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주 
대체로 프랑스혁명을 근대 민주주의 혁명 모델의 원천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1789년에 발생한 이후 19세기를 관통하며 지속된 프랑스 민중들의 반란은 근대 인권 개념과 민주주의의 원리를 구축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흑인들의 혁명이 일어났다면 어떨까. 거의 같은 시기에 프랑스혁명과 교신하듯 라틴아메리카 아이티 섬에서 흑인들의 거대한 혁명이 일어났다.
노예제 폐지를 걸고, 서구 식민지배자들을 향해 봉기한 이 혁명은 놀랍게도 근대의 혁명 모델로 기억되지 않는다.
아이티 혁명은 프랑스 혁명과 어떻게 같고 달랐을까. 그리고 그것은 왜 세계인들의 역사의식 속에서 온전히 기억되지 못하는 것일까?.
아이티혁명의 망각과 평범화
우선 프랑스혁명이 계몽주의 지식인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반면 아이티혁명은 철저히 외면 받았다. 신분제에 저항하며 평등과 자유를 꿈꾼 두 혁명은 계몽주의자들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갔다.
합리성과 문해력에 기반해 기존 체제의 무능력과 비합리성을 폭로한 계몽주의자들 눈에 아이티 흑인들의 반란은 합리성의 영역을 위반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책의 저자 미셸-롤프 트루요는 민중의 역사를 배제하는 두 가지의 방식에 대해 말한다.
하나는 삭제하기다. 1791년 일어난 아이티 흑인혁명의 핵심 지도자는 장 밥티스트 상수시였다. 혁명을 급진화하며 프랑스혁명에 이은 또 다른 근대 민주주의 혁명의 불씨를 가져온 상수시는 식민주의자들과 손을 잡은 앙리 크리스토프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의 죽음은 새로운 지배세력의 의도적인 왜곡작업을 통해 민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기 시작했다.
상수시라는 이름으로 대표된 흑인 혁명`의 급진성은 이 망각의 과정을 통해 잊혔고 이는 흑인들이 다른 모든 인종들과 마찬가지로 주체성을 갖고 민주주의 모델을 스스로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케 했다.
다른 하나의 배제 방식은 ‘평범화’다. 당대 서구의 지식인들은 아이티 혁명이 흑인들의 주체성이 아니라 전염병과 기후변화로 인해 파생된 우연적 결과물이라고 간주했다.
19세기 서구 식민주의의 욕망
그렇다면 서구 백인들의 흑인 혁명에 대한 이러한 의도적 망각과 왜곡 작업은 왜 일어난 것일까. 다른 많은 역사연구서들이 지적하듯 19세기는 프랑스혁명의 민주주의 모델뿐 아니라 국민국가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른바 ‘대중’들이 등장했고, 지배계급들은 이 대중들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에 당황했다. 대중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mass 혹은 crowd는 때로 mob, 즉 ‘폭도’의 의미로 이해되기도 했다. 프랑스혁명은 이 제어되지 않는 대중들, 즉 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기반해 일어선 거대한 반란이기도 했다.
이제 대중은 통제되어야 할 무엇으로 간주됐다. 이 책의 저자 트루요는 비슷한 함의를 갖는 공중(public, 대중)의 등장이 지배자들의 새로운 욕망을 낳았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공중의 통제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이들이 모두 하나의 전통과 규율하에 탄생한 공동체적 존재라는 신화였다. 국민국가의 새로운 전통들은 이러한 신화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언제 어떻게 아메리카 대륙에 가닿았는지도 불투명한 콜럼버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이르며 서구의 지식인들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부터 서구 백인들의 우월함을 읽어내려 했다. 19세기의 국민국가 건설 과정을 거치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뜬금없이 1492년 10월 12일에 있었던 일로 기념되기 시작했다. 1892년 10월 12일에는 신대륙 발견 400주년 기념행사가 스페인과 미국에서 벌어졌다.
반대로 아이티혁명의 기억들은 매우 모호하다. 혁명의 영웅은 왜 역사의 기록 속에서 지워져야 했을까? 트루요는 당대의 주류 미디어에서는 혁명가 상수시의 온전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미개인들에게 문명의 원리를 알려준 백인. 이러한 백인의 만들어진 이미지는 흑인 혁명의 역사에 대한 망각 위에서만 온전히 구축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