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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풀려서 말하는 것 즉 과장법을 영어로 하이퍼볼리라 한다. 그냥 생소한 영어단어라 여겨도 되겠지만 사실 이 단어의 뒤에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북풍이나 북풍의 신을 보레아스라 했다. '하이퍼'는 저 너머란 뜻이니 하이퍼보레아는 북쪽 바람 저 너머에 사는 사람, 즉 북극 지방의 사람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주장 또는 설에 의하면 먼 북녘에 가면 일 년에 해가 딱 한 번 뜨고 지는 탓에 그곳 사람들은 한 해가 하루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수명은 무진장 길다는 것이었다. 1년이 하루인 까닭에 남쪽의 그리스 사람들보다 무려 360배나 더 산다는 것이었다.
식량도 풍부해서 먹을 것 걱정이 없고 그 바람에 사람들은 폭력이나 갈등이 전혀 없다는 말도 전해졌다. 한마디로 먼 북쪽 사람들은 낙원에 산다는 생각을 했던 그리스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아마도 뻥일 거야’ 했던 것이다. 자 그럼 이 대목에서 한 번 따져보자, 그 말이 뻥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북극에 가면 일 년에 해가 한 번 뜨고 한 번 진다. 그러니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북반구에서 위도가 48.5° 이상인 지역에선 여름 내내 밝은 밤이 이어지는데 이를 흔히 백야라고 한다. 핀란드에선 이를 한밤의 태양이라 해서 Midnight Sun 이라 부른다.
물론 그와 반대로 한 해의 절반은 해가 뜨려다가 다시 지는 현상, 아침이 되어도 빛이 옅은 박명 정도에 그치고 다시 저녁이 되면 그냥 캄캄한 밤이 이어진다.
그러니 북극에 가면 일 년에 해가 한 번 뜨고 한 번 지는 것이 맞다. 고대 그리스 시절에도 남쪽의 그리스와 북쪽 지방간에 모피와 같은 물품의 교류가 있었을 것이니 그런 중계상인들을 통해 말이 전해졌을 것이다.
여기에 다시 사람들의 상상이 가미되어 북쪽 사람들, 즉 북풍 저 너머에 사는 사람들은 1년을 하루로 보낼 것이라 여겨졌고 이에 수명이 무진장 길 것으로 추측할 법도 한 것이다.
북풍 저 너머의 사람 즉 '하이퍼보레아'들은 수명이 엄청 길다는 말이 나온 유래이다. 하지만 믿기 어려웠던 까닭에 과장법에 해당되는 영어의 하이퍼볼리란 단어가 생겨났다.
지난 11월 15일 해는 아침 7시 18분에 떴고 저녁 5시 17분에 진다. 해 시간이 10 시간에서 1분이 모자란다. 해가 떴어도 하늘 높이 오르지 못하고 남쪽 하늘에서 비실대다가 금방 진다. 그러니 어둠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위도가 38도 아래에 있어 그나마 해가 뜬다는 사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추운 마당에 해까지 없으면 그야말로 우울해질 것이니 노르웨이 사람들이 태양을 연상케 하는 노란 색 가구를 좋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고위도 사람들 중엔 우울증이 많은 까닭도 결국은 일조량 부족 탓이다.
여름 생인 나 호호당의 경우 젊은 날엔 특히나 밝은 빛을 싫어했다. 오히려 어둡고 차가운 색인 블루를 선호했고 또 추운 겨울을 좋아했다. 그런데 약간 변화가 생겼다. 나이가 들어 양기가 떨어지다 보니 이젠 겨울이 싫다. 게다가 내 작업실은 동북향이라 겨울에 점심을 먹고 나오면 햇빛 보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살짝살짝 우울증을 느끼곤 한다.
이 시간 오후 4시 11분, 하늘은 흐렸고 조금 있으면 해가 질 것이다. 창밖 하늘을 보다가 하이퍼볼리란 단어가 떠올랐고 그래서 글을 쓴다.
북극 지방엔 극광, 오로라가 아름답다고 한다. 겨울 밤하늘 높이 연신 춤을 추어대는 빛의 춤이다. 그래서 나는 오로라에 대해 무광, 즉 춤추는 빛이란 이름도 한 때 지은 적이 있다.
중국의 고대 지리서이자 상상의 모음집인 산해경엔 촉룡이라고 하는 북녘의 신비한 용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바로 오로라이다. 촉룡이란 촛불의 용, 즉 빛을 발하는 용이란 뜻이니 오로라인 것이다. 또 촉룡이 한 번 입을 열어 숨을 크게 내쉬면 차가운 기운이 온 세상을 덮어 겨울이 온다고 적혀있다.
