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신뢰 잃은 정책금융, 변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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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범 기자페이지 + 입력 2018-02-12 00:06:03

“수장만 바뀌었지 달라진 게 없다. 기업 구조조정 선봉장 역할은 커녕 앞서 문제시됐던 잘못만 되풀이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의 한계를 드러낸 전형적인 인사실패다.”

지난 8일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한다고 밝힌 이후 산업은행을 향한 업계 안팎의 목소리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로 부실한 관리·감독과 방만경영 등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은 지 불과 몇 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또 다시 대우건설 매각 과정에서 심각한 관리능력 결함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대우건설이 지난해 7000억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지난 7일 대우건설이 발표한 4분기 실적에는 40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사업장에서 약 3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뒤늦게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예상치 못한 손실에 화들짝 놀란 호반건설은 인수를 포기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문제는 대우건설 매각을 진행하고 있던 산업은행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알아차렸다고 밝힌 점이다. 산업은행 측은 매각 과정에서 해외사업 부실 발생 여부를 몰랐고 대우건설이 실적 발표하기 전날에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고 쳐도 관리부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산업은행의 이러한 부실관리 행태가 비단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우조선해양 부실회계 사태가 손꼽힌다. 산업은행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10조원에 육박하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다.

투입된 비용 절반 이상이 대우조선해양에서 발생했지만 정작 대우조성해양에서는 2013년 이후 2년간 1조5342억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이뤄졌다. 국민혈세나 다름없는 막대한 자금이 지원됐지만 그 과정에서 관리·감독은 전무했다. 단순히 대마불사 논리에 입각한 혈세 퍼주기가 자행된 셈이다.

더욱이 대우건설만 해도 과거 분식회계와 감사인 의견거절 사례가 있었다는 점에서 수장의 방만경영 논란마저 불거져 나오고 있다. 대우건설은 3800억원 상당의 손실을 과소계상한 혐의로 지난 2015년 금융당국으로부터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고, 이듬해에는 회계법인으로부터 분기보고서가 ‘의견거절’ 당하기도 했다. 관리·감독 부실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간 산업은행은 정책금융으로서 국내 산업잘전의 역사에 앞장서왔다. 1954년 처음 설립될 당시 기반산업의 확충을 위한 재정자금에 앞장선 데 이어 수출산업, 중화학공업 등 기간산업 육성, 자동차와 반도체 등 국가 성장기반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자금 공급원 임무까지 도맡았다. 대부분 자금공급원 역할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최근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정책금융 역할이 자금공급원에서 부실기업 구조조정으로 변모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국책은행이 정책금융으로서 역할을 수행해나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국책은행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부실을 떠안을 수 있지만 이는 부실 자회사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이 낳은 2차 문제에 다름아니다. 부실이 커지기 전에 부실기업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만이 국민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이동걸 회장은 과거 박근혜정부 시절 국책은행의 퍼주기식 구조조정과 부실한 관리·감독을 질타한 바 있다. 수십조원에 달할 정도의 대규모 기업부실에도 거액 대출을 해준 국책은행의 무능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그런데 정작 국책은행의 수장이 된 현재 상황에서 본인이 했던 말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곱씹어볼 일이다.

임현범 hby6609@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