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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글로벌 기업들의 기술 경연 각축장이 되고 있다. 원래는 단순히 가전제품의 그 해 기술 트렌드를 파악하는 정도의 이벤트지만 수년전부터는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한 경쟁의 장(場)이 되고 있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가전제품뿐만 아니라 미래 자동차에도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금년에는 AI(인공지능)와 로봇, 스마트시티까지 대거 가세함으로써 명실공이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가전제품의 시장 트렌드를 끌고 가는 선두주자가 일본 기업에서 우리 기업으로 바뀌면서 CES 전시장의 핵심 위치에 삼성이나 LG가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래차 관련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대거 가세해 이런 프리미엄도 점차적으로 희석돼가고 있는 추세다.
기술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면서 모두가 판세를 잡아 보려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되겠다고 아우성이다. 우선 중국 기업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이미 10년 전부터 CES에 중국 기업이 참가하지 않으면 적자가 날 정도로 이들의 공세가 무섭다. 출품업체의 절반 이상의 중국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으로만 본다면 가히 중국의 독무대다. AI나 로봇, 전기차, 빅데이터, 가전제품 등에서 중국의 추격 속도가 너무 빨라 어지러울 정도다. 소위 말하는 ‘차이나 스피드(China Speed)’가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이번 CES의 또 하나 특징은 ‘이종교배’ 혹은 ‘합종연횡’의 트렌드가 대세로 정착되고 있는 점이다.
자동차와 AI·5G, 가전과 사물인터넷·AI 등으로 교집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구글과 아마존의 AI 플랫폼이 가전과 자동차업체들의 줄을 세움으로써 이들 두 업체가 올 CES의 궁극적인 승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바야흐로 제조업체와 AI 솔루션 업체 간의 조화로운 결합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짝짓기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 되고 있는 셈이다.
올해 CES는 공식 캐치프레이즈로 ‘스마트 시티의 미래’로 정했다. 작년 화두인 ‘스마트홈’에서 그 개념을 대폭 확장한 것이다. CES의 지평을 집에서 도시로 공간을 확장함으로써 그와 관련한 솔루션이 크게 늘어났다. 스마트시티는 사람과 가전제품, 집과 사무실, 도로와 자동차, 생활용품 등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을 AI와 연결하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오는 2020년까지 전 세계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비용만 353억5000만달러(약 38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금의 스마트폰 이후 10년간 미래 먹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기업 규모가 크든 작든 모두가 AR(증강현실) 기술에 올인(All-in)하는 모습도 보인다.
다수의 스타트업들이 차별화된 AR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과감하게 선보이기도 했다. VR(가상현실)과 달리 AR은 별도 기기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각국 중소 벤처기업들의 도전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만 전쟁터에 내보낼 수 없어, 국가가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판세가 이렇다보니 CES 격전장에서 우리 기업의 위치가 점점 더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삼성, LG, 현대 등 일부 간판 기업들이 선전하고 있다고는 하나 정확하게 표현하면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이다.
스타트업 등 벤처기업의 참가 면면에서는 중국 등 경쟁국에 비해 숫자는 물론이고 기술력에서도 크게 뒤처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해외 무대에서 우리 대기업의 강세로 자부심을 느낄 때도 있지만 최근 들어 과거와 다르게 우리 기업들이 경쟁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氣)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국내에서 온갖 규제로 주눅이 들고, 적폐청산 대상으로 내몰리기가 다반사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까지도 정부가 규제를 풀고 입법을 통해 신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다. 해외에 나가면 그래도 우리 기업이 이류 혹은 일류는 되는데 반해 우리 정치·공무원은 아직 이류 혹은 삼류라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한 국가·기업·개인 간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카운트다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느냐 아니면 죽느냐 하는 생존게임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 게임에서 그나마 처절하게 준비를 하고 있는 쪽은 기업이다.
정부의 백업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도 독자적으로 미래를 위한 밑그림 그리기에 바쁘다. 경쟁자들보다 비록 늦었지만 외부 기업들과의 합종연횡도 서두른다. 거친 중국의 공세에 대응해 차별화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현재 조금이라도 나은 우월적 위치를 연장하기 위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현대자동차는 향후 5년간 23조원을 AI·로봇, 커넥티드카 등 신사업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일자리 4만5000명을 채용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삼성이나 LG도 좌불안석은 마찬가지다. ‘승자 독식’의 구도가 졸지에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는 비명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처한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가혹하고 냉엄하다. 기업 혼자 전쟁터에 나가 싸워서 이기고 돌아오라고 하는 것은 너무 안일한 발상이다. 다른 경쟁자들과 같이 국가가 합세하여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을 더 끌어안아야 한다.
대기업을 부추기고, 스타트업 등 창업 열풍에 동참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래 먹거리와 관련한 신산업 지도를 정교하게 만들고 관련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야 한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성장의 다른 한 축인 ‘혁신 성장’이 제대로 착근이 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등 시스템을 확충해야 한다.
또 과거와 같이 무늬만 그리고 시늉만 낸다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야 정치가 따로 없고 정부 공무원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3만달러 시대라고 샴페인을 터뜨릴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까딱 잘못하면 땅 칠 일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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