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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일요일 아침이었다. 어머니가 누님 댁에 가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역정을 냈다. “오늘만큼은 절대 안 된다니까, 아예 거동도 하지 않는 게 좋다니까!” 하고 목청을 높였다.
나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오늘은 내 이론대로라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는 날인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신해라는 코드가 운세 상 입춘 바닥이다. 연세가 아흔이시고 이미 2년 전부터 저승길에 나서고 계신 마당에 특히 이 달이 신해월 이고 또 며칠 전 20일이 또 신해일이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특히 26일은 정사일이라 운기 상으로 가장 좋지 않은 날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평소대로 다리를 잘 쓰지 못할 뿐 이상한 기색은 커녕 더욱 생생한 표정이셨다. 나는 속으로 ‘오늘이야말로 세상 떠나는 날이건만 저처럼 멀쩡하시니 어쩐다?’ 하며 한참 생각해보다가 별 일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누님 댁에 보내드리기로 결정했다.
오후 3시 반 경에 늘 하던 대로 집사람이 운전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나는 도중에 작업실 앞길에서 내리면서 “엄마, 오늘은 진짜 안 좋으니까 절대 조심해, 누나 집에 가서 꼼짝도 하지 말고 있어, 알았지, 엄마!” 하고 강하게 당부했다. 어머니는 “응 알았어, 내 조심할게” 하셨다.
오후 5시 30분경 작업실로 전화가 왔다. 아들이었다. “아빠, 할머니가 돌아가셨대” 하는 것이었다. 아들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어느 할머니가?” 하고 반문했다. 그저 ‘친하게 지내는 누군가의 할머니가 세상을 뜨셨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아들이 재차 “할머니,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창밖 하늘이 캄캄해졌다. ‘아니,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엄마가 죽었다고? 아니 이게 무슨 말이지?’ 싶었다.
아마도 10분 정도 걸렸을 것 같다. 분명 눈앞의 현실일 터인데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속이 뒤틀리고 찢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비통하게 탄식하기도 하고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이 현실이 어떤 현실인가 되묻기도 하고 얼굴을 쓸어보기도 하면서 넋을 놓고 있었다.
받아 들여야 하는 현실임이 분명했다. 약간 정신을 되찾은 나는 일단 일처리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영안실부터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를 악물고 나를 채근했다.
다행히도 영안실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현대 아산병원 영안실에 빈 방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돌연히 장례절차가 시작되었고 그 순간부터 나는 장례가 끝날 때까지 내 속의 모든 감성은 단단하게 빗장을 걸어 놓고 오로지 이성만 작동시키기로 굳게 다짐했다.
삼일장 기간 동안 참으로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찾아 오셔서 위로해주었고 또 부조금을 놓고 가셨다. 아들이 하나뿐이라서 단독 상주 노릇이 엄청 힘들었다. 절을 엄청나게 많이 했고 그럴 때마다 몇 달 전 다친 허리가 뻐근하게 쑤셔왔다. 엎드려 절하지 않는 개신교나 가톨릭 신자분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머니는 그냥 아흔의 고령으로 자연사하셨다. 어머니는 누님 댁에 가셔서 쓰시던 방의 침대에 걸터앉으셔서 옷을 갈아입으시던 도중에 갑자기 혼절하셨다고 한다. 침대 아래 방바닥으로 쓰려지셨다는 것이다. 누님과 매형이 달려가서 나름 어설프게 응급조치를 취했으나 2~3분간의 거친 숨결 이후에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10여 분 뒤에 119 대원들이 왔지만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
어머니는 평소 “걱정마라, 내 죽을 땐 그냥 푹-하고 갈 거야” 하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면서도 한편으론 몸 고생 하실까, 또 돈이 많이 나오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많으신 눈치였는데 정말 말씀처럼 소망대로 가셨다.
