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경제학의 변화, 긴축에서 포용적 성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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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알프레드 사드-필류 외 <네오리버럴리즘>

2000년대 신자유주의의 위기에 경제학은 어떻게 답했는가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12-23 17:11:57

오늘날 의미가 자명한 듯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사회과학 용어 중 하나는 ‘신자유주의’가 됐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며 2008년 이후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후 많은 이들이 국가 시스템 붕괴에 대해 말했다. 신자유주의는 작은 국가를 추구하며 국민의 안전과 복지로부터 국가의 역할을 축소시켰다는 평가를 수반했다.

헬조선의 청년 담론이 회자되며 다시 노동의 불안정성이 큰 화두로 부상했다. 신자유주의는 긴축과 구조조정에 기반해 노동의 불지속가능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런 진단들은 대체로 적절한 진단이다. 하지만 과연 신자유주의는 모든 곳에서 혹은 2000년대를 관통하며 항상 같은 얼굴을 하고만 있었을까?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롭게 볼 부분은 책의 편집인 중 한 명인 알프데르 사드-필류의 글이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배반

한국에 구제금융이 투입되던 90년대 말에 세계 경제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의 기반한 경제학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국가 재정은 긴축정책에 입각하고, 노동은 유연성을 최대해 경쟁의 구도를 전면화했다. 산업에서 금융의 영역이 비대화됐고, 무엇보다 서민들의 금융시장 참여가 크게 독려됐다.

8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위기를 수반했던 긴축-구조조정의 기조가 동북아를 휩쓴 것은 90년대 말이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 주류경제학자들이 라틴아메리카의 긴축정책 이식을 목표로 탈규제와 노동유연화를 골자로 확립한 정책적 기조의 기본 틀을 뜻한다.

이런 정책적 틀의 위험성은 90년대 동북아 경제위기를 경과하며 전 세계에 불안감을 가중시키기 시작했다. 과연 경제위기는 재정정책이 방만했던 나라들에서 터져 나온 것일까? 혹시 긴축 기반의 워싱턴 컨센서스가 지속가능한 경제모델로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1990년대 말 세계은행의 총재였던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워싱턴 컨센서스를 강력히 비판한다. 기업 중심의 노동유연화가 기업 활동의 활성화를 통해 신규 고용을 창출할 거라는 이른바 ‘낙수효과’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긴축이 강요되고 노동의 불안이 심화될수록 부자와 빈자 간의 격차는 끝도 없이 증대하기만 했다.스티글리츠를 비롯해 워싱턴 컨센서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논의들이 세계 각 지역과 영역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라틴아메리카와 (한국을 비롯한)동북아에서 구조조정의 비용(위험)은 다수의 취약계층에게 전가됐고, 많은 나라들이 재생보다는 위기의 심화를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포용적 성장론의 부상

2008년 금융위기는 모든 누적된 문제를 공론장에 전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주도권을 갖지 못했던 관점과 정책들이 새로운 논쟁의 장으로 나타났다.

선두 주자는 스티글리츠였고, 그는 긴축과 노동의 유연화를 벗어나는 이른바 ‘포스트-워싱턴 컨센서스’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스티글리츠의 논의를 이어받아 2000년대 후반에는 주류 경제학 담론이 큰 변화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긴축을 대체하듯 등장한 용어가 바로 ‘포용적 성장’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담론의 핵심은 단순한 시장중심적 낙수효과라는 것은 없다는 것, 국가의 보다 적극적인 시장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초점 중 하나는 ‘빈곤’정책에 맞춰졌고, 이제 성장은 빈곤문제의 해결을 통해서만 정당성을 갖는 것으로 인식됐다. 한쪽에는 빠른 성장(워싱턴 컨센서스)이 다른 한쪽에는 더 많은 공정성(포스트-워싱턴 컨센서스)가 놓이게 됐다. 해법은 대체로 이 둘의 화두를 절충하면서 국민들의 불만을 완화하는 형태로 귀결됐다.

이것이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들이 ‘따뜻한 공동체’에 대해 말하고(유승민), 포용적 성장을 언급한 일면이었다(문재인). 그리고 바로 이 과정에 최저임금 인상과 프랜차이즈 기업의 갑질 거래에 대한 규제 논의가 싹텄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사드-필류는 주류 경제학의 이러한 패러다임 변동이 위기에 대한 온전한 해법이기보다 문제를 모호하게 절충하는 것이었음을 지적한다. 한국의 이른바 ‘경제민주화’ 논의에서도 포용적 성장의 기조가 어떠한 타협과 발전을 수반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