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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무기를 많이 사들이는 대표적인 국가로 꼽혀 온 우리나라가 이제는 무기를 많이 파는 나라의 위상을 높여가고 있는 것은 국가경제적으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은 지난 수십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수입하는 반열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분단의 아픔을 간직해 왔다. 같은 민족을 향한 무차별 살상무기를 끊임없이 사들여하는 하는 분단 현실을 차치하고서라도 무기를 사고 운용하는 천문학적 비용 자체가 우리에겐 너무 과중한 짐이었다. 방산무기의 국산화와 수출은 이런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 ‘세계 무기제조기업 상위 100개사’에 따르면 작년 한국 방산업체들의 매출실적이 전년 대비 20.6% 증가한 약 84억달러(약 9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100개사 매출이 평균 1.9% 증가한 것에 비하면 우리 방산매출은 큰 폭의 증가율이다. 선진국을 제외한 국가 중에서는 가장 높은 매출 증가율이기도 하다. 매출이 급증한데는 국산화에 성공한 토종 무기들의 활발한 수출이 큰 기여를 했다.
한국산 무기들의 주요 수출국은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동유럽과 남미 등의 지역이다. 이들 국가에서 한국산 무기들에 대한 평가가 아주 좋다. 실제로 각종 국산 최신 무기들의 성능과 품질은 선진국들과 비교해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한국 방위산업은 전차, 자주포, 미사일, 잠수함을 넘어 이제 헬기와 전투기까지 자체 생산해 수출할 능력을 갖췄다. 참으로 세계 최빈국 방산 불모지에서 단기간에 이뤄낸 믿기지가 않는 비약적인 발전이다.
우리는 이제 세계최대 무기 수출국인 미국에도 전투기 수출을 타진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우리가 가장 많은 무기를 수입하는 국가다. 한국은 거꾸로 군사 초강대국이자 방산수출 독보적 1위인 미국의 안방시장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방산비리 의혹 등에 엮여 검찰의 전방위 수사를 받으며 나락으로 떨어졌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미국 시장을 타진하는 선두에 서 있다. 단기간에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박수를 쳐 줄 일이고 방위산업 발전으로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KAI는 록히드마틴과 손을 잡고 미국 공군의 차기 고등훈련기(APT·Advanced Pilot Training)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APT 사업은 1차만 350대에 달해 금액으로 무려 17조원에 달할 뿐만 아니라 추가 2차사업 150대에 미 해군 500대까지 감안할 경우 총 1000대 50조원 규모에 이른다. 여기에 군사 강대국 미국 수출 반사효과를 탄 제3국 수출효과까지 감안하면 우리의 고등훈련기 수출 시장은 100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가 미국 APT 사업에 국가적 역량을 총 동원해 반드시 수주를 성공시켜야 하는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방산비리를 적폐로 규정하고 KAI를 먼지 털듯 뒤졌다. 이로 인해 고등훈련기 수출이 잇따라 차질을 빚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무기들까지 수출통로가 막히는 불운을 겪어야만 했다. 금융거래와 주식거래까지 정지당하면서 한국 방위산업의 핵심기업이 최대 위기를 맞았었다. 지난해 1999년 창사 이래 최초로 적자를 면치 못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방산 전문가들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격이 됐다고 현 정부를 질타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에서 100여명을 투입하는 전방위 조사를 하고도 방산 비리는 찾지 못하고 내부 경영비리만을 확인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나아가 분식회계도 산업의 특성상 몇 년을 놓고 보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새 정부의 적폐청산 명분, 방사청의 삐뚤어진 시각, 내부의 요란한 문제 등으로 인해 건실한 방위산업 업체가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까지 갈 뻔했다. 다행인 것은 이후 새로 부임한 사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고 새 출발 진용을 갖췄다는데 있다. KAI 상무보 이상 임원들은 급여를 포기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위기를 이겨내고 있는 KAI는 미국 시장에 고등훈련기 수출을 위한 깃발을 다시 힘차게 들어 올렸다.
