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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 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로새서 1 : 20>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동물계 최고의 맹수답게 호랑이는 죽어서도 누구라도 갖고 싶어 하는 최고의 가죽을 남기고 가듯,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는 인간들도 죽어 땅에 묻히지만 이름 석 자를 남아있는 자들에게 남긴다.
물론 똑같은 삶을 마감했지만 이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보다 이름도 없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저 세상에 와서 아무 의미 없이 살다가 남에게 상처를 안겨주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더러는 살아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귀감이 되고, 죽어서는 더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도 있다.
며칠 전 이웃집 노인이 돌아가셔서 조문을 간 적이 있었다. 지체장애자 아들이 상주로 있는데 친인척마저 없는지 빈소가 썰렁했다. 조화도 필자가 보낸 것뿐이다. 반면에 옆 빈소는 상주가 이름께나 있는지, 복도 좌우로 수십 개의 조화가 진열돼 있고 문상객도 줄을 잇고 있다.
인생 최고의 피날레 ‘죽음’…잘 모르기에 더욱 두려운 ‘죽음’
완전히 대조적인 이 상황 속에서 사람은 살아서도 차별대우를 받고 살지만 죽어서 까지도 차별을 받는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대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음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의 그림자는 전혀 생각지 않고 마치 남의 일처럼 무관심하다.
특히 우리는 주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의 소식을 접하며 인생의 가장 진한 비애와 상실을 체험하는 가운데 긴장과 함께 불안한 심정이 되기도 한다. 필자 역시 가까운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서의 이별을 애도하며 떠나보냈던 마음의 상흔을 갖고 있다.
흔히 인생을 배우려거든 눈물과 슬픔의 이별이 있는 상갓집을 찾으라는 말이 있듯 일찌감치 삶이 죽음을 완성해 가는 과정, 혹은 죽어가는 과정이라 느꼈다 해도 어느 누구인들 죽음 앞에서 죽음이 존귀하고 아름다움의 순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인생 최고의 피날레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문제는 그런 죽음이 나이에 따라 순차적이지 않고 생리적인 노화현상으로만 오는 자연스러움에 있지 않다는데 있다. 이 땅에 종교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죽는 문제’때문일 것 같다. 종교는 곧 죽음 때문에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어느 종교도 죽음의 본질을 현실적으로 풀어내고 만족하라 만한 해답을 던져주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단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은 원대한 신(神)의 계획에서 이루어진다는 일방적인 해석으로 그 비밀을 다독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동행 할 수도 없기에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죽음으로 두려움을 주는 가하면 그것으로 삶의 정체성을 회복케도 한다.
아울러 존귀한 죽음 뒤안길에는 언제나 새로운 삶의 열매가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을 종종 목격하기도 한다. 누구든 내일 아침 다시 눈을 떠 눈부신 햇살을 볼 것이라는 확신 없이 잠자리에 들며 하루하루를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죽음이기에 우리는 덜 후회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또한 ‘최고’에 앞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미움도 슬픔도 결코 남겨놓고 떠나서는 안 된다. 살아 숨 쉬는 동안 나보다는 남을 위한 삶으로 세상을 밝고 맑은 마음속에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아름다운 죽음을 생각하는 마음이 돼야 한다.
‘죽음’을 기다리며 ‘온정의 삶’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어쩜 자신을 되돌아보는 진지한 반성이자 삶에 대해서는 보다 진실한 자세를 갖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침묵으로 우리에게 많은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맞이하는 12월은 한 해의 저물녘 같다. 모든 일을 끝내고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서둘렀던 일, 하고자 했던 일,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 등을 가만히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일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어제까지의 모든 것을 꼼꼼히 다듬고 매듭을 지어야만 하는 때이자 또 다른 미래를 위한 정리의 시간이 필요한 달이기도 하다.
12월은 세월을 야금야금 먹어치우며, 여전히 굶주린 얼굴로 어둠 속 어제를 갉아 먹고 있다. 그런 12월의 시간을 우리는 떠나보내고 있는 것이다. 살아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귀감이 되고, 죽어서는 더 영향력을 끼친 분이 있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 인간 예수님이시다.
사랑과 용서는 기독교의 덕목이다. 마침 인류의 죄를 대신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스스로 달려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이 이틀 남았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으로 세상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해를 도모한 사람의 이름 석 자가 이렇게도 대단함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초대교회에 베드로와 바울 같은 위대한 사도가 있어서 그 이름이 오늘까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영원한 사표가 되고 있듯이 저들의 이름이 예수님과 함께 캡쳐되고 있는 것이 우연한 일일까.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며 베풂의 삶을 살며 남은 자들로부터 좋은 인상, 좋은 기억을 남기고 살아있을 때 “그 때,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었어”라는 말을 듣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더 큰 사랑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온정(溫情)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마지막 12월을 떠나보내며 간절히 염원해본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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