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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군사·외교 등에서 세계의 질서자를 자임해 온 미국이 자국 중심의 글로벌 경제질서 재편을 위해 강력한 포문을 들고 나온 것은 절대 리더의 유아독존 행보라는 점에서 걱정을 넘어 충격이다. 세계 경제의 1/4을 책임지고 있는 미국이 현대판 글로벌 쇄국정책을 벌이는 것은 자유무역의 확대를 기반으로 성장을 구가해 온 세계경제의 판을 온전히 깨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산업 보호를 위한 행보는 집권 이후 지금까지 계속돼 온 사안이었다는 점에서 일견 놀랄 일이 없어 보이지지만 상황이 정말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각각 25%와 10%의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행동으로 봤을 때 작은 시작일 뿐이다. 한국은 특히 이번에 우려됐던 차별적 초고율 관세에서 비켜갔다고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앞서 트럼프의 신보호무역주의 명분에 이른바 ‘호혜세’(reciprocal tax)가 내걸렸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국은 호혜세를 전가의 보도로 전면에 내걸고 미국시장 사수에 나설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호혜는 상호 특별한 이익을 주고받는 것이라는 점에서 공정하고 평등한 무역질서를 전제로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금의 글로벌 무역질서가 미국에게만 불이익이 돌아가는 불공평한 시스템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 사고는 고집불통이라고 할 정도로 경직돼 있다.
지금까지 미국은 세계 경제를 이끄는 강력한 엔진을 갖고 견인차 역할을 해 오면서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자신들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글로벌 경제의 판을 키워 세계의 모든 나라가 좋은 ‘선순환의 질서’ 앞에 서기를 자임해 온 미국이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기꺼이 받아들여 오기도 했다. 아니 최소한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적자행보에 걱정을 해줬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것이 미국의 탐욕으로 빚어진 것이라는 비판이 빈번히 오르내릴 것이다. 기축통화국이라는 막강한 금융황제 지위와 핵클럽 좌장을 기반으로 한 군사 초강대국의 입지가 미국의 막대한 정부적자 원인의 핵심인 탓이다. 미국은 외견상 적자재정을 줄여야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긴축을 해서도 절대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물론 글로벌 군림자로 남아있기 위해서다.
미국의 독점적 지위를 위해 달러화는 반드시 전 세계에서 활발히 유통되거나 세계의 모든 나라 곳간에 현금이나 채권 등으로 저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축통화 권좌의 특성상 미국은 채권(국채, 빚)을 지속적으로 발행하고 달러(국가신용, 빚)를 계속 찍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금태환이 사라진 상황에서 미국은 종이쪽지로 맞바꾼 전 세계의 부를 향유해 왔다는 점이다. 군사대국의 지위도 가짜가치인 종이로 이뤄진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 미국은 사실상 무제한 재정적자국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
나아가 금융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에 확산된 것은 글로벌 거품 경제를 무한히 키워가고 있다. 이는 미래에 닥칠 가장 위협적인 반시장의 괴물을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20~30년이라는 근 미래에 위험하기 짝이 없는 달러 및 미국 국채 중심의 거품경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셈이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대부분 나라가 가치를 전혀 보장하지 않는 이 같은 종이로 된 부의 화려한 거탑 속에서 풍요를 누려 오기는 했다. 미국과 모든 나라들은 그런 점에서 주범과 공범 관계이기는 하다.
이에 미국은 그동안 전 세계의 나라들에 가급적 관세 장벽을 허물거나 낮추고 무역에 관한한 손해를 봐 온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미국을 상대로 돈맥을 캐는 무역거래를 하면서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줄어든 것 또한 일견 사실이다. 그런데 금융황제의 지위로 전 세계 자본시장에서 돈줄을 심어 온 미국이 정작 미국경제의 심장역할을 해 온 제조업 경쟁력에서는 밀려 안방시장의 금고를 내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은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위험한 운전대를 계속 잡고 있어야 할 운명이다. 미국이 이를 포기하면 전 세계의 풍요는 하루아침에 날아가 극심한 가난으로 항진하고 단기간 내 수억명이 아사에 빠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금융 조종간을 놓지 않겠지만 또 하나의 글로벌 경제 축인 제조업 운전대에서는 내려 올 것이라고 선언을 했다. 미국만을 위한, 미국인만을 위한 운전을 하겠다는 것이 광기에 가까운 트럼프의 신보호무역 정신이다.
미국은 세계를 상대로 군사적 제압은 물론 경제적 제압도 언제든 할 수 있다. 한 쪽 손으로는 여전히 경쟁력이 강한 미국의 제조업을 기반으로 세계의 기관차 역할을 하면서 또 한 쪽 손으로는 금융 양수기를 동원해 언제든 전 세계의 부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권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심장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그 책임의 일단에 미국 또한 있다는 것을 애써 감추면 안 된다. 제조업에서 호혜세 압박 명분은 미국의 금융장악력을 감안하면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작은 떡조차 혼자 먹겠다는 욕심에 불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이 좋다’ ‘이긴다’ 등의 호전적인 말을 내뱉으면서 철강 이외에도 고율관세 정책을 이어나갈 것임을 선언해 글로벌 선전포고를 한 상황이다. 많은 나라들은 철강과 알루미늄의 고율관세를 스타트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신보호무역 포효에 걱정을 넘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더욱이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상황인데다 북핵문제까지 맞물려 강력한 맞대응을 하기가 어려운 처지다.
반면 EU는 철강·알루미늄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 3조7000억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관세로 보복 대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의 21기판 관세장성이라며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중국도 합법적인 권리수호를 외치면서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정면 대응 등으로 맞불을 놓을 태세다. 문제는 무역전쟁이 본격화 돼 세계경제질서가 붕괴되면 수출 중심의 우리나라가 입을 타격은 국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치명적인데 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미국을 상대로 우려와 경고를 동시에 보내고 있다. 미국 내 저명학자들도 마치 과거의 대공황 국면으로 몰아넣는 것 같다는 우려를 하고 나섰다. 실제로 미국 내 이른바 ‘잡 킬링’이라는 자충수 효과가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식 관세가 자국내 세금인상 효과로 나타나 원가상승 압박을 받은 기업들이 일자리를 줄일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향후 미국산 제품의 수출경쟁력 저하도 충분히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취약한 집권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군사력 강화는 물론 안방시장 지키지 명분에 더욱 집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은 보-혁 정권 모두 자유무역(FTA) 영토확장에 드라이브를 걸어 왔지만 한 순간에 그 영토가 짓밟힐 상황에 처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기업들에 전가되고 기업들의 손해는 국민 전체로 향한다. 하지만 다시 그 피해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할 것이라는 점을 적시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식 금융자본은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예상이 적지 않다. 무제한 가짜가치를 키우는 첨단 금융기법은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키우는 산업자본의 혈맥이라는 순기능을 벗어나 인간의 탐욕만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미국이 담당하고 있는 세계의 부(富) 25% 상당부분은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종이(화폐)누각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양심이 있다면 글로벌 제조업의 부흥을 위한 자유시장경제의 리더이자 기관차 역할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들 스스로 만든 자유로운 질서이기도 하다. 자유무역의 질서자 역할을 자임해 온 미국이 게을러진 집안 사정 때문에 그 역할을 저버리면 미국이 누리고 있는 종이누각의 글로벌 황제지위도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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