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도로 없이 소화기만 있는 ‘이름만 안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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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진단] 화재 없는 안전마을 관리 부실

소방서 인력·권한으로 관리 어려워…지자체가 화재예방 사업 주도해야

이지현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7-11-17 16:34:21

전국 소방서는 2010년부터 화재 없는 안전마을(이하 안전마을) 행사를 열고 있다. 낡고 오래된 주택이 몰려 있어 소방 여건이 나쁜 지역을 지정하고 주민 상대로 화재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안전의식을 고취하는 행사다. 서울시에만 안전마을 245곳을 지정했다. 하지만 해당 행사가 보여주기 식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스카이데일리는 서울시 안전마을 2곳을 찾아 현장을 진단했다.

▲ 서울 동대문구 한빛로 5길20 일대 골목길 곳곳에서는 관할 소방서가 설치한 ‘화재 없는 안전마을’ 현판과 3.3kg 분말형 소화기들을 볼 수 있다. 사진은 벽에 내걸린 소화기 ⓒ스카이데일리

서울 동대문구 한빛로 5길20일대 좁은 골목.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낡은 집들이 따닥따닥 잇대어 있다. 골목 벽면 곳곳에는 ‘화재 없는 안전마을’ 현판이 붙었고 그 옆에는 3.3kg 분말형 소화기 2대가 함께 걸렸다. 벽면에 생뚱맞게 달라붙은 빨간 현판은 낡은 동네와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소화기는 벽에서 튀어 나와있어 좁은 골목을 지나다 옷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이 마을에서 14년째 사는 주민 곽은진(45·여)씨는 “재개발이 확정돼 주택을 철거할 예정인데 어떻게 안전마을로 지정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곽씨는 “소방관들이 느닷없이 마을 골목 입구에 나타나 안전마을 행사를 연 뒤 소화기만 벽에 달고 철수하더라”며 “소방교육을 실시하거나 가정 비치용 소화기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택이 워낙 다닥다닥 붙어있어 불이 나면 저 소화기로 진압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며 “밤엔 소화기가 보이지도 않고 벽에 허술하게 붙어있어 행인이 소화기에 부딪혀 다칠까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같은 마을 주민 구영숙(74·여)씨는 “소화기 사용법을 모른다”며 “소방관들은 행사에 참석한 주민 일부에게 소화기들을 나눠줬으나 사용법은 알려주지 않고 사진 촬영한 뒤 황급히 떠나더라”고 말했다.

집 안에 설치된 화재 감지기로 생활 불편 초래…일부 주민 건전지 빼

▲크게보기=이미지클릭 [자료: 서울소방재난본부] [그래픽=배현정] ⓒ스카이데일리

이 동네에는 총 22가구 54세대가 산다. 도봉구 소방서는 지난 8일 이곳을 안전마을로 지정하고 가정마다 100만원 상당 화재감지기를 설치했다. 이와 별도로 소화기 20대도 골목 곳곳에 비치했다. 구입 예산은 한국마사회로부터 지원받았다.

이 마을에서 40년 넘게 산 김태용(42·남)씨는 화재 감지기 건전지를 빼버렸다. 화재 징후가 없는데 시도 때도 없이 울린 탓에 일상생활 지장을 받았다. 김 씨는 “통장이 구청직원들과 찾아와 집에 화재 감지기를 설치했는데 쉴 새 없이 삑삑거리는 탓에 식구가 고통을 겼었다”며 “별도로 화재예방 교육이나 소화기를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 주민 임택근(63·남)씨는 “이 지역은 산 밑이라 건조한 봄이나 가을 등산객 버린 담배꽁초로 불이 날 위험성이 높다”며 “화재감지기나 소화기로는 화재를 진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씨는 “소방차가 진입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소방부스가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 동네는 10년 전 큰 불이 난 적 있다. 당시 소방차가 들어오지 못해 군인들이 급하게 동원돼 불을 껐다. 임 씨는 “도봉구청장이 소방부스를 설치한다고 약속했지만 요즘 아무 말이 없다”고 말했다.

해마다 1곳씩 의무 지정…소방서 관리만으로 한계 있어

▲소방서는 화재 없는 안전마을을 지정하고 건물 벽면에 소화기를 위태롭게 달아놓거나 집 안에 화재경보기를 설치하고 있다. 사진은 벽면에 내걸린 소화기**(사진)**와 집안에 설치된 화재경보기 ⓒ스카이데일리

일선 소방서도 안전마을 사업이 허술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눈치였다. 한형회 동대문소방서 예방팀 예방기획담당관은 “소방서별로 해마다 안전마을 한 곳을 의무 지정해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동대문구에만 안전마을 9곳을 지정했다”며 “내년에 더 지정할 곳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방차 진입로를 넓히려면 구나 시가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화재 없는 안전마을 사업은 소방서의 성과지표에 반영된다”며 “이에 어쩔 수 없이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상전 담당관은 “일부 소방서는 선정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사업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류성호 가천대학교 설비·소방학과 교수는 “화재 등 재난·재해 시설이 부족한 단독주택이나 다가구가 주로 안전마을로 지정된 터라 소방서 인력만으로는 관리하기 어렵다”며 “정부에서 교육 받은 안전협회가 봉사자라도 모집해 주민들에게 화재예방과 단독형 감지기의 관리 요령 등을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지현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bliy2@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