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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 자리 수는 8000개 정도 된다. 그 중 정권가 운명을 같이 하는 자리는 3000개 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우리나라 대통령이 지명하는 공직자 수는 무려 3만개를 웃돈다고 한다. 갈수록 늘어나는 각종 위원회 등으로 숫자가 더 늘어나는 추세니 직·간접적으로 국가 예산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민간 기업 인사 혹은 순수 여행객을 제외하고 해외에 나오는 출장자들의 상당 수가 비용을 국가 예산에 의존한다. 예산의 꼭지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눈먼 돈이 여기저기 많이 굴러다닌다는 반증이다.
시중에 떠돌아 다니는 이야기지만 공무원도 종류가 다양하다. 이른바 ‘늘공(늘 공무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권이 바뀌면 나타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도 있다. 요즘에는 민간인 신분이면서 가끔 ‘유사 공무원’ 행세를 하는 ‘유공’도 적잖게 눈에 띈다.
“어공은 짧고 늘공은 길다”는 말도 있다. 일반적으로 어공은 정권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고 비교적 개혁적인 마인드를 갖췄지만 전문성이 부족하다. 반면 늘공은 실무에는 밝지만 원칙·규정에만 얽매여 책임질 일은 회피한다. 그것이 장수의 지름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공이 칼자루를 휘두르다 보니 늘공은 소신없이 이들의 치다꺼리에만 열중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책의 일관성은커녕 모든 것이 단절되고 국가 백년대계는 공염불이 되기 일쑤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기용하는 어공들은 전문성이 검증되고 현장 실무 경험이 풍부한 인사들이 주를 이룬다. 우리는 진보 혹은 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전문성보다는 코드나 이념이 맞는 인사로 채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정치인·폴리페서(Polifessor)·시민단체 등에서 대거 차출된다. 결과는 불보듯 정책은 공전(空轉)하고 부질없는 실험만 계속된다.
얼마 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대통령 주재로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이라는 정부 경제부처 보고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민간 기업 참석자들은 “국내 스타트업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선 정부가 가만히 놔두는 게 도와주는 것이다”고 못박았다. 각 부처 장관들이 조율되지도 않은 혁신성정 대책을 중구난방식으로 마구 쏟아내자 이에 대한 기업들의 불만이 노골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정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취지는 좋았으나 어설픈 정부가 주도하면서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정부가 할 일은 민간이 하는 일들이 활력을 받을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자들보다도 가볍고 빠르게 뛸 수 있소록 생태계를 만드는데 있다.
“과연 1인당 소득 3만 달러 국가수준이 맞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급기야 지난달 30일에는 대통령 주재 장·차관 워크샵가지 열렸다. 집권 2년차에 들어서면서 고위 공직자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교육지책으로 보인다. 최근 잇따른 정책 혼선과 안전사고가 지지율 하락으로 연결되면서 일종의 위기감이 여권에 감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다주택 소유 장관들 면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서슬퍼런 대책들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는 판에 이들의 도덕성이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적폐청산이라는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정권치고는 도무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혁신을 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도층에 잇는 인사들의 자질과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 청문회를 거쳐서 임명되는 공무원이 600명이나 되지만 여야 공방이나 잡음은 거의 없다. 우리는 고작 30여명의 고위직들이 청문회를 거쳐서 임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석연찮은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하자가 있는 사람은 어공의 꿈을 아예 버려야 하는데 고도성장의 산물이라고 양보하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지구촌에서 소위 잘나가는 나라의 공무원을 보면 분명히 우리와 다르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일부 힘 있는 공무원·정치인들은 특활비를 주무르듯 하고 있다. 이어 최근 베일이 벗겨지고 있는 성추행 사건들을 보고 있자면 과연 21세기 어느 나라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부끄럽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은 것이나 진배없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공직사회, 더 나아가 공공부문의 ‘딥 체인지(Deep Change·근본적인 변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들에게 카멜레온과 같은 변신을 더 이상 허용해선 안 된다. 오죽 답답하면 기업들이 정부에게 가만히 있어 달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새겨야 한다.
아직도 산업화 시대의 망상에 사로잡혀 정부가 주도하려 한다면 경쟁에서는 백전백패하기 마련이다. 부질없는 조직만 양산하고 쓸데없는 곳에 국가 예산을 주머니 쌈짓돈처럼 쓰는 행위는 발본색원해야 한다.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많은 나라에 살아보고 다녀봤지만 우리만큼 공공부문이 비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업종별 협회 혹은 단체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얼기설기 얽혀있다. 어떤 업종 내 단체는 40~50개나 된다. 대부분 자체 회비로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국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단체의 수장에 공무원 출신 관피아들을 모시려고 안간힘이다. 한푼이라도 더 예산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병폐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40대 중·후반이면 고위공무원이 되고 50대 초·중반이면 산하 단체의 수장으로 나서 10년 남짓 연명한다.
소위 말하는 자리 숨통 터주기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전문성은 떨어지고 충성심은 실종된다.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춰져도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안전사고·도덕적해이 등이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이 적폐를 발본색원하지 않으면 공무원은 물론이고 국가 경쟁력 제고는 요원하다. 글로벌 경쟁에서 왜 우리 순위가 항상 뒷전에 머무르고 있는 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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