오로라를 촉룡이라 했던 옛 사람들의 표현이 정말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이 또한 북녘 사람들과 교역하는 과정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말도 마, 거짓말이 절대 아니라니까, 안 봐서 그렇지 진짜 보면 죽여줘, 밤하늘에 온통 신비한 빛이 널뛰고 춤을 추는데 용이 순간순간 몸을 바꾸면서 움직인다니까!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산해경에 실린 촉룡의 이야기 또한 근본적으론 정확했던 셈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말인 '켄타우로스' 역시 옳은 말이다. 초원 지대의 말을 타고 다니는 사납고 용맹한 기마전사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그리스 동쪽의 흑해 지역과 교역하는 과정에서 전해진 말이다.
흑해 북쪽의 광활한 스텝 지역에서 활동하던 기마전사들, 늘 말을 타고 다니면서 말과 함께 생활하던 유목민족들이야말로 켄타우로스였다. 우리 민족의 조상에 속하는 고구려의 기마전사 역시 그렇고 말이다.
기마전사의 먼 후예인 조선의 이성계는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 멀리서 화살을 날려 온 몸을 갑옷으로 둘러싼 상대 장수의 투구 끈을 끊어 얼굴을 노출시킨 뒤 다시 쏴서 죽였다 하지 않는가.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지금 올림픽 양궁전사들보다 한 단계 위가 아니겠는가.
겨울이 되니 공상이 많아지고 환상을 쫓게 된다. 시선이 바깥이 아니라 내부로 들어온다. 사념이 늘어난다. 바깥은 이제 별로 볼 것도 없고 해도 짧기에 시선이 속으로 향한다.
앞서 ‘하이퍼볼리’에 대해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아주 좋은 책이 있기 때문이다. 대단히 아끼는 책이다. ‘The Dictionary of Classical Mythology, Religion, Literature, And Art’ 란 제목의 책이다. 1995년에 나온 미국 책인데 나는 이 좋은 책을 이태원 외곽의 미국 헌 책방에서 오래 전에 샀다. 용산 기지의 어느 미군 병사가 내다팔았을 것인데, 지금은 내 서가에 소중히 모셔져 있다.
이처럼 내 작업실 서가엔 구하기 어려운 책들로 가득하다. 교보문고에서 주로 책을 사지만 대부분 학술서적이라서 한 번 찍고 나면 다시 인쇄되지 않는 바람에 2년만 지나도 헌 책방이나 국립도서관에서나 찾을 수 있는 책들이다.
이제 4시 55분이다, 아까 전에는 4시 11분이었는데 그 사이에 44분이 흘렀다. 차라리 시계란 것이 없었더라면 시간에 얽매이지 않을 것을,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냥 아침, 한낮, 늦은 오후, 황혼녘, 저녁, 그리고 밤 정도로 시간을 쓸 수 있으면 더욱 편할 터인데 왜 시계가 정확해졌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중국을 다닐 때의 일이 생각난다.
옆으로 길게 늘어진 중국 대륙이건만 사용하는 시각은 하나밖에 없다. 그 바람에 신강지역의 우르무치에 갔을 때 한창 해가 중천에 떠있어도 시계는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현지 출퇴근하는 사람의 말이 더 웃겼다. 아침 9시까지 출근하지만 사실 그건 태양시로 따지면 아침 7시에 출근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중국은 공산당 독재의 나라였다. 반면에 워싱턴의 백악관에 사는 미국 대통령이 아침에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통화하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여전히 침대에서 자고 있을 것이니 그렇다. 동서로 몇 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허리가 모두 긴 나라이지만 문화와 체제가 다른 것이다.
지구는 둥글다. 그 바람에 극지방은 우리가 사는 중위도 지역과 많이 다른 환경일 수밖에 없다. 둥근 지구인 탓에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이제 뉴질랜드는 여름을 맞을 것이고 해가 길어지고 기온이 한창 오르고 있을 것이다.
동지가 크리스마스의 원뜻일진대 뉴질랜드의 크리스마스는 사실 6월 22일 경의 하지가 되어야 맞겠건만 그냥 12월에 크리스마스를 지내는 인간이다. 인간은 역시 불합리한 동물이다. 이제 글을 마쳤으니 다시 홀로만의 환상 세계로 떠나볼 참이다.
김태규의 희희락락호호당
http://www.hohod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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