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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해 목표를 설정하고 심기일전의 각오를 다진다. 무한경쟁 시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경제전사라고 할 기업들도 말할 나위 없이 목표가 곧 돈이며 생존이라는 배수진의 결의를 다진다. 또 국가는 한 해 동안 추진할 주요 국정목표를 가다듬고 굵직한 경제엔진에 시동을 건다.
1월은 이처럼 사활을 건 공포의 전열을 머금어야 희망이 싹트는 시간이다. 새해는 곧 고난의 가시밭길을 적극 받아들이며 엄숙한 결전을 새기는 출발이다. 하지만 한국경제는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이란 화려만 문구 뒤에 이뤄지는 무수히 많은 공짜와 퍼주기 등의 장밋빛 환상이 가득해 무서운 전율을 먼저 느끼게 한다.
기업들은 무술년(戊戌年) 황금개띠 해를 맞았지만 이구동성 앞이 안보인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업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면서 이끌어 가야 할 국가를 돌아보면 실망스럽다. 2018년 대한민국은 과연 밥그릇을 만드는 기업들을 이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앞선다. 기업들은 비전은 차치하고 오히려 역주행 공포에 휩쌓여 있는 중이다.
국가경제 후퇴는 국민들에게 체감상 큰 고통을 준다. 올해 한국경제가 1인당 3만불 시대에 진입한다고 하지만 왠지 불안한 것은 강한 경제체질이나 노동시장 유연성 등이 뒷받침 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3만불이 무너지는 역주행이 되면 우리 경제는 그에 상응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떠 앉아야 한다. 한국은 그토록 우려스러운 중진국 함정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릴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연말 청와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확대경제장관회의를 갖고 ‘2018년 경제정책방향’을 확정했다. 핵심 내용은 3%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면 한국경제는 7년만에 두 해 연속 3% 성장이라는 성과를 거둔다. 지난 2010~2011년에 각각 6.5%와 3.7% 성장률을 기록했었다. 하지만 이후 2014년 3.3%를 제외하고 2016년까지 2%대 성장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새 정부의 의욕적인 성장률 비전이 주목이 가지만 왠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상황이어서 미덥지가 않다.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에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것은 성장목표를 담보할 대책들이 견고하지 않다는데 있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밑그림은 외견상 좋아 보이지만 낭만적 포퓰리즘으로 국가재정만 축낼 여지가 있다. 실제로 수많은 국가에서 소득주도 성장론과 유사한 국가재정을 운용한 결과 일시적으로 땜질효과는 보았지만 근본적인 체질개선은 실패했다. 오히려 남미 좌파정부들의 경우 퍼주기식 재정운용으로 인해 잇단 파국 사태를 맞았을 뿐이다.
최저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은 특히 걱정이다. 이미 새해벽두부터 각종 생필품 값들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올해 인플레이션 수준은 심각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이어진다. 아무리 급료가 올라도 인플레이션이 동반되면 구매력이 높아지기 어렵다. 오히려 소비 위축이라는 역주행을 하게 되면 성장을 견인하기는커녕 성장에 발목이 잡힌다.
청년들에게 중소기업 취업을 보장하는 서비스 도입도 마찬가지다. 작금의 청년실업 문제는 일자리 수의 문제라기보다도 청년들이 눈높이가 높은데서 오는 원인이 더 크다. 공기업과 대기업에 쏠린 청년들의 구직패턴이 가시지 않는 한 중소기업 취업보장제 도입은 부작용만 낳는다. 중기 입장에선 불필요한 인력을 고용하는 부담을 안게 될 뿐만 아니라 설사 필요한 인력을 고용했다고 해도 잦은 이동이 발생하면 더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중소기업들은 정부의 관심을 오히려 곤혹스럽다고 할 정도로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 해소도 역주행이 우려되기는 마찬가지다. 정규직의 임금을 끌어내리는 격차해소를 할 수 없는 만큼 비정규직의 임금을 올리다보면 기존의 정규직 역차별 불만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된다. 이미 적지 않은 기업들에서 정규직들의 불만이 강하게 터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이 같은 불만은 노동 생산성이 저하될 우려를 높게 키운다. 특히 수출기업에서 노동 생산성이 떨어지면 경제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는 여론을 허투루 들으면 안 된다.
