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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일본이라는 나라를 주식회사라고 칭하기도 한다. 주식회사는 투자자가 출자한 금액으로 자기자본을 구성하며 출자자는 주주가 된다. 주주는 회사의 주인으로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를 임명하고 대표이사를 선출한다.
‘주식회사 일본’의 주주는 당연히 국민·기업·정부 등의 3대 주주로 구성된다. 국가는 이사회고 대표이사가 바로 총리다. 회사는 주주들이 불협화음을 내기보다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회사가 최대의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지난 시절 일본이 미국에 이은 G2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주식회사 개념의 국가 운영이 잘 먹혀 들어간 결과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잃어버린 20년의 세월동안 이 주식회사는 호경기 때의 유산인 버블과 신흥국의 추격으로 휘청했지만 최근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식회사 일본’이 확실히 다시 가동되고 있으며 G3라는 국가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본적으로 주식회사는 사단법인으로 영리 추구가 최대의 목적이다. 이익은 고스란히 주주의 몫으로 돌아가지만 주주는 회사의 채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이라는 국가를 좀 더 냉정하게 훑어보면 주식회사와 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많다. 특히 주주들이 때때로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회사의 회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이 주식회사의 재건 소방수로 등장한 대표이사, 즉 아베 총리는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재건 프로그램으로 그가 제시한 아베노믹스는 철저하게 ‘친(親)기업’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업이 살아나야 국민의 지갑도 두툼해질 것이라는 논리에 수미일관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가가 마치 기업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지난 시절 일본의 고도경제성장 시기를 이끌었던 주역이 기업이고, 기업이 잘돼야 국민의 삶이 윤택해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기업의 매출이 늘어날 수 있도록 수출을 독려한다. 엔저(低)가 유지되도록 연간 80조원 규모의 양적 완화를 지속적으로 시행한다. 37%에 달했던 법인세가 아베 취임 이후 계속 인하돼 내년에는 29.74%로 낮아진다. 투자를 확대하거나 임금을 인상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20%까지 낮출 예정이다.
기업의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지 규제를 철폐하거나 정지하는 ‘규제 샌드박스’도 도입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적극적인 통상 정책을 통해 일본 기업의 수출 혹은 해외 진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요즘 일본에서 특히 눈에 많이 띄는 것은 정부와 기업 인사들 간의 잦은 회합이다.
기능이 대폭 위축되고 있는 우리 전경련(全經聯)과는 대조적으로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의 움직임은 여전히 매우 활발하다. ‘찰떡궁합’이라고 할 정도로 국정의 동반자가 되고 있다. 이들은 중국과의 껄끄러운 정부 간의 관계까지 깊숙이 개입해 양국의 화해 무드를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자국 기업과 국민의 이익을 외면하는 국가가 과연 제대로 된 국가인가
이런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와는 매우 대조적이라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로 롯데라는 회사의 피해 규모가 2조에 달한다고 한다. 사드 보복이 풀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롯데라는 특정 기업에 대한 예외적인 보복이 계속되고 있다.
특정 기업이 외국의 정부에 의해 이토록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기업의 보호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심스럽다. 특히 롯데는 정부의 요청에 사드 부지를 선뜻 제공한 것 아니던가. 친(親)기업적이기 보다 친(親)노동적이고, 주주의 일원인 기업과 국민을 화합시키지 못하고 갈등만 조장하는 이런 국가 시스템으로는 우리 기업 혹은 국민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해외지향적인 경제 구조를 갖고 있는 여건에서 우리 기업이나 국민이 외국 정부로부터 부당한 대우나 이익을 침해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과연 제대로 된 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해외 시장에서 일본 기업이 활개를 치기 시작하면서 우리 상품의 샌드위치적 지형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근자에 우리 원화가 평가절상 되고 있는 것에 반해 일본 엔화의 안정적인 저평가 현상은 역력하다.
아베노믹스가 시작한 2012년 말 이후 엔화는 무려 20% 이상 평가절하 됐다. 이러한 기조는 내년까지 당분간 유효할 전망이 지배적이다.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이 10% 하락하면 우리 수출이 4% 줄어든다고 한다.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중국마저 조선·자동차·IT에 이어 디스플레이·반도체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력산업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계획경제라는 틀을 통해 국가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있는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J노믹스라는 것이 얼마나 순진하고 자가당착적인가를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기업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다.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 시장이 받쳐주는 나라로 기업은 움직인다. 이를 꿰뚫기라도 하듯 신흥국은 물론이고 선진국마저 기업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풀며 갖은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트럼프노믹스가 발동된 이후 우리 기업의 대미(對美)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무려 100억 달러를 돌파해 작년의 90%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대기업이 선봉장에 서면서 무려 879개 기업이 미국에 발을 들였다.
이에 못지않게 인력 가성비가 높은 베트남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다. 국내에 있는 기업은 물론이고 중국 등 해외에서 이전하는 기업도 국내로 들어오지 않고 다른 외국에 가서 둥지를 튼다.
J노믹스의 핵심인 일자리 창출도 정부 출범 이후 전보다 실적이 더 부진하다. 기업이 국내에 투자를 하지 않고 모두 국외로 떠나가면 일자리는 어디서 나오나. ‘주식회사 일본’이 하고 있는 것들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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