KAI가 미 APT 사업을 따낸다면 단숨에 세계적인 방산업체로 도약이 가능하다. 한 기업의 성장뿐만 아니라 한국 방위산업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다. 선진국과 대등한 신뢰도를 갖게 될 경우 방산은 우리 수출의 주요 효자업종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아울러 미래 우리나라의 첨단 무기들에 대한 수입대체 효과까지 감안하면 이번 미국 수주전은 동원 가능한 모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현재 수주 가능성은 속된말로 ‘도 아니면 모’다. 구원투수로 투입된 김조원 사장은 이를 두고 ‘제로 아니면 백’이라고 표현했다. 우리에겐 운명을 건 싸움이 극한의 두려움을 안고 싸워야 하는 이른바 베팅 싸움인 것이다. 상대는 미국의 보잉사와 스웨덴 사브의 컨소시엄이다. 방산 수출기업 글로벌 1·2위에 올라 있는 록히드마틴과 보잉의 경쟁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여기에 사브는 우리를 능가하는 강력한 경쟁사다. 미국 내에서 이뤄지는 게임이기에 우리는 록히드마틴의 길을 닦아줘야 하는 처지이지만 그것이 한국 방산의 운명을 결정하는 분수령이 되고 있다.
사업권을 따 내려면 출혈경쟁이 불가피하다. 수많은 협력업체들의 희생을 담보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지원과 도움이 요구되고 있다. 필요하다면 대통령과 청와대가 나서 미국에 협조를 넣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어차피 우리는 향후 상당기간 동안에도 미국의 최대 무기수입국이 돼야 할 처지다. 미국 방산의 최대 고객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 같은 지위를 활용한 다양한 카드를 마련해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토종 전투기가 미국 전역을 누비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 세계 하늘을 날게 한다면 국가의 국격을 크게 올리는 경사다. 한국 브랜드의 신뢰도 향상은 다른 수출산업에도 큰 부가효과를 줄 것임이 분명하다. 아울러 첨단기술의 집약체인 전투기는 한 국가의 총체적 기술력을 가늠하게 하는 잣대이기에 산업의 총아라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 고등훈련기 사업 수주를 통해 전투기 제조 능력을 지속적으로 키워간다면 우리 산업 전체를 업그레이드 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KAI는 위기 속에서도 오는 2030년까지 세계 5대 항공우주업체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는 야심찬 비전을 설정했다. 지난해 KAI는 방산수출 글로벌 순위 41위에 머물렀지만 도전 의욕만은 만만치 않다. 전투기 사업이 민항기 사업의 전초전인 것도 핵심 비전이다. 더불어 무한가치를 창조할 우주산업의 토대를 닦는 사업이다. 종합하면 미래 최대 유망산업 중 대표적인 것이 항공우주산업이다. 한국경제의 핵심 방점을 KAI가 찍고 있는 만큼 국가적 역량 동원 이외에 국민들의 성원까지 필요하다.
냉전시대 유물로 남아 있는 분단 대한민국이 방위산업을 꽃피운 것은 기적에 가깝다. 자주국방을 깃발로 내건 지난 수십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데 는 이 분야 종사자들의 뼈를 깎는 노력과 도전 덕분이다. 인명을 살상하는 전쟁무기를 수출하는 것이 언뜻 부도덕해 보이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이들 무기들은 오히려 평화를 위한 울타리로 대부분 사용돼 왔다. 우리만 봐도 전쟁을 적극 준비하는 것이 평화를 담보하는 길이었다. 방위산업은 인류평화는 물론 한국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반드시 필수적인 경로다. 미국과 국가운명을 건 담판을 짓거나 아니면 협력업체에 대한 가격경쟁력 제고 방안을 강구해 반드시 미 공군 APT 사업권을 따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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