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경쟁 속 IMF키즈 여성의 생애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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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경의 인문 책방…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여성의 삶에 대한 보고서 혹은 페미니스트 리얼리즘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8-01-28 12:35:43

2녀 1남에서 둘째 딸. 1982년생 여성 중 가장 흔한 이름이 ‘김지영’이라고 한다.

이 책은 IMF 이후 성인이 되어 생존경쟁에 몰린 이른바 ‘IMF 키즈 여성’의 삶을 다큐처럼 다룬 소설이다.

소설이라 하기에는 보고서 같고, 소설 특유의 내면묘사보다는 평전처럼 개인사의 추적에 초점을 맞춘다. 어쩌면 과도한 자의식의 표출보다 다큐 같은 담담한 서술이 이 소설에 대해 많은 호응을 끌어냈는지 모른다.

1982년생 중 가장 많은 동명인을 가진 김지영은 일종의 IMF 키즈 여성의 대명사로 활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역으로 김지영이 중산층 정상가족 모델을 기반으로 IMF 키즈 여성을 과잉대표하지 않았나 하는 우려 역시 있다. 그럼에도 어쨌든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을 명확하다.

IMF 외환위기 후 사회 전반을 휘감은 생존경쟁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택시를 타고 첫 손님이 여성인 것에 짜증을 느낀다는 운전사, 캠퍼스 커플이었다는 이유로 동료 남성에게는 ‘씹다 버린 껌’으로 묘사되는 현실, 고용 시 남성을 선호한다는 기업문화 모두가 김지영에게는 완고한 벽처럼 다가온다. 결혼 후에는 다시 출산과 육아의 장벽이 그녀에게 희생을 요구한다.

결혼 후 출산 계획이 없던 김지영에게 시댁의 의문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안 생길 때 시부모는 자신의 아들보다는 며느리의 몸을 먼저 의심하곤 한다. 주변의 의혹과 요구가 빗발치자 김지영 부부의 대화에도 금이 갔다.

남편은 갑자기 갈등 회피의 대안으로 출산을 원한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요컨대 남편은 아이가 생길 때 잃는 것만큼이나 얻는 것이 있음에 주목하자고 제안했다. 잃는 것과 얻는 것의 손익분기점은 어느 지점일까. 임신과정과 출산 후 경력단절의 부담을 느끼는 김지영은 과연 출산이 남편에게 가져오는 ‘잃음’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IMF 키즈 여성 혹은 무임승차자

세간의 논쟁에서 가장 흔하게 활용되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무임승차’라는 표현일 것이다. 아무 노력도 없이 날로 먹으려는 사람, 공정한 경쟁에서 생존하기보다 편법을 쓰는 사람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가족 내에서는 남동생에게 밀려 항상 부차화됐던 김지영은 임신을 함과 동시에 자신이 무임승차자로 간주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찬 출퇴근 지하철에서는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존재로, 회사 내에서는 남들의 배려를 강제하는 존재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출산 후 아이를 데리고 커피를 마시며 산책을 하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남편이 힘들게 번 돈으로 사치를 일삼는 생각 없는 여성으로 묘사돼 충격을 받는다. 애초에 출산 자체를 원하지 않던 김지영이었다.

원치 않는 선택을 시댁의 강요와 남편과의 합의하에 결정한 것이었고, 그 합의에 따라 육아를 전담했을 뿐이었다. 육아와 가사노동 자체에서 자기 시간을 잃고, 자신의 직업과 경력을 잃은 김지영이 타인의 눈에 남편의 노동에 무임승차하는 것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성별화된 사회에서 그려내는 페미니스트 리얼리즘

근대소설의 출발점은 내면 혹은 자의식의 발견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근대의 소설들은 자의식의 세계를 장황하고 섬세하게 묘사하며, 내면세계의 변화를 사건전개와 연계시켜 풀어내곤 한다. 반면, 이 소설에서 특징적인 점은 내면묘사가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면묘사 대신 등장한 흥미로운 부분은 사실관계 인용을 위해 주석으로 실제 신문기사와 논문을 인용했다는 점이다. 해당 인용 부분들을 예로 들어보자. 2005년 기준 국내 50개 대기업에서 약 44%의 면접관들이 고용 시 남성을 선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머지는 성별에 불문하고 뽑겠다는 것인데, 이미 44%가 남성으로 채워지면, 나머지 56%에서 성별 간 대등한 경쟁을 할 경우에도 남성은 대략 70% 이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비슷한 방식의 다양한 인용들이 1980년대 남아 비율 증가, 경력단절 여성의 노동 문제 등과 관련해서도 흥미롭게 이루어진다.

이른바 ‘팩트’가 강조되는 세상에서 작가는 사람들이 보지 않으려 하는 새로운 팩트에 주목하고 싶었을 것이다. 기존의 리얼리즘 소설들은 팩트에서 자기주장의 근거를 가져오려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기반한 세계관과 미적인 내면묘사를 통해 소설적 주제의 호소력을 가져오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82년생 김지영>의 팩트 인용방식이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세계관과 그 관성이 깨져나간 자리를 채우는 인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