2년 전에 이 블로그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찾아보니 재작년 10월 12일자로 ‘고갯길을 넘기란 참으로 어려워라’ 라는 제목의 글이 그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어머님의 손을 꼭 잡고 저승 고갯길을 넘을 때까지 행여 외롭거나 두려운 생각 들지 않도록 잘 모시면서 함께 걸어가야지 하는 마음을 다졌다. 2년 조금 지나면 어머니가 가실 것이란 추산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그렇게 된 셈이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새벽 다섯 시 이전에 사실상 잠에 들지 못했다. 불편하실 것 같아 좌변기도 마련했지만 어머니가 대단히 싫어하셨고 굳이 보행기를 끌고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두어 번 화장실을 가시는 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가 잠자지 못하는 것을 알면 어머니가 부담스러워 하실 것 같아 새벽 5시 경 화장실에 다녀가실 때까지 짐짓 잠자는 척 하면서 그냥 누워있었다. 정 힘들 땐 아들과 교대하기도 했다. 크게 아프지 않으시고 지내시는 것만 해도 큰 다행이란 생각이었다.
간밤 새벽 1시 경에 자리에 누었으나 3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잠들 수 있었다. 그간에 다행히도 큰 탈 없이 어머니 손을 잡고 저승 문턱까지 배웅해 드렸으니 이젠 정상 생활로 돌아와야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비록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어머니와 헤어지긴 했으나 저승 저 멀리 아득한 곳까지 멀어져가서 마침내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는 멀리서라도 지켜봐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새롭게 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별이 한 순간에 칼로 무 베듯 될 수 있겠는가. 지난 2년 동안은 작별의 장소까지 함께 걸어왔고 이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손을 놓고 이별했다. 하지만 또 다시 저 멀리 어떤 고갯길을 넘어 자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먼발치에서 뒤를 지켜보고 또 잘 가시라 손을 흔들어주면서 머무는 것 또한 이별의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어머니는 이번에 숨을 거두고 돌아가셨지만 어머니와의 작별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단지 가장 큰 경계를 넘어섰을 뿐 계속해서 멀어져가고 있을 뿐이라 여긴다.
어머니가 머무시던 방을 아내와 누님 그리고 여동생이 와서 싹 비웠다. 나도 그게 나을 것 같아서 동의했는데 비우고 나니 영 허전하기만 했다. 먼저 가신 아버지의 영정과 함께 어머니가 빈 방 벽에 덩그렇게 벽에 걸려 있다.
그래서 일단 우선 49일 동안이라도 조석으로 향을 올리고 식사를 올리기로 했다. 아내는 천도제를 지낼 생각이지만 그거야 그런 것이고 아들이 올리는 향과 식사를 더 좋아하실 것이 틀림없다. 간밤에도 몇 번이나 들락거리면서 아버지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을 했고 남은 분골은 나무상자에 담아 집으로 왔다. 늦은 밤 시간 집 뒷산 완만하게 경사지고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언덕으로 올라가 아버지의 분골을 뿌린 장소에 살짝 땅을 파서 뿌려드렸다. 수년 전부터 누차 확인해 본 어머니의 뜻이었다. 때마침 겨울비가 조금 내리고 있어서 아주 좋았다.
매일 밤 아들과 함께 강아지들 산책 겸 해서 올라가는 낮은 뒷산 언덕이다. 올라가면 “아버지 저 왔어요” 했는데 이젠 “아버지 어머니 저 왔어요” 로 바뀌게 되었다. 그 장소 아래에는 먼저 간 강아지들, 가을이와 또복이가 묻혀있고 또 귀엽던 토끼 초롱이가 묻혀 있다.
죽는 것을 일러 우리는 ‘돌아간다’고 한다. 더 없이 정확한 말임을 이번에 새삼 확인한다. 없던 곳에서 있는 곳, 삶이란 곳으로 왔다가 다시 원래의 없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또 사람들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하지만 그게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들이 세상에 와서 연을 맺고 그 결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호호당이란 존재를 만들어 놓고 갔으니 그걸 어찌 빈손으로 돌아갔다고 하겠는가. 그건 계산이 틀렸다.
크게 저쪽으로 한 걸음 내딛은 어머니가 이제 조금씩 혼자서 걸음을 옮기시고 있다. 높고 험한 경계를 성큼 넘어서긴 하셨으나 아직도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져가고 계시다. 어머니의 손을 이제 더 이상 따뜻하게 잡아주지 못해서 아쉽고 서운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내 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다. 어머니 또한 가시면서도 여전히 뒤를 돌아보고 계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문득 문득 멀어져가는 어머니의 눈길을 느낄 때마다 그리고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묵은 정이 떠올려질 때마다 나 호호당 역시 많이 울고 또 웃고 할 것이다.
김태규의 희희락락호호당
http://www.hohod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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