4차산업을 중심으로 한 혁신성장론도 주먹구구식이다. 전임 박근혜 정부 시절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창조경제 성장론은 사실상 실패작이다. 밥그릇을 만드는 창조적 혁신이라는 의도가 좋았지만 권력이 개입된 창조성이라는 비전 자체가 원만히 작동할리 없었다. 예상대로 창조경제론은 기업들의 형식적인 참여만 이뤄졌고 대부분 용두사미가 됐다. 현 정부의 혁신성장론도 권력이 개입될 여지가 높다. 권력형 창조나 권력형 혁신은 발상부터 실패를 전제한다. 창조와 혁신은 권력이 아닌 문화코드다. 정부의 의지대로 이뤄지는 형태라면 똑같은 유형의 실패가 재판되는 꼴이다.
혁신성장을 주도하려면 정부는 기업들의 자율성을 더 제고해야 맞다. 특히 수출기업들인 대기업들의 혁신성장에는 정부의 무간섭 원칙이 아주 중요하다. 국가 인프라 구축을 제외하고 그 어떤 정책방향이든 기업들에게 강요하면 기업의 경쟁력 기반인 자율을 구속하고 만다. 자율은 근로자들이 갖고 있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동선을 주는 일이다. 큰 틀을 정해주는 것 자체가 자율을 막는다. 여기에 강압까지 이뤄진다면 혁신성장은 말뿐인 구호로 전락해 4차산업 선도 깃발은 역주행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혁신성장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도 목표로 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가계, 각 지역 간 공정한 배분의 전제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아니 무한경쟁의 바탕 위에서 탄생하는 혁신의 전제는 승자에 대한 과감한 보상이 더 강화돼야 옳다. 그것을 무시하고 분배의 형평을 기하고자 하면 분배의 기반인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혁신의 역주행은 국가 미래를 담보할 성장 모멘텀을 죽이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정부의 성장률 3%대 목표 자체가 대부분 민·관 기관들과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재검토 대상이다. 한국은행만 해도 2.9%를 예상하고 그 전망의 배경에 경제 허약체질론을 제시했다. 국책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기업들의 투자위축을 들어 같은 수치를 내놓았다. LG경제연구원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2.8% 저성장을 예측했고, 현대경제연구원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역작용으로 2.5% 성장을 추계했다. 민·관 주요기관들이 2%대 성장률이 불가피함을 근거 있게 제시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낙관적인 정부의 성장률은 도대체 무슨 근거를 갖고 한 것인지 의문이다. 거시적으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도 성장률에 큰 장애요인이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를 모르지 않는다. 분배의 정의를 통한 더욱 굳건한 경제토대 구축의지도 잘 안다. 하지만 성장의 견인차인 대기업들을 굳이 옥죌 필요가 없다. 풀뿌리 경제를 통한 성장론이 후발국이나 개도국에서는 수없이 실패한 전례를 참고하지 않았다고 하면 유구무언이다. 나아가 국가가 개입한 권력형 풀뿌리 경제는 경제 효율성에 치명적인 역작용을 가져온다.
현 정부의 새해 경제정책 기본방향의 밑그림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설계가 곳곳에서 보인다. 특히 과도한 퍼주기 복지는 치열하게 생존해 온 우리의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더 떨어지고 그로인해 효율성이 감소한다면 한국경제는 그나마 갖고 있던 샌드위치 경쟁력마저 빼앗기는 불운을 자초한다. 수출 대기업들의 글로벌 경제전선 후방에서 안정만을 구상하는 방식은 너무 안일하다. 새해를 맞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여러차례 겪었지만 치명적 역주행까지 걱정해야 하는 2018년 새해 아침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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