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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에 관한 한 동맹은 없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있다. 상대가 매기는 관세만큼 미국도 부과하겠다는 ‘호혜세’ 발언만이 아니라 우리를 직접 겨냥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대단히 나쁜 거래였기에 재앙이나 같다고 말하며 현재 재협상 중이지만 신통치 않으면 아예 폐기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워낙 이례적인 트럼프긴 하지만 우리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 자체가 변해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이제 미국이 보기에 지켜주고 키워줘야 할 아이가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 너도 컸으니 미국에게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일·중을 싸잡아 비난한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일본은 납작 엎드리는 모양새다. 중국은 연일 성토, 우리는 FTA 재협상을 잘 해보겠다는 정도의 중간 자세다.
1990년대부터 달러 패권국이 된 미국은 무역적자에 대해 별반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 무역 적자는 결국 상대방이 만든 물건에 대해 달러를 찍어서 주면 되는 일이니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재 트럼프가 하고 있는 말은 사실상 무역적자에 관한 것이 아니다. 무역적자가 문제라기보다 그로 인해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양극화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에 착안을 하고 있다.
절로 중상주의(重商主義·Mercantilism)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경제성장이란 개념이 없었다. 경제와 무역의 총량은 불변이라는 생각을 하던 시대였다. 이에 시장과 자원을 먼저 차지하는 자가 ‘장땡’이라고 생각 했다. 일종의 ‘제로섬 게임’으로 본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 흐름을 보면 그와 유사한 맥락이 있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은 무역과 자원이 아닌 바로 일자리에 포인트가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 총량은 거의 불변이란 생각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 무역에 있어 최고의 브랜드와 경쟁력을 갖춘 제품이 아니면 사실상 다른 나라 시장에 내다 팔기 어렵다. 특히 구매력이 큰 선진국 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글로벌 무역의 주요 교역품을 살펴보면 쉽게 확인이 된다.
원자재에 해당되는 석유나 가스, 광물 등을 제외하면 비중이 큰 품목들은 대부분 공산품이다. 자동차와 트럭, 휴대폰, 컴퓨터, 전자 제품, 반도체를 포함한 여러 부품, LCD, 텔레비전, 항공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공산품들은 글로벌 수준의 품질과 브랜드가 아니면 수출이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현재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주요 공산품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그야말로 글로벌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달리 말하면 공산품과 관련된 일자리를 놓고 현재 주요 선진국들이 치열한 전쟁을 펼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금융 위기 이후 약 10년이 흐른 오늘에 이르러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글로벌 경기는 여전히 불황의 터널 속에 있다. 특히 일자리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문제는 공산품 교역에 있어 한일중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크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한·일·중 세 나라는 일자리 창출에 진력하는 트럼프 정책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트럼프는 감세 정책과 함께 공산품 수출이 많은 한·일·중 세 나라에 대해 ‘미국 시장에 공산품을 팔고 싶으면 자국에서 만들지 말고 미국 안에서 생산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위함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반대로 한·일·중 자체의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최근 GM 코리아의 군산공장 폐쇄에 대해 트럼프가 즉각 미국으로 돌아온다면서 반기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제로섬 게임이었던 과거의 중상주의적 흐름이 오늘에 이르러 일자리 문제로 또 다시 연출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경제에 있어 중국의 비중이 크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 것은 허수(虛數)로 봐도 무방하다. 중국은 한국 기업들의 임가공을 위한 생산기지의 역할일 뿐 조립 가공된 완제품은 미국이나 유럽으로 수출되는 실정이다.
더불어 중국의 내수 시장 개척은 우리 기업들에 대한 중국의 철통방어 정책으로 인해 엄연한 한계가 있다. 여전히 가장 큰 손 또는 물주는 미국이라 할 수 있다. 무역에 대한 미국의 심한 압력이 우리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사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트럼프가 물러가고 민주당이 집권하면 해소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희망을 가져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안일한 기대는 금물이다. 현재 미국 스스로 너그럽게 베풀어가면서 우두머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무렵 한국의 경제는 그야말로 도약했고 점프했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가 그렇게 비약적인 발전을 성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선진국 대비 소득도 적었고 따라서 인건비가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현재 한국 이미 인건비가 저렴하지 않다. 평균 소득 면에서도 이웃 일본과도 별 차이가 없는 선진국 경제가 됐다. 자동차 산업 같은 경우 임금이 독일이나 일본보다 높다.
하지만 여전히 변함이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한국 경제는 죽으나 사나 수출 경제라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전체 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7%, 중국은 19% 수준이지만 한국의 경우 무려 44%나 된다.
좋게 말하면 물건을 내다 팔아서 먹고 사는 나라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수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나라다. 제조업 기반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고 또 그를 통해 필요한 것을 수입하는 구조가 과거 수십 년 동안 굳어져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가 우리의 생명선이나 마찬가지인 무역에 있어 동맹은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FTA 협상이 시원치 않으면 때려치워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사실 한·일·중 이 세 나라는 미국이 키운 장학생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냉전 시절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시장을 열어줌으로써 키워낸 모범생들이기도 하다. 다만 이젠 너무 커버렸다. 심지어 중국 같은 경우 미국에게 패권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 미국은 한·일·중 세 나라에 대해 더 이상 장학생 대우를 하지 않을 방침이다, 받아낼 것은 최대한 다 받아내겠다는 미국이다. 이는 비단 이단아 트럼프의 정치 쇼에 그치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변하고 있다.
바닷가로 들어오던 밀물이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글로벌 대양(大洋)의 거대한 해류가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해류가 바뀌면 다시 이전처럼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다시 돌아오기까지 장구한 시간이 걸릴 것이며 또는 영원히 되돌려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이 급속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인 미국의 우호적인 무역정책이 소멸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두고두고 우리의 성장과 발전에 역(逆)작용을 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돌이켜보면 물 들어올 때 우리는 배를 띄웠던 셈이다. 그런데 이제 그 밀물이 빠져나가고 있으니 그간의 세월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은 전혀 다른 환경을 맞이해 새로운 길, 가보지 않은 길을 탐색하고 찾아야 할 것이다. 올 하반기 그리고 내년이면 우리 경제에 한 차례 큰 충격이 찾아들 공산이 크다고 본다. 아시아 일대가 진앙(震央)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24년이 한국 국운(國運)의 입춘 바닥이 된다. 긴 안목에서, 360년이란 긴 시간을 놓고 순환하는 흐름에 있어 국운 제3기가 시작된다.
2024년부터 2084년까지 이어지는 60년에 걸친 국운 제3기는 그야말로 가장 큰 도전과 응전의 때가 된다. 일단 스타트는 무척이나 험난하겠지만 한 편으론 그간 우리가 축적한 힘과 경험, 지혜 또한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기에 해볼 만 하다고 본다.
이제 우리 한국도 어린 아이나 학생이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 본격 경쟁을 해야 하는 청년이 됐다. 세상은 으레 사회에 진출하고자 하는 청년을 환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청년은 그 어려움을 헤치고 갈 역량이 있기에 청년인 것이다.
오늘의 글은 무술년 한 해를 힘차게 출발해보자는 의미에서 썼다. 독자들 모두 복 많이 받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김태규의 희희락락호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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