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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글은 이른바 ‘신삥’들에게 들려주고픈 얘기다. 군대에서는 새로 들어온 병사 즉 신병(新兵)을 ‘신삥’이라고 부른다. 격을 낮추거나 깔보는 의미가 담긴 은어다. 군대가 아닌 곳에서는 신참(新參)이 되는 셈인데 이 또한 신삥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군대나 사회가 모두 이처럼 무시하는 의미에서 ‘신삥’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에는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어느 곳이든 신참을 환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필요에 따라 신입사원을 채용한다. 기업의 오너는 긴 장래를 보면서 신참을 채용하지만 그 것은 오너 입장이다. 기존 직원들은 심리가 복잡하고 또 미묘하다.
기존 직원의 경우 부서에 일손이 부족하면 충원을 요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참을 무조건적으로 환영하지는 않는다. 신참이 부서에 배치되고 충원돼도 기존 직원의 입장에서 신참이라는 존재는 당장 그다지 쓸모가 없다. 가르쳐서 써야 하는 만큼 오히려 거추장스럽기까지 하다.
바빠 죽겠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신참을 데리고 가르쳐주고 신경을 써야 하며 때로는 자상하게 보듬어줘야 하니 부담만 된다. 그러니 좋을 까닭이 없다. 더군다나 신삥을 정성껏 키워놨다가 나중에 그 신삥 놈에게 자리를 빼앗기거나 밀려날 수도 있으니 기존 직원의 입장에서 신삥을 반길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니 툭 하면 잔심부름이나 잘하라는 말로 구박을 주기도 한다.
관리자의 입장이라면 조금 생각이 다르다. 조금은 더 아량을 베풀 용의가 생긴다. 밑의 직원들이 신참을 구박하지만 않고 잘 가르쳐서 쓸 수 있게 되면 당연히 관리자에게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관리자는 중간자적인 입장이다.
어쨌거나 신참을 데리고 일한다는 것은 대단히 성가시고 불편한 일이다. ‘신삥’이라는 단어 속에는 그 성가심과 불편한 심리가 녹아있는 셈이다.
그래도 대기업의 경우에는 신참에 대한 구박이 가장 덜한 편이다. 중소기업으로 갈수록 사정이 더 각박해진다. 젊은이들이 대기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급여와 장래 비전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중소기업도 그렇지만 특히 신참에 대한 대우가 가장 험한 곳은 이른바 ‘바닥’이라는 은어를 쓰는 세계다.
어떤 청년이 서비스 업계에 창업을 했다고 가정할 경우 그는 서비스 업계라는 ‘바닥’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된다. 모든 자영업자는 그 바닥에서 나름 성공한 위치에 있지 않는 이상 그 ‘바닥’에 몸을 담고 있다.
모든 바닥은 ‘초대장’을 발행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바닥에 들어오라고 초대한 적도 없고 바닥에 들어온 자를 환영해주고 싶은 마음 또한 전혀 없다. 안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서 피 튀기는 경쟁을 하는 마당에 또 하나의 신참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각자의 몫을 줄이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은 신참자나 신삥을 환영하지 않는다. 공직이나 대기업은 여유가 있기에 덜 그런 것이고 중소기업은 조금 더 각박하며 이른바 ‘바닥’이라는 곳은 그냥 차가운 눈빛으로 신참을 바라볼 뿐이다.
몇 년 사이 기업 채용이 줄어들자 정부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창업 바람’을 잡고 있다. 나름 지원책도 다양하고 성공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용기를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청년이 창업한다는 것은 그 분야, 즉 그 바닥에 대해 아무런 경험도 없이 뛰어드는 것이다. 스스로 사전에 철저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해도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그 ‘바닥’에서는 나를 결코 환영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학생 신분은 어쨌거나 이른바 갑의 신분이다. 이른바 ‘갑질’을 할 수 있다. 등록금을 지불하는 자는 갑이지 을이 아니다. 이처럼 ‘갑’만 하던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을’이 되는 것이 바로 창업이다.
