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보단 권위가 먼저라는 금융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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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보단 권위가 먼저라는 금융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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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범 기자페이지 + 입력 2018-03-19 02:00:09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권을 상대로 전방위 옥죄기에 나서고 있다. 그간 감독당국의 노력에도 금융지주사들의 지배구조 개선이 미흡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칼을 뽑아야 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금융당국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살펴보면 금융회사 CEO는 물론 사외이사부터 대주주까지 사실상 금융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 모두를 겨냥하고 있다.

바람직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확립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금융권 안팎에선 금융당국이 감독기관으로서 권위를 세우기 위한 행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금융권을 향한 금융당국의 경고가 먹히지 않자 ‘권위’를 세우기 위해 다분히 감정적인 대응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말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회사 CEO가 연임하는 현상에 대해 비판적 어조를 드러냈다. ‘셀프연임’이라는 표현까지 동원됐다. 특정 금융사를 향한 발언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당시 KB금융지주의 윤종규 회장이 연임에 성공했고, 하나금융지주 김정태 회장이 3연임을 앞둔 시기였다는 점에서 다분히 KB금융과 하나금융을 의식한 발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금융당국의 권위는 이후에도 몇 차례 거론됐다. 지난 1월 금감원은 하나금융에 “특혜대출 등에 대한 검사가 진행 중이니 회장 선출 일정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하나금융이 이를 거절하자 최흥식 전 금감원장은 “그 사람들이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라며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특히 하나금융과 대립각을 세우던 최흥식 전 원장이 지난 12일 하나은행 채용비리 의혹으로 오히려 불명예 퇴진하자 하나금융을 향한 고강도 수사가 뒤따랐다. 금융당국은 최흥식 전 원장의 채용비리 의혹이 하나은행 내부자가 아닌 이상 알기 힘든 정보라는 점에 주목했다. 하나은행 측의 내부폭로가 감독당국 수장의 퇴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최흥식 전 원장이 불명예 퇴진하면서 금융당국의 체면을 구기자 바로 다음날인 13일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어김없이 권위를 언급했다. 이날 최 원장은 “채용비리 개입 의혹을 확실하게 규명해 감독당국의 권위를 세우겠다”고 밝혔다.

최종구 원장의 발언 이후 하나금융과 하나은행을 향한 고강도 검사가 펼쳐진 점은 두말 할 필요없다. 금감원은 이례적으로 부원장보를 단장으로 해 검사총괄반, 내부통제반, IT반 등 총 20여명의 대규모 인력으로 꾸려진 특별검사단을 투입됐다. 금융권 안팎에서 금융당국의 고강도 조사가 보복성 조치나 다름없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는 배경이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조치 때문에 정작 국민들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금융소비자 보호법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 ▲다수 피해자 일괄구제제도 ▲분쟁조정절차 중 소송제기 금지 ▲소액분쟁조정에 법적구속력 부여 등 금융소비자 보호법안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밀려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법 개정안 중 상당수는 이미 선진국에선 도입돼 시행되고 있다. 도입 필요성과 검증 등이 이뤄진 법안들이 대부분인 셈이다. 단적으로 분쟁조정 중 소송제기 금지 법안이 대표적이다.

일부 보험사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를 상대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무차별 소송을 남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험사가 당연히 지급해야 할 보험금임에도 소송을 무기로 소비자에게 겁을 주고 회사가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다. 패소율이 유난히 높은 보험사들은 대부분 이를 남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상황이 이런만큼 당장 금융당국이 외치고 있는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이 진정 국민을 위한 금융개혁의 길인지 단순히 권위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남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권위는 누군가를 윽박질러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자발적 합의에 의해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길 바란다.

임현범 hby6609@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