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이 주권자로서 인정받는 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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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난민을 통해 근대 주권사상에 기초를 다진 루소의 사회계약론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11-11 18:43:24

인민(국민)이 인민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컨대 인간은 동물적 존재로서 먹고 자고 싸고 성적 만족을 추구한다. 일부 고등동물들처럼 군집을 이루며 살고, 노동을 통해 집을 짓고, 가축을 기르며 문명을 구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도로만은 인간의 정치적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주권자로서 한 명의 인민은 주권 없는 인간 존재 그 자체와는 어떻게 다른가.

‘단순한 사람’ 혹은 주권 밖의 살덩어리

근대의 인권 개념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역설 중 하나는 인간이 인권을 가진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시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의해 날카롭게 직시된 이 물음의 의미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존재가 바로 난민이다.

최근 유럽 난민 사태를 경과하면서도 확인됐듯(아렌트에게는 2차 세계대전기의 난민이 보여주었듯), 국경을 건너던 난민들이 이주 도중 사망하는 사태가 즐비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어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난민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들은 ‘국가’를 잃은 존재들이기에 이들을 인권의 주체로서 보호할 법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권의 개념은 인간으로서 생존할 권리, 타인에게 짓밟히지 않을 권리, 노동을 할 권리 등 포괄적인 함의들이 들어 있지만 문제는 주권의 영역을 벗어나면 이 모든 권리들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볼 때 제2차 세계대전기에 국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국경들 사이를 배회한 난민들은 그냥 뼈와 살을 가진 동물적 존재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유사한 형태의 물음이 주권의 화두를 통해 18세기에 먼저 제기된다.

예컨대, 루소는 국민적 자격을 잃은 ‘적’(敵)을 국경 밖으로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들을 도덕적 ‘인격’이 아니라 ‘단순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단순한 사람이란 동물적 신체를 가졌을 뿐 어떠한 정치공동체의 소속을 갖지 않는 살덩어리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주권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존재는 ‘시민’이 아니며 따라서 인권도 갖지 않는 존재로 인식된다.

인민을 인민으로 만드는 것

인간은 정치공동체에 속하면서, 즉 시민이 되면서 비로소 인권을 갖는 존재로 인정받게 된다. 반대로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인간은 어떻게 시민이 될 수 있는가 혹은 인민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미 인민이 돼있는 것인가.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모든 역사를 초월해 인간이 근대적 의미의 주권자로 존재했다고 볼 수는 없다. 루소는 인민을 탄생시키는 과정을 ‘인민을 정초’하는 과정이라고 규정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민을 정초하고자 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자신이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감지해야 한다. 즉 그 자체로 완전하고 고립된 하나의 총체로서의 각 개인을 더 큰 총체의 한 부분으로 전환시킬 수 있음을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인간에게서 그 자신의 역량을 박탈하는데, 외부로부터 그의 역량을, 그가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강점을 부여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루소에 따르면 정치공동체가 출발하는 과정은 개별 인간들의 자립성이 공동체의 상호의존성으로 대체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동시에 이 과정은 공동체 내의 분파를 허용치 않는 과정이며 총체로서의 인민들이 암묵적인 사회적 결속의 관계를 맹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과정은 책의 제목처럼 ‘사회적 계약’으로 이해된다. 사회적 계약으로 결속된 인민들은 법을 만들어 내고, 법에 기반해 그들 자신만의 도덕과 여론의 장을 형성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 이미 특정한 국경 안에 위치해 있으며, 스스로가 인지하기 이전에 이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인권을 보장받고 있다.

반면, 루소가 말하는 ‘단순한 사람’이란, 이 국가체제에 소속되지 못한 존재들 일반을 가리킨다. 그들은 인간이되 시민이 되지 못했으며, 인간이되 역설적으로 인권을 갖지 못한 존재들이다. 현대 주권론의 다양한 논의들은 이 (단순한) 인간과 (주권자로서의) 시민 간의 구별 속에서 본격화된다.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