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원 
청주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화해무드가 전개되면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른 것은 외견상 반가운 일 같지만 예의 조심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남북관계를 둘러싼 주요 현안들이 한반도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변 4강국인 미·러·중·일의 첨예한 국익에 얽혀져 있어 잘못 건드리면 폭발할 수 있는 들뜬 화약고로 변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할 ‘극단적 흥분’과 ‘국익의 배수진’ 상황이 오버랩 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평창올림픽 개막과 함께 동생이자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인 김여정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초청을 했다. 지난 6·25 한국전쟁 이후 북한 정권의 김씨 일가가 남한을 방문한 것부터가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다 가족이 특사자격의 신분으로 친서는 물론 구두로 초청을 하는 등의 형식을 갖춘 것까지 예상치 못한 파격적 상황이 연출됐다.
엊그제만 해도 전쟁을 운운하던 김정은 위원장이 이토록 각별한 예의를 갖추면서 정상회담 카드를 들고 나온 것에 대해 우리는 반갑게 받아들 처지가 아니다. 이를 의식한 듯 문 대통령도 수락의사에 준한 긍정적 답변은 했으나 회담 분위기 및 여건 조성을 전제해 사실상 공을 다시 북한으로 넘겼다. 하지만 현 정권 일각에서는 이미 6월 15일과 8월 15일이 거론 되는 등 정상회담이 사실상 확정된 것인냥 들뜬 기대감에 차 있어 불안하다.
냉정함을 견지해 본다면 우리는 지금 북한의 지렛대 전략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사실상 그로기 상태다. 안팎으로 체제위기는 물론 극도의 경제난이 겹쳐 있을 뿐만 아니라 최후의 권력 버팀목이라고 할 비밀스런 외화까지 고갈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면초가에 처한 김정은 체제가 유일하게 생존을 위한 사투로 손짓을 할 수 있는 곳은 때마침 들어선 진보정권인 현 문재인 정부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올림픽은 아주 적절한 북한의 생존 줄타기 수단으로 떠올랐다. 국제사회도 올림픽 기간 동안 만큼은 눈감고 용서해 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마식령 스키장행 방북단의 전세기 이용이 미국으로부터 예외인정을 받았고, 만경봉 92호를 이용한 북한 예술단의 방남도 5·24 조치 예외 인정을 받아 들어왔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방문은 한·미간 사전협의를 통해 가능하게 됐고, 최휘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의 방남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뒤집으면서까지 제제면제 카드로 성사됐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이런 분위기를 타 한반도기를 들고 단일팀까지 만들어 올림픽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외교안보적으로 아주 끈끈해진 미국과 일본의 분위기는 소름이 돋을 만큼 여전히 단호하기 그지없다. 현 문재인 정부를 작정하고 무시하고 있으니 놀랍기까지 하다. 예컨대 평창 올림픽 현장에서 그런 상황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사전에 마친 짠듯 평창에서 문 대통령을 기다리게 하면서까지 개막식 리셉션 장에 나타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따로 지각 입장한 뒤 둘 만의 기념사진을 별도로 촬영했다. 외교적 결례를 의도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한 셈이다. 나아가 두 사람은 메인테이블은 물론 문 대통령 환영사가 끝날 때까지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치욕을 추가로 줬다. 펜스 부통령은 또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악수조차 하지 않은 채 철저히 외면했다. 아베는 한 발 더 나아가 문 대통령에게 한·미 군사훈련과 관련해 ‘연기할 단계가 아니다’,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등의 내정간섭에 가까운 훈수로 시건방을 떨었다.
문재인 정부는 미·일의 이 같은 도발적인 외교행보에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과의 과도한 밀착이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평창에서처럼 우리 정부를 공개적으로 불신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보내오던 차였다. 미국은 우리에게 눈앞에서는 동맹국으로 행동하다가 돌아서면 이를 깬다는 불신을 갖고 있다. 일본은 전범국 포승줄을 풀어 준 미국에 더욱더 교태적으로 고개를 조아리며 이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또한 보수여론 일각에서는 대북 비밀송금설이 흘러나와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대북송금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일 뿐만 아니라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해도 그런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는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 될 이유가 미국이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정황들을 보면 미국은 우리를 괘씸죄의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이 틀리지 않는다. 미국 중심의 대북 압박이라는 좌판을 우리가 흔들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읽혀진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우리 쪽에 전향적인 화해무드 태도로 돌변한 것은 자신들의 강력한 압박카드 효과가 있다고 자평하기에 충분하다. 북한의 궁극적 비핵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강한 압박이 필요하다는 미국의 일관된 입장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그것을 반증한다. 우리는 이를 존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실제로 이를 기반으로 북미 간 대화와 평화협정까지 간다면 한반도에 핵이 없는 평화공존이라는 소기의 목적 달성이 가능하다.
남북정상회담이 이 같은 기존의 정세를 감안하지 않고 추진될 경우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 돼 북미 간 대화의 장벽을 높이고 적대적 위기 상황을 조장할 개연성을 높인다. 나아가 미국은 언제든 트럼프 식으로 북한보다 내심 우리를 다루기 위한 전쟁을 벌일 가능성까지 배제하지 못한다. 트럼프식 전쟁론은 외교가에서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 방위적인 경제·군사·외교적 압박을 받아 온 북한은 최후의 후견국이라고 할 중국의 시진핑으로부터도 무역 중단, 석유제한, 기업 철수 등의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공개적으로 대북 압박을 지속하고 있는 과정에서 우리만 섣부른 북한의 화해 제스처에 응해줄 경우 외교적 고립을 우선 각오해야 한다. 여기에 미-중, 미-일 간 막후외교에서 국익을 나눌 경우 우리는 국익을 따질 겨를조차 없는 외톨이가 될 우려가 크다.
남북 당사자 간 대화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항구적 평화통일 기반 조성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국익의 각축장은 늘 그래왔듯이 한반도만 좋은 그림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은 특히 연례적인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올림픽 이후로 연기하는 양보를 해줬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이 그들 주도권이 없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대할 태도는 그래서 뻔하다. 우리가 북핵으로 사지가 꽁꽁 묶이게 되면 미국의 이른바 다스리기 전략으로 5천만 국민의 생명이 볼모가 될 밑그림이 그려진다.
2000년 김대중 정부, 2007년 노무현 정부에 이어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위한 전제조건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비핵화에서 더 나아간 북한의 체제변화를 이끌어 내 평화통일 기반을 닦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국제사회와 함께 하는 사전정지작업이 없는 섣부른 정상회담은 북한 정권의 지속성을 키워 한반도를 강대국들의 이권다툼의 최전선으로 만들 여지를 더 키운다. 우리 국민의 생사가 더 위기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이 남북 모두 정치적 속셈의 권력 방정식으로 이뤄지면 그 불운으로 닥칠 국민적 불행은 실로 치명적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