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외면, 마음만 앞선 근로시간단축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기자수첩

스카이데일리 기자수첩

배수람 기자페이지 + 입력 2018-03-16 00:08:45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근로시간 단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난달 28일 국회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지난 13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를 통해 의결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행 68시간인 주당 법정 근로시간은 앞으로 52시간으로 파격적으로 줄어든다. 300인 이상 사업장, 이른바 ‘대기업’ 및 공공기관은 올 7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에 들어간다.

정부는 이번 정책을 통해 국민들에게 ‘저녁 있는 삶’을 제공하고 극심해지는 청년실업률을 해소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한다. 그러나 이번 정책 시행을 두고 중소기업은 우려의 목소리를 표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시간 감축으로 인해 신규 일자리는 12만5000~16만개 정도가 창출되는 반면 기존 근로자들의 월급은 평균 37만7000원이 감소한다.

급여 감소 비율은 대기업보다 중견·중소기업 근로자들이 더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대기업은 7.9% 감소했지만 중견기업(30~299인)과 중소기업(5~29인)은 각각 12.3%, 12.6%나 임금이 삭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인력난이 심한 상황에서 기존 직원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휴식을 종용하는 꼴이니 중소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이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정부는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꾀하고자 하지만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형편은 되레 악화될 수 있다는 거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책이 뒷받침 되지 않는 이상 대기업만을 위한 정책에 그치기 십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제조업체 대표는 “중소기업은 50인 미만 소기업이 90%를 차지한다”며 “근로시간 단축은 꼭 필요하지만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급하게 시행하면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문을 닫음으로써 근로시간을 단축하라는 거나 마찬가지다”고 성토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게 환영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임금 및 처우 등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한다. 채용 공고를 올리면 수백명이 몰리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지원서가 한 장도 없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는 기업도 허다하다.

무작정 회사 불을 끄고 저녁 있는 삶을 찾으라고 하는 건 눈앞에 놓인 현상을 외면한 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시행에 앞서 각종 지원책을 고심하고 있는 만큼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오명을 입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는 혜안이 필요해 보인다.

[배수람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배수람 baeba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