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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우리나라를 향한 경제압박 수위를 차츰 높여 가면서 노골적으로 경제 전면전을 표면화 하고 나선 것은 군사력을 동원한 전쟁 못지않은 심각한 국가적 위기 상황이다. 미국은 우리의 경제밥솥이 되는 산업들의 근간을 자국산업 보호라는 미명하에 뿌리째부터 마구 흔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한국경제를 주적으로 삼은 듯 정조준하고 있다는 의지를 가감없이 그리고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어 충격을 넘어 공포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12일 백악관에서 한국을 향해 이른바 ‘호혜세’를 거론하며 ‘무역에 관한한 우리는 동맹국이 아니다’고 포문을 열었다. 하루 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백악관에서 한·미 FTA에 대해 ‘재앙이다’고 못박으면서 ‘완전한 폐기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같은 날 한국GM은 지역경제를 초토화 시키고 한국판 엑소더스의 신호탄이라는 군산 공장을 5월 말까지 전격 폐쇄한다고 밝히고 나서 큰 충격을 주었다. 외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GM을 이용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 이틀 뒤 미 상무부는 한국 철강수출을 사실상 봉쇄하는 수준과 다름없는 고강도 수입규제 방안을 발표해 우리 철강업계가 설명절 연휴에 사실상 철퇴를 맞았다. 정부와 철강업계는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비상태세에 들어갔으나 미국의 강경 대책을 유턴시킬 뾰족한 대응방안을 찾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는 실정이다. 그야말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처지다. 철강업계는 ‘미국 수출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망연자실한 상황에 빠져 있다.
한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FTA 정책과 철강산업 보호 강경책 등이 나오기 하루 이틀 앞서 나온 미국 우선주의 깃발의 상징인 호혜세는 그야말로 강자의 일방주의 논리를 위한 명분이다. 엉뚱하고 말도 안 되지만 약자는 반발하기 힘들다. 미국은 그 어떤 경우에도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깃발을 올린 뒤 그것이 엄포가 아닌 것임을 알리기 위한 행동에 과격하게 나선 것이고, 그 정조준 과녁에 우리가 핵심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양국 국회인준까지 거친 한·미 FTA의 공공연한 원점회귀를 선언한데에서 나아가 그 절차를 노골적으로 밟고 있는 것은 세계 무역질서의 기본 상식을 벗어난 막무가내 행동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별수없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이런 와중에 우리 정부는 대미 관계 신뢰를 깨는 징징 대는식의 변죽만 더욱 열심히 울려대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물론 미 상무부가 자국 철강산업 보호를 위해 백악관에 제출한 무역확장법 232조는 어처구니가 없다. 이는 관 속에 묻힌 사문화된 법이나 다름없는 케케묵은 무기를 꺼내 든 것이라는 점에서 가히 폭거 수준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지난 2001년 이후 약 17년간 시행된 일이 없다. 주목되는 것은 무역확대법 232조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때 만지작거리는 카드라는데 있다.
우리의 철강산업이 미국 안보를 어떤 식으로 위협하고 있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산 철강은 미국 수입국 중 상위에 올라 있다. 그것이 미운 털이라고 솔직히 이야기해 준다면 좋겠지만 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더욱이 철강산업 강국인 일본도 미국에 수출하는 주요 국가지만 왠일인지 첫 번째 방안인 12개 규제 대상국에서 쏙 빠졌다. 규제 대상국에 우리를 포함한 이집트, 베트남까지 포함돼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이 빠진 것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 수출국 1위인 캐나다는 물론 독일과 대만 등도 슬쩍 빠져 있다.
수입규제 방안의 관세 차등도 이해하기 어렵다. 12개 국가에 53%의 관세를 적용하거나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24%를 적용하는 방안의 차이가 두 배를 넘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핀셋으로 꼽은 나라들 중 상당수가 과연 진정으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지 따져볼 일이지만 삼척동자의 상식으로 봐도 그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에도 미국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를 결정한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현 정부 주력산업인 태양광 관련 셀과 모듈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잇달아 취하고 나섰다. 외견상 봐서는 자국산업 보호를 위한 조치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한국제외’ 권고조차 무시하고 봉쇄정책을 강행하는 강수를 띄웠다. ITC는 한국산 세탁기가 미국 산업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트럼프식 강경책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국산 태양광의 봉쇄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이 역시 탈원전 로드맵 정책을 추진 중인 문재인 정부가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전쟁을 빌린 트럼프식 의사표현은 아닌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미국은 한국을 조준한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수치상으로 드러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이달 5일 기준 ‘수입규제 월간 동향’에서 총 수입규제 196건 중 미국이 40건에 달해 가장 많았다. 미국의 한국을 향한 통상압력이 상식을 넘어 지나치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실제로 40건 중 30건이 반덤핑 조사이고 상계관세 및 세이프가드는 8건, 2건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대북외교에 불만을 토로해 온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적으로 파상공세를 더욱 강하게 해올 것으로 예상 된다. 하지만 미국의 이 같은 경제전쟁 포문에 우리 정부가 대응할 선택지는 거의 없다.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해 대응한다고 하지만 글로벌 무역질서를 좌지우지 하는 미국을 상대로 한 전면전이 통할 것이라고는 쉽게 고개를 끄떡일 수 없다. 결국 뚜렷한 대책이 없다.
우리 정부는 손발이 온전히 묶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들이 악전고투하면서 힘들게 일군 글로벌 승전지를 고스란히 빼앗길 운명에 처해 있지만 가슴만 먹먹히 울어대야 할 입장이다. 미국인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세탁기만 해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시장 진출 초기 거의 황무지를 개척해 낸 결과다. 미국인들의 온갖 냉대와 무시를 이겨내고 기적을 창조해 낸 시장이 위협을 받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도 여전히 한·중·일 아시아 3국이 자국의 이익을 심각하게 빼앗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경제전쟁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중국은 미국 못지않은 강경책으로 대응해 생존을 능동적으로 모색 중이다. 일본은 미국의 배려를 받고 있다. 우리만 강공을 펼치지도 못한 채 배려는커녕 중국 못지않은 공격까지 받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 때문에 수출전선에 있는 기업들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 정부는 섣부른 주변 4강국에 대한 외교가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지 냉정한 자세로 받아들여 미국을 상대로 한 정면돌파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최선의 카드는 한-미 간 소원해진 불편한 불신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일환으로 보여주기식 대북관계는 미국의 군사옵션 가능성을 높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사작전보다 무서운 경제전쟁을 선제적으로 맞고 있는 배경이 된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는 지금 북한보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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