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운동, 전면적 도덕재무장 확대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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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비전 가지지 못한 채 무너지고 좌절 반복하는 한국 젊은이들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18-02-24 22:37:12

조지오웰이 1945년 내놓은 ‘동물농장’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정치 풍자소설 백미로 꼽힌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통찰력은 바로 ‘왜곡된 평등’이다. 러시아의 근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농장의 동물들은 인간의 수탈을 견디지 못해 혁명을 일으켜 착취가 없는 이상사회를 건설하려고 한다. 하지만 혁명 이전보다 더 심각한 공포사회로 변질한다. 새롭게 권력을 장악한 돼지의 타락 때문이다.

사회는 도덕적으로 악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돼있고 악당들이 착취하는 방식은 예나지금이나 진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자들은 이에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한다. 암울한 결말을 맺은 채 소설은 끝나지만 이러한 후진구조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또 다른 돼지계급들이 교묘하게 포장해 가면을 들이대고 있다.

할리우드 아카데미 영화 시상식에서 시작된 이른바 ‘미투(Me Too)’ 운동이 걷잡을 수 없이 글로벌하게 확산되고 있다. 성추행·성폭력이 미국이라는 선진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지구촌 전역에 만연해 있는 숨은 비리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여지없이 한국에도 불똥이 튀었다. 그러나 그 정도를 비교해보면 우리만큼 졸렬하고 심각한 나라도 지구상에 없을 듯하다. 폭이 넓고 골이 깊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 50여년 세월동안 산업화, 민주화라는 미명 하에 수면 아래 감춰진 것들이 이제야 터져나오는 것이다.

갑질로 인한 우리 사회의 상처가 곪아터져 수술대에 오르지 않으면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더 많은 비리가 들불처럼 번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로 인해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도 수두룩할 것으로 보인다.

평창과 강릉에서는 동계올림픽으로 국가의 이미지가 올라가고 있다. 갈고 닦은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태극전사들의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면서 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적폐청산의 칼날이 지난 정권을 겨냥하면서 연일 바람 잘 날이 없다.

이에 대해 찬성하는 여론도 있지만 반대하는 부류도 만만찮다. 올림픽 이후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 와중에 연일 폭로되고 있는 내로라하는 저명인사들의 감질 비리는 차마 눈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다.

이런 적폐청산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이보다 먼저 터진 채용비리 역시 알면서도 쉬쉬해온 또 다른 대표적 적폐다. 차제에 미투운동이 우리 사회 전체의 환부를 도려내는 운동으로 확대돼야 한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고갈되고 잇는 사회적 자본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도 흘려보낼 수 없는 이슈다.

갑질문화 근절은 우리 미래를 담보하는 신(新)성장 동력

왜 우리가 글로벌 혁신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나. 원인과 해법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이 있기는 하지만 뿌리 깊은 문제는 바로 갑질문화다. 그리고 이에 대해 동조하거나 오히려 역이용하여 보신(保身)이나 출세의 기회로 활용하는 무리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 상층부에 광범위하게 깔려있다.

이들이 국가 경쟁력을 후퇴시키는 이 시대의 1호 적폐청산 대상이다. 창업이나 일자리 창출, 글로벌 경쟁에서 가장 후미에 자리하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이것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의 경우도 소위 ‘꼰대’라고 불리는 비리와 적폐로 얼룩진 기성세대들과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우친 적이 있었다. 결국 꼰대들의 통렬한 반성으로 화합의 길이 모색돼 국가의 재건을 위해 힘을 모아나가고 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터져 나오고 있는 정치권·법조계·문화연예계·대학 등의 성(性) 관련 감질 비행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게 박힌 한국병(病)이다. 최근 불거져 나온 20~30대의 분노 표출은 이미 우리 사회가 갈 때까지 갔다는 반증이나 매한가지다.

그들에게 필요한 현재의 일자리는 고사하고 장래에도 크게 나아질 것이 없다는 비관에서 기인한다. 혁신의 본질은 미래 세대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는 적폐청산의 대상에 있는 무리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적폐를 숨기고 군림하거나 호위호가하고 있는 그들이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상 더 큰 세대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투운동을 갑질문화 청산을 위한 도덕 재무장 국민적 운동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실로 국가의 명운이 걸린 과업이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가 이룩한 성취를 충분히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유지·발전시켜 나가는 미래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에 그치지 않는다. 누구를 탓하고 벌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감질이 근절될 수 있는 사회문화와 풍토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냄비근성으로 한 때의 해프닝으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꼼수를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폭로가 나와야 하며 자리보전이 불안한 인사는 바로 내려와야 한다.

그동안 우리 내부의 문제에 대해 너무 관대하지는 않았는지, 바깥세상이 돌아가는 것과 철저하게 단절하고 살아오지 않았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외부 세계와의 소통으로 먹고 사는 우리가 남들과는 완전히 딴판의 동물농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미래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결국 남은 방법은 포기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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