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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이치노카와 야스타카 <사회>

사회 속에서 사회를 넘어서는 사회의 윤리적 가치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11-18 15:35:45

“사무엘 푸펜도르프는 1672년의 저작에서 ‘사회성’(socialitas)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이를 ‘선의, 평화를 향한 사랑, 상호 의무를 토대로 만인이 만인에 대해 맺어진 상태’로 정의하고 여기에 법에 대한 하나의 기원이 있다고 했다”(137쪽)

사회라는 단어는 모호한 의미를 갖는다. 불어에서 ‘사회과학’을 뜻하는 ‘science sociale’는 1795년 처음 영어로 옮겨질 당시 ‘social science’가 아니라 도덕과학을 의미하는 ‘moral science’로 옮겨졌다.

19세기 초 윌리엄 톰슨은 사회과학을 ‘인간 행복을 증진시키는 과학’의 의미로 사용했고, 당대에는 사회과학이 ‘도덕적 사회과학’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사회(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여러 겹의 함축들이 겹쳐지며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 함축들을 총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자연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사회다. 루소적 의미에서 ‘자연상태’에 대립하는 일종의 문명적 질서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개인과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사회다. 사회와 일정한 긴장 관계에 놓인 단어가 바로 공동체다. 개인과는 대립하되, 공동체로 번역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사회다.

셋째, 국가와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사회다. 19세기 지식인들 사이에서 숱하게 회자됐던 것 중 하나가 시민사회와 국가의 대립이라는 것이다. 국가는 권위적이고 부패한 것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강했던 반면 시민사회는 억압받는 대중들의 세계로 이해됐다.

넷째, 시장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사회다. 위에서 윌리엄 톰슨 등이 말한 ‘인간 행복의 증진’과 관련된 것이 바로 이 네 번째 사회의 의미다. 19세기는 산업혁명과 더불어 자본주의 가파른 부흥을 낳았고, 동시에 이는 거대한 빈부격차를 수반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즉 빈곤한 자 혹은 비참한 자들의 존재는 이 자본주의 속에서 ‘사회’가 가져야 할 도덕적 의미를 요구했다.

루소의 ‘연민’과 사회의 발견

18세기 계몽사상가들의 마음을 끌어 모은 개념 중 하나가 연민(compassion)이었다. 루소는 <인간불평등론>에서 “만일 자연이 인간에게 이성의 지주로서 연민의 감정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그 모든 덕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괴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한다.

자연 약육강식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과 인간 간 유대를 존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연민’의 감정이다. 연민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도덕적 연결고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또한 당대 계몽사상가들을 견인했던 또 다른 개념이 바로 ‘소유’였다. 인간은 소유를 추구하고 소유에 기반해 오늘날 자본주의의 시장질서가 성립됐다.

이로 인해 계몽사상가들 사이에서도 소유와 연민의 관계는 대체로 소유가 사회를 구성하는 1차적인 요소로, 연민이 소유의 폐해를 보완하는 것으로 인지되는 경향이 강했다. 연민은 ‘사회’가 아닌 자연 상태에서도 존재할 수 있지만 사회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소유라는 것이다.

연민은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을 통해 일어난다. 따라서 연민의 감정 속에서 종종 나와 타인의 경계는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루소의 탐구는 일정한 혼란을 겪으며 보다 복합적인 차원으로 넘어갔다. 우선 그는 자연 상태에 놓인 연민의 감정을 식별한다. 여기서 인간은 너와 나의 구분을 모르고, 마치 연인이 서로에 대해 갖는 감정처럼 완전한 상호일체의 상태를 꿈꾼다.

한편 ‘소유’를 기반으로 한 문명의 상태가 있다. 이 상태에서는 소유와 이기심으로 상호 갈등하는 존재들이 공존하게 된다. 끝으로 루소가 ‘사회계약’이라고 부른 것, 혹은 이 책의 저자가 새롭게 이름을 부여한 ‘사회적 사회’의 상태가 있다. 연민에 사로잡힌 자연 상태의 인간은 ‘평등’의 가치를 식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불평등을 낳을 문명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사회’는 불평등을 기반으로 건설된 문명의 세계에서 나와 타자의 차이를 새롭게 식별하고 소유가 낳은 모순을 극복하는 상태를 뜻한다. 이 극복을 위해 루소는 인간이 시민으로서 자신들의 사회를 건설하고 그 역할을 공유할 사회적 계약을 요구했다.

전후 서유럽의 복지국가들을 지칭하는 또 다른 언어가 바로 ‘사회적 국민국가’라는 것이다. 다른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민국가’이되, 개인의 소유만이 아니라 그 모순까지 함께 극복하자는 논리가 ‘사회적’이라는 수식어에 담겨 있다. ‘사회’는 자연과는 다른 무엇이되, 동시에 소유로는 환원 불가능한 도덕적 가치를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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