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탐색해야 할 탈가부장적 감수성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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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이종영 <성적 지배와 그 양식들>

남성의 정체성은 어떻게 여성을 대상화하는가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12-16 17:29:59

최근 정부에서 블라인드 면접으로 공무직 6명을 뽑은 것이 화제가 됐다. 블라인드 채용은 놀랍게도 합격자 전원 여성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만약 지원자의 신원이 블라인드 처리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신원을 블라인드 처리했을 때 비로소 성별화된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함의하는 바는 상당한 듯하다.

남성은 역사적으로 여성을 자기 지배 안에 가두고자 했다. 우리는 그 지배의 체제를 ‘가부장제’라고 명명한다. 가부장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위계적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가족 외의 공간 역시 성별화된 위계구도가 작동하는 현실이다.

여성이 남성을 지배한다는 말은 논리적 모순 같지만,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은 일정한 역사적 현실임에 분명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그 하나의 현실이며 가족 외의 공적 세계망 전체를 통해 그 지배는 확고한 틀을 갖추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의 첫 물음은 다음과 같다. “왜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는가?”

가부장제에서 남성의 ‘보호’

현대의 가족구조 속에서 남성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자’로 인식한다. ‘스위트홈’은 생계부양자인 남성이 일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친밀함의 공간이며 그의 노동을 통해 존속될 유약한 존재(아내와 아이)들이 거처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듯, 남성들에게 있어 “가족은 세계로부터의 피난처”(30쪽)의 역할을 한다. 경쟁과 각자생존의 파괴적인 공간을 전전하던 남성들은 가족 속에서 부서져서는 안 될 내밀함의 인신처를 발견한다. 문제는 이때 이 ‘인신처’에 대한 ‘보호’가 여성과 남성에게 각각 다른 의미를 갖고 다가온다는 점이다.

일단 잠시 우회를 해 보자. 남성이 아내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그 사랑에는 상대에 대한 얼마나 많은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는 것일까? 예컨대 아내가 남편의 보호를 원하지 않는 관계를 원한다면 어떨까? 혹은 그 ‘사랑’이 남성의 ‘보호’를 전제로 해서만 성립한다면 둘 사이의 온전한 소통은 가능할까?

남성의 이 보호자 기능에 있어서 그 보호가 방어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잘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 경제적 생계의 보호일 것이다. 서구에서 확립된 남성생계보호자 모델은 임금을 받는 남성노동자가 가족 전체를 부양한다는 의미의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일반화했다.

다른 하나는 일종의 바깥 세계로부터의 보호다. 그런데 이때 그 바깥 세계가 이웃 여성들이 아님도 명확하다. 바깥 세계로부터의 보호란 곧 바깥 세계 남성들로부터 보호라는 특성을 지닌다. 실제로 가부장제는 남성들 간의 공동체적 동맹관계로부터 파생돼 각각의 남성들이 자기 여성에 대한 보호와 지배를 공고히 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가부장제의 역사와 탈가부장적 감수성

저자는 가부장제가 가족 단위로부터 사회로 파생된 것인지, 아니면 사회 전반의 남성동맹적 질서로부터 가족의 세부적 단위로 유입된 것인지를 묻는다. 이 물음의 답은 단연코 후자다. 예컨대, 저자는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결혼을 통해 정립되는 호혜성의 유대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매개로 하여 남자들 사이에 성립된다.”

역사적으로 혼인제도는 각 부족 간 거래의 형태를 취했고, 현대사회에서도 아버지가 다른 남성(남편)에게 딸을 인도하는 형태를 취하며 나타난다. 저자는 이러한 관계의 형태에 가부장적 ‘사랑’의 본질이 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여성의 독립적인 삶을 존중하는 가부장적 사랑이란 논리적 모순이다. 인류학적으로 봤을 때, 혼인제도 자체가 여성을 매개로 한 남성 간 거래에서 파생된 것이다. 여성은 마치 상품이나 재화의 모습을 취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남성 간 동맹과 거래의 질서를 남성지배 혹은 가부장적 지배라고 부른다. 이러한 성적 지배의 양식들은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주조하며 지탱되었다. 예컨대,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되는 존재, 여성을 보호하고 생계부양해야 할 존재로서 남성은 자기 자신의 환상을 세상에 투영하며 살아간다. 이 때문에 가족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내에서도 여성이 살아가는 현실과 남성이 직면하는 현실은 철저히 괴리되게 마련이다.

저자는 이 정체성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종의 탈정체화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체성이라는 정해진 틀이 아니라 타인의 자유에 직면해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감수성의 지평이 필요하다. 이것이 지배자로서 남성이 타자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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