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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년 5월 17일 요동성을 함락시키고 6월 2일 항복한 백암성까지 접수한 당 태종은 파죽지세로 진군해 6월 20일 안시성에 도착했다.
백암성주의 항복에 대해 ‘태백일사’에 “성주 손대음은 속여서 사신을 보내 항복을 청하게 했는데, 실은 틈을 엿보아 반격하고자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관련 다른 기록이 없어 그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후의 다른 기록들이 그야말로 춘추필법에 의해 마구 씌어진 것을 보면 백암성주 손대음이 작전상 항복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참고로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한 역사 기록의 원칙은 존화양이(尊華攘夷·중화를 높이고 이족은 깎아내린다), 상내약외(詳內略外·중국역사는 상세히 외국역사는 간단히), 위국휘치(爲國諱恥·나라를 위해 중국의 수치를 숨긴다) 등 3가지다.
당 태종이 항복한 백암성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80세 이상 노인에게는 비단을 내려주었으며, 다른 성에서 온 병사들에게는 양식과 무기를 주어 원하는 곳으로 가게 했다는 기록은 이세민이 천하의 성군이었음을 묘사한 문구다.
과연 이런 상황이 서로가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가능했을지 의심스럽다. 그런데 이 정도의 왜곡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로 앞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왜곡 투성이의 기록들이 나타난다.
백암성의 항복을 받은 후 당 태종은 이세적 장군에게 다음으로 진군할 성에 대해 설명했다. 당 태종은 “내가 들으니 안시성은 성이 험하고 병사가 강할 뿐만 아니라 그 성주의 재주와 용맹 역시 막리지의 난에도 성을 지키고 항복하지 않았을 정도이다”며 “당시 막리지가 그를 공격했다가 굴복시킬 수 없었기에 안시성을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건안성은 병력이 약한데다가 군량미도 적은 관계로 기습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그러니 그대는 먼저 건안성을 공격하라”며 “성이 함락되면 안시성은 이미 우리 수중에 들어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이것이 병법에서 말하는 ‘성 가운데 공격해서는 안 될 성도 있다’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이세적이 “건안성은 남쪽에 있고 안시성은 북쪽에 있는데, 우리의 군량은 전부 요동에 있습니다”며 “안시성을 지나 건안성을 공격하다가 만약 고구리에서 우리의 군량수송로를 차단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기 때문에 먼저 안시성을 공격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고 말했다. 또 “안시성이 함락되면 당당하게 북을 울리며 행군해 건안성을 쉽게 빼앗을 수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당 태종은 “내가 그대를 장군으로 삼았으니, 어찌 그대의 계책을 쓰지 않겠느냐? 부디 나의 일을 그르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상고사’에는 “안시성은 곧 ‘아리티’ 혹은 환도성(丸都城) 혹은 북평양이라 일컬었는데 태조왕이 일찍이 서부 방면을 경영하기 위해 설치한 성이다. 발기(發岐)의 난에 이곳을 지나에게 빼앗겼다가 고국양왕이 이를 회복한 이래 해(海)와 육지의 요충이라 하여 성을 더 높이 쌓고 정병을 배치하고 성 안에 항상 수십 만석의 양식을 쌓아두었다. 공격하기 어렵고 함락시킬 수 없는 요새로 일컬어온 지 오래였다”고 기술돼 있다.
발기는 동복형인 고국천왕이 후계 없이 붕어했음에도 형수 우황후의 농간으로 인해 자신이 황위에 오르지 못하고 우황후와 연인 사이였던 서출 이복동생 산상왕이 등극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공손탁(公孫度)에게 병력지원을 요청했으나 공손탁은 발기를 도와주는 척하다가 오히려 고구리의 서쪽 땅을 차지해버린다. 이후 고구리는 고국양왕 때에 이르러서야 이를 되찾게 된다.
