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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은 대설, 큰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때이고 이로서 겨울의 두 번째 달로 접어든다. 어젯밤 서울과 중부 지방에 진눈깨비가 얼마간 내렸다.
이제 ‘죽은 해’를 실은 상여가 곧 장지를 향해 발인하고 있다. 상여를 전송하는 이는 다름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다.
이제 한해살이 벌레들은 모두 사라졌고 한해살이 풀들도 모두 시들었다. 그런데 큰 나무들도 실은 한해살이를 한다는 사실이다. 올 한 해를 살아온 나무는 죽어서 또 한 겹의 나이테로 남을 뿐이다.
나무는 죽기 전에 껍질과 조상들의 시체인 내부의 목질 사이에 새롭고 여린 후손을 남기게 되니 내년 봄이 되면 다시 깨어나서 힘차게 자랄 것이다. 그렇기에 나무는 천년을 산다고 하는 우리들의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모든 생명이 사실은 한해살이라고 한다면 우리들 또한 그럴 것이다. 우리 스스로 수십 년을 살아간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 뇌에서 만들어진 일체성의 작용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작년을 살았던 나와 올 해를 살아온 내가 동일하고 통일된 일체 또는 하나로 여기게 만드는 뇌의 작용일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뇌가 우리로 하여금 일체성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작동하는 핵심은 사실 우리 머릿속의 ‘기억’이다.
우리의 뇌는 기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을 지워버리는 기능 즉 망각 기능도 가지고 있다. 아울러 기억을 불러내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기억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지워지거나 또는 어딘가 뇌 깊은 곳에 저장된 후 거의 재생되지 않는다.
하지만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가 내 스스로를 통일된 존재인 것으로 인식케 하려면 장기에 걸쳐 기억을 저장하고 또 수시로 불러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일을 떠올리거나 또 과거의 일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면 그런 기능이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여전히 나일 수 있는 것은 뇌의 기억 기능에서 오는 것에 불과하고 우리 몸의 모든 세포와 조직들은 빠른 시간 안에 죽어서 사라지고 또 재생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를 자기 자신으로 믿게 해주는 뇌기능을 떠나 달리 나 자신이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세상 모든 것은 그 바닥까지 탐색해서 내려가 볼 것 같으면 그 무엇을 구분 짓는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 같다. 하이젠베르크가 남긴 “불확정성의 원리” 즉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러하다. 이에 우리가 흔히 개념이라 부르는 것은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이에 나 호호당의 경우 언제부터인가 출생 이후 지금까지의 나를 하나의 나로서 인식하지 않고 있다. 달리 말해서 구분하고 나눈다. 가령 “호호당 2017”이 있고 “호호당 2018”이 있다는 식으로 나누어서 생각하고 있다. 다만 현실에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法(법)이란 것이 있으니 “호호당 2018”은 “호호당 2017”까지의 모든 권리와 부채를 승계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법적인 것을 떠나서 얘기한다면 사실 승계할 내용의 경계가 사실 애매해진다. 경우에 따라 승계해도 되고 그걸 거부해도 사실 큰 상관이 없으니 그걸 나는 자유라고 부른다.
이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해마다 한해살이를 하는 존재로서의 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에 연도별로 나를 구분한다. 그렇기에 해마다 나 호호당은 죽고 또 새롭게 태어난다.
이제 보름 여 지나면 크리스마스이다. 크리스마스는 원래 동지 축제에서 유래되었다. 해가 동지로서 가장 짧아지고 그로부터 다시 길어지니 이를 해의 죽음과 재탄생으로 여기고 그를 반기는 축제였다. 죽고 태어나는 날의 경계를 정하기에 동지는 참으로 적당하고 적절하다. 2017년의 해만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부터 그러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죽고 바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도중의 기간이 있다는 생각을 했던 문화도 있으니 바로 티벳 불교이다. 죽어서 환생하거나 다시 태어날 때까지 일정한 기간이 있으니 이를 중유라고 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는 것도 아닌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존재와 무의 중간 단계인 셈이다.
이는 나름 대단히 예리한 통찰이기도 하다. 가령 한 해의 해는 11월 초 입동으로서 죽고 다음 해 2월 초의 입춘으로서 다시 태어난다고 보면 된다. 그 사이에 죽은 해를 장례 지내고 애도하고 그러다가 다시 어딘가에서 생겨난 다음 어느 때 동쪽 바다 위로 힘차게 떠올라 재탄생한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면 겨울의 한 가운데에 있는 동지는 앞서 말한 중유의 과정에서 소멸과 생성의 결정적인 변환점이 되는 셈이다.
이런 생각의 결과 나는 내 운명의 입춘점인 1997년부터 해마다 동지가 되면 홀로 동지여행을 다녀오기 시작했었다. 가는 곳은 동해 낙산사 홍련암이었다. 그곳으로 정한 이유는 순순한 내 욕심에서였다. 동짓날 밤에 죽고 다시 생성되는 베이비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할 수 있는 장소란 생각 때문이었고 그로서 새해의 빛을 누구보다도 내 이마에 받을 수 있다는 사심 때문이었다.
이에 동지 전날 저녁에 고속버스를 타고 홍련암을 찾아갔고 그곳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 해의 삶을 내려놓았다. 그 다음 날 새 빛을 받아 또 다시 탄생하는 의식을 나 혼자 지냈다. 자연순환운명학 강좌를 하게 되면서부터 해마다 수강생들과 함께 동지 여행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 이젠 대략 2년 전부터 더 이상 동지 여행을 가지 않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예전엔 동지 무렵 홍련암을 찾는 불교 신도가 거의 없어서 혼자 호젓하게 의식을 치를 수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불교 신자들이 몰려들었고 게다가 낙산사 화재 이후 야간시간에는 사찰 경내가 입장금지가 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나는 사후의 환생을 믿지 않는다, 죽은 다음에 영혼이 있다는 것, 죽어서 하늘나라에 간다는 얘기 등을 믿지 않는다. 부모님 제사를 지내는 것은 부모님들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때문이지 혼령이 찾아온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죽은 다음에는 나를 이루고 있던 거대한 체세포의 제국이 해체되고 흩어져서 무한한 자연의 순환 속으로 들어가야만 더 자연스럽고 깔끔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제 동지제를 위해 홍련암을 찾지는 않지만 그래도 올해 역시 나만의 동지제를 올릴 것이다.
그거야말로 해마다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나름 엄숙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호호당 2017”을 보내고 “호호당 2018”을 맞이하는 생명의 축제인 것이다.
내년이면 예순하고도 넷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예순하고도 세 번의 생을 살아왔다고 여긴다. 예순 세 번의 생이었던 것이고 이제 예순 네 번째 삶을 맞이할 참이다.
내게 있어 작년은 전생이었던 것이고 지금은 금생, 내년은 후생이다. 나는 이미 많은 생 수십 생을 살아왔기에 언젠가 내 몸의 세포들이 해체되는 날이 와도 그리 억울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실은 독자님들도 그렇다.
김태규의 희희락락호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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