갑만 하던 청년이 공직이나 대기업도 아니고 또 중소기업도 아닌 그냥 그대로 ‘날 것’의 세상인 바닥에 뛰어들었을 때 받게 되는 충격은 실로 엄청나다. 이제까지 한 번이라도 을이 돼 ‘갑질’의 횡포에 시달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공교육 현장이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학생이 예전처럼 선생으로부터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나를 한 번 잘 가르쳐 봐라’는 고자세가 됐기 때문이다. 교사는 노동자로서 을이고 학생은 교육소비자로서 갑인 세상으로 바뀌었기에 공교육이 무너졌다.
갑으로서 교육소비자 신분만 누리던 학생들이 이제 학교를 마치고 사회진출을 한다는 것은 이제부터 을을 해보겠다는 것과 같다. 신삥으로서 출발한다는 것 자체가 을이 돼보겠다는 얘기다.
사회진출은 간단히 말해 ‘세상의 밥그릇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다. 때문에 신삥을 환영해주는 세상은 없는 것이 정상이고 당연하다. 우리나라가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일자리가 마구 늘어나고 기회가 더 많아지던 시절, 신삥에 대한 대우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이리저리 빠져 나갈 공간이 있고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겉포장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경제가 정체해버리자 신삥을 환영해주는 곳은 눈을 씻고봐도 찾기 어려워졌다. ‘다른 곳으로 갔으면’ 하는 심리만 팽배한게 오늘의 현실이다.
예전에는 취업에 있어 본인의 운세가 최악만 아니면 그런대로 그럭저럭 사회진출을 하는데 큰 문제나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전혀 그렇지 않다, 본인의 운이 최절정이 아니라면 대기업이나 공직 같은 곳에 쉽사리 발을 들여놓기 어렵다. 몇 년 사이 상담해오면서 괜찮은 직장에 들어간 청년 중에 운 흐름이 별로인 경우는 아예 본 적이 없다.
운세가 절정이어야만 그런대로 무난한 사회진출이 된다는 것은 사회 전체적인 효용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된다. 기업이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은 결국 써먹기 위함인데, 취업 후 10년만 지나도 그 젊은이들은 운세가 기울어가기 때문이다. 곧 생산성이 떨어진다. 정작 뽑아먹으려 할 때 나올 것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사람을 가리고 뽑을 때는 ‘아침의 떠오르는 해’를 선택해야 하는 법인데, 워낙 가려 뽑다 보니 본의 아니게 ‘서산 너머 지는 해’를 선택하게 된다. 최근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친구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해지기 직전 광휘로운 노을’의 운세에 해당한다.
필자는 내 또래 일반 사람들에 비해 청년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그들로부터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 바로 세상이 무섭다는 얘기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이 세상은 신삥을 환영해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야박한 대우를 받더라도 그들이 치고 들어가 엉겨 붙는 것이라는 얘기를 자주 해준다.
세상이 발전하고 시장이 커갈 때에는 밥그릇 싸움으로 인한 압력을 미처 잘 느끼지 못했다.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빽빽하게 좁혀진 세상에서는 어딜 가도 반겨주지 않는다. 박대하기 마련이다.
20대 중반까지 또는 30대 초반까지 대학이나 대학원을 다니면서 ‘갑’만 하던 친구들이 갑자기 ‘을’ 노릇을 하자니 세상이 당연히 무섭게만 여겨질 것이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그나마 원활하던 아르바이트 자리도 최저임금 문제로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고 투정하는 젊은이의 얘기도 들었다.
뜻을 품고 동대문에 있는 작은 의류업체에 들어갔던 한 젊은이는 큰 충격을 받고 한 달 만에 그만 뒀다고 한다. 사람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투명한 공기처럼 대했다는 얘기였다. ‘이불 밖은 무서워’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오늘의 결론, 청년들에게 해주고픈 얘기는 다음과 같다. 세상은 신삥을 환영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환영해주지 않더라도 염치 불구하고 모르는 척 하면서 뻔뻔하게 바닥에 뛰어드는 배짱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김태규의 희희락락호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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