‘조선상고사’에서 안시성은 곧 환도성이라 했는데, 현재 식민사학계가 비정하는 환도성은 길림성 집안이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 관구검기공비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월 5일 요택을 지나 10일 요수를 건너 17일 요동성을 함락시킨 당 태종이 불과 한 달 만에 수천 리나 떨어진 길림성 집안에 나타났다는 말인데 과연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했을까. 즉 한마디로 집안은 고구려의 환)성이 절대로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사태를 관망하던 연개소문은 북부욕살 고연수와 남부욕살 고혜진으로 하여금 고구리와 말갈의 15만 군사를 거느리고 안시성을 구원하도록 했다.
15만 지원군이 왔다는 소식에 당 태종은 신하들에게 “지금 고연수에게는 다음 세 가지 전략이 있다. 첫째, 안시성과 연결되는 보루를 쌓고, 높은 산의 험한 지세에 의지해 성 안에 있는 식량을 먹어가며 말갈 병사들을 풀어 우리의 가축을 약탈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공격한다 해도 빨리 함락시킬 수 없고, 되돌아가려 해도 늪지에 가로막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군사들은 가만히 앉아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되니 이것이 상책이다.
둘째, 성 안의 무리를 이끌고 숨어버리는 것이 중책이다. 셋째, 자신의 지혜와 재능을 모르고 우리와 대적하는 것이 바로 하책이다. 그대들은 두고 보라. 그는 반드시 하책을 가지고 나올 것이니, 그들을 사로잡는 작전이 내 눈 앞에서 벌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만약 고구리가 지구전을 편다면 당나라 군대가 무척 괴로울 것이라는 스스로의 치명적인 약점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한편 고구리 진영에서는 나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대로 벼슬의 고정의가 고연수에게 “당태종은 안으로는 여러 영웅들을 쳐서 없애고, 밖으로는 융적(戎狄)들을 굴복시켜 혼자 힘으로 서서 황제가 되었으니, 이는 세상을 다스리라는 하늘의 명을 받은 인재이다. 그런 그가 사방의 군사를 이끌고 왔으므로 대적할 수가 없다.
유일한 계책은 병사를 정돈해 싸우지 않고 여러 날을 두고 지구전을 펴다가, 기습병을 보내 그들의 군량수송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저들은 군량이 떨어지면 싸우려고 해도 싸울 수 없고,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길이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야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고연수는 지구전을 펴며 군량수송로를 차단하는 작전으로 임하라는 고정의의 충고를 듣지 않고 군대를 거느리고 안시성 밖 40리까지 나아갔다. 당 태종은 고연수가 주저하면서 나오지 않을까 염려해 대장군 아사나사이(阿史那社尒)에게 돌궐의 기병 1천 명을 이끌고 그를 유인하라고 명령했다.
첫 교전에서 당나라 군사들이 거짓으로 패주하는 척 하자 고연수는 “다루기가 쉽구나.”라고 말하고는 앞 다투어 기세를 타고 안시성 동남방 8리 지점에 이르러 산에 의지해 진을 쳤다.
당 태종이 여러 장수들에게 이에 대한 대응책을 물으니 장손무기가 “적과 싸우려고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군사들의 마음가짐을 살펴야 한다고 합니다. 저희 군사들은 고구리 군사가 왔다는 말에 모두 칼을 뽑아 들고 깃발을 달면서 얼굴에 희색이 만발하므로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또한 폐하께서는 면류관을 벗어놓고 직접 전쟁터에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승리를 거듭한 이유는 폐하의 뛰어난 전술과 지략아래 모든 장수들이 성공을 이룬 것뿐입니다. 오늘도 폐하께서 직접 지휘하시기 바랍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당 태종은 웃으며 “공들이 이 일을 내게 사양하니, 내가 공들을 위해 방법을 구상하겠노라”고 말했다. 이어 장손무기 등과 함께 수백 명의 기병을 이끌고 고지에 올라 산천의 형세 중 군사를 숨길 수 있는 곳과 병력의 출입이 가능한 곳을 정찰했다. 그러다가 고구리·말갈 연합군의 40리에 달하는 진영을 보고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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