한 대통령들은 큰 도둑으로 추락했다. 지난 정권 한국의 대통령들은 대부분 대도(大盜)로 단죄를 받거나 같은 이유로 국민적 여론재판을 받았다.
국정원은 이런 통치행위 파도를 타면서 자의든 타의든 속된말로 사냥개 역할을 해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과거 군사정부 또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는 아예 대놓고 권력의 시녀 역할을 자청하며 전 방위 칼을 휘둘렀다. 이어진 국가정보원도 마치 관례처럼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벗어나지를 못했다. 반면 국가를 위한 숭고한 비밀공작은 빛을 바랬다. 권력이 바뀌면 국가를 위해 본분을 다했던 사람들까지 무더기로 옷을 벗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야 할 국정원 직원들에겐 충성심을 가질 수 없게 했다.
국정원 본래의 업무 지향성은 숭고하다. 직접적 위협인 북한의 대남공작을 사전에 면밀히 파악해 선제적 대처를 하는 일은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아울러 국익에 직·간접 관여되는 수많은 국외정보들을 수집·분석해 대통령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실로 막중한 업무다. 국익과 국익이 부딪치는 외교에서 승자는 바로 정보다. 국정원이 제역할을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존재도 가늠하기 힘들만큼 직접적 위협이 닥친다. 그럼에도 권력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에 자기사람을 심는 적폐 관행이 여전하다. 외견상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바꾸지만 속내는 또 다른 권력의 은밀한 성을 쌓는 과정이다. 국정원 직원들은 애국심을 갖기 힘들다.
은밀성 때문에 통상 국정원을 통해 관리되는 통치자금이 반대로 완벽한 공익성을 구현할 수 있다면 굳이 통치자금을 비자금처럼 따로 운영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통치자금의 성격상 완벽한 정의라고 규정짓는 자금의 성격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사법적 성격을 넘어서는 판단에 의해 움직인 자금이라면 해석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통치자금의 용도 자체를 무 자르듯 시원하게 정의할 수 있다면 굳이 은밀성조차 사라져야 한다. 은밀성이 함의(含意)된 통치자금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된다. 이를 완벽히 실현한다면 정말 국민의 존경을 받는 깨끗한 정부인냥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정보의 사각지대로 떨어질 위험성을 동시에 키운다. 철저히 비밀리에 움직이는 정보전에 밀려 국내외적으로 사지가 묶이는 상황이 발생하고 국민과 국가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국정원이 엮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돼 온 통치자금을 전면적으로 없애기로 한다면 행복한 나라, 부강한 나라로 갈 수 있는 대안이 확실해야 하고 그 대답을 해야 한다. 이에 확답을 못한다면 여전히 권력은 통치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정치적 단죄의 부메랑은 또 닥치고 불명예스로운 권력이 또 나올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국익을 위한 통치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온전히 부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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