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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시장이 지나친 과열 분위기로 요동치면서 각종 부작용이 잇따르고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여전히 뒷짐을 진 자세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스탠스가 맞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에 왔다. 정부는 가상화폐에 대해 경계감을 갖고 지켜보고 있기는 하지만 제도권 차원의 접근 방식은 여전히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중이다. 가상화폐는 화폐가 갖고 있어야 할 고유 지급·결제 기능보다 일종의 ‘투기자산’ 성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섣부른 판단일 수 있음을 열어 놔야 한다.
국내 가상화폐 열풍은 금융시장의 꽃이라고 하는 주식거래량을 웃도는 수준까지 왔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의 경우 1일 거래량이 한때 하루 6조원을 넘기까지 하면서 5조원대의 주식거래 규모를 추월해 놀라움을 넘어 충격을 주었다. 물론 주식거래에 비해 일시적 급등이었지만 현재 국내 3대 가상화폐 거래소의 1일 평균 거래가 2조원대인 것은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기에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 코스닥·코스피 1일 거래량이 평균 8조원임을 감안할 경우 25%에 달하는 가상화폐 시장은 이미 제도권 밖에서 제도권을 위협할 정도로 위협적이다.
가상화폐는 앞으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거래량이 지속적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른바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이 가상화폐 시장에 대거 합류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미 거래자만 작년 말에 비해 두 배 가량 치솟아 100만명을 넘어섰다. 실제로 주식 리딩방처럼 가상화폐 유료 리딩방이 100여개 넘게 개설돼 그 인기가 뜨겁다. 리디방 입장비용이 최고 100만원을 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개미 투자자들의 급증은 거래금액이 치솟은 지금 투자해도 얼마든지 큰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경우 지난 2015년 말 40만원이었지만 2년여 만인 최근에는 20배에 달하는 800만원을 넘어섰다. 개미들 참여가 늘어나면서 가상화폐 시장에는 집단적으로 거래하는 펌핑세력과 작전세력들까지 가세해 확산세가 빠르다. 가격 급등락이 반복하면서 상승곡선을 타고 있기에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날로 높아가고 있다.
작금의 가상화폐는 재화와 노동의 가치를 교환하는 화폐 고유 기능보다 투기적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 맞다. 화폐라기보다 자산의 성격이어서 제도권 금융시장으로 끌어안기에는 문제가 있는 점도 옳다. 문제는 가상화폐가 갖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고, 지금은 그 초기시장이라는데 있다. 상당한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지만 초기 부작용을 거쳐 진화를 해 간다면 미래 금융시장에서 화려한 날갯짓을 할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배제하지 못한다.
가상화폐의 탄생 자체가 기존의 화폐제도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금융당국은 곱씹어야 한다. 글로벌 화폐인 달러와 전 세계 모든 국가의 화폐들 또한 가상화폐처럼 ‘가공자산’에 불과한 것으로 추락한 것이 틀리지 않는다. 미국 달러화의 금본위제가 사라지면서 화폐는 전통적인 가치를 표현하는 돈이 아니라 단순히 교환의 수단(통화)으로 전락한지 오래됐다.
기존 화폐들은 본원통화 외에 수없는 신용통화를 만들어내면서 마치 유령 같은 자산을 거품처럼 증식시켰다. 미 달러화는 전 세계 국가는 물론이고 그에 속한 전 세계 사람들의 부(富)를 원격으로 미세조절하고 통제할 가공할 능력을 가졌다. 화폐를 찍어내는 본원통화 조차 가치와 연동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통화량의 글로벌 공개시장조작은 말 그대로 부의 합법적 조작이다. 미 달러화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의 중앙은행들 역시 각종 유무형의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화폐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조작한다.
그 결과는 제도권의 강도짓에 다름 아닌 것으로 인식되면서 화폐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반면 가상화폐는 발권국가도, 발권중앙은행도 없다. 당연히 공개시장조작이 불가능하다. 장기간 유통될 통화량이 엄격히 정해져 있다. 특정인이 갖고 있는 가상화폐를 국가나 중앙은행들이 공공성을 무기로 가치를 임의 조절할 수 없다는 뜻이다. 블록체인이라는 다중간 공유방식으로 해킹의 염려 또한 제거됐다. 이용자 간 P2P 거래라는 점에서 익명성을 보장받기도 하고 국제거래에 편리하며 소액결제에 유용하다.
이처럼 가상화폐가 투기적 수단으로 변질된 것은 맞지만 거꾸로 희소성과 가치성의 표현이라는 측면을 본다면 화폐가 아닌 돈의 가치를 구현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돈은 금·은과 같은 가치의 교환수단인 반면 오늘날 화폐는 엄정히 가치를 마구 부풀리는 통화량이다. 가상화폐가 외견상 가치는 없지만 돈의 가치를 기존 화폐보다 더 부여했다. 일단 채굴에만 4년이 걸려 희소가치가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는 향후 100년간 2100만개로 제한되고 4년마다 공급량을 줄여 2140년이면 통화량 증가가 멈추도록 돼 있다.
만약 가상화폐가 지급·결제수단으로 확산된다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가 발권 화폐는 이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제도권 밖의 통화량이 증가되면 국가경제 운용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진다. 금융당국이 가상화폐를 제도권 내로 흡수해 관리할 방안을 선제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배경이다. 이는 작금의 가상화폐 부작용도 줄이고 피해자를 구제하면서 혹시 모를 미래에 대비하는 길이다.
일과 노동을 통해 표현되는 진짜 돈은 가공자산 화폐로 인해 가치가 줄어들면서 영구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표현되고 있다. 전 세계 화폐들의 가공자산은 무한히 커져가지만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전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툭하면 행해지는 이른바 양적완화는 그 상징적 사건이다. 전 세계 모든 국가와 개인은 매우 위험한 화폐구조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가상화폐가 그 위험을 대체해 줄 대안으로 단언하기 힘들다. 다만 작금의 화폐가 ‘가치 제로’로 무한히 다가가고 있다는 위험한 사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만 해도 가상화폐를 법적인 결제수단으로 인정하고 나섰다. 중앙은행 발권화폐와 같은 지위를 줬다는 점이 놀랍다. 미국은 강력한 규제를 조건으로 가상화폐를 일부 제도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캐나다, 호주, 영국, 이스라엘 등에서도 부분적으로 제도권 도입을 허용하거나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행 화폐제도가 언젠가 붕괴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일부 선진국들이 가상화폐 주도권을 잡기위한 시장을 조성하고 있다는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우리 정부는 현재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선을 분명히 그은 채 담장 밖에서 바라보는 식의 태도다. 관련법령의 근거가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시장과 관련된 법은 늘 마지막 방점에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법 타령을 하면서 방관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마치 도박장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금융당국이 개입할 분명한 명분이다.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고, 그것은 기존의 제도권 금융에도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 역시 향후 수많은 거래 분야에서 응용될 가치가 충분하다. 이미 이 기술을 상용화 하는 분야가 확산되고 있다. 가상화폐는 극단의 핀테크로 진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같은 상황을 현재의 눈으로만 보면서 방치하다가 금융시장을 미지의 위험에 빠뜨리거나 화폐시장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 사람의 일과 공장의 기계는 노동을 통해 원천가치를 만든다. 미래 화폐는 원천가치를 죽이지 않는 시장으로 갈 가능성이 높고, 그 대안은 가상화폐같은 발권력의 대중화에 있다. 무국적·초국적 화폐 시대는 그야말로 국가의 생사를 결정하는 또 다른 화폐전쟁이다. 우리가 가상화폐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무형의 부가가치를 넋놓고 빼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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