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넘은 감 바라보며 입맛 다시는 美·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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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기자페이지 + 입력 2018-03-23 09:39:14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유명한 이항복(오성)의 집에는 감나무가 있었다. 감나무의 가지가 이웃집이던 당대 세도가인 권철 대감 댁으로 넘어갔다. 권 대감은 자신의 집에 넘어온 감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열린 감을 가져갔다.

이에 이항복은 권 대감 집에 찾아가 방문의 창호지에 주먹을 내지르고 “이 주먹이 누구의 주먹이냐”고 물었다. 권 대감은 “네 주먹이 아니냐”고 답했다. 이항복은 “그럼 어른 댁에서 따간 우리 집 감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항복에 얽힌 이 설화는 지금의 국제사회에도 적용된다. 대북 관계 개선 성과를 놓고 미국과 일본이 입맛을 다시고 있기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화에 나선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해 미국과 일본은 이를 자신들의 공으로 돌리려는 모양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서로를 비난하며 강경일변도로 대치했다. 신(新)냉전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됐다. 마이크 멀린 전 미국 합참의장은 지난해 12월 31일(현지시간) 미 ABC방송에 출연해 “미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 북한과 핵전쟁에 가까워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분위기는 극적으로 반전됐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수석으로 한 대북특별사절단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 북·미 대화 제안 메시지를 가져왔다. 이때 미국이 감(感)을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에 응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얼마 전까지 비난의 말을 쏟아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일본은 한반도 정세에 감(感)도 잡지 못한 채 바라만 보고 있다. 동시에 자신의 역할을 찾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지난 1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 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 때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해달라고 당부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만나 북미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문제를 언급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남북·북미 대화 분위기 속에서 일본이 소외된다는 ‘재팬 패싱(Japan Passing)’이 거론되고 있다. 일본 지지통신은 19일 아베 총리가 다음 달 중순 미국을 찾아 미·일 정상 간 대북 연대를 확인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22일 일본 정부가 북한에 정상회담 개최 의사를 전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앞서 20일 고노 외무상이 일본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 출석해 북한과 정상회담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이 대화에 나서는 모습을 두고 자신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 주에서 개최된 모금 만찬행사 연설을 통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거론한 뒤 “그들은 (김정은과) 만날 수 없을 것이다”며 “왜냐하면 아무도 (대화의) 테이블을 차리기 위해 내가 한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고 자화자찬했다.

아베 총리는 13일 서훈 국정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의 상황 변화는 그동안 한·미·일 세 나라가 긴밀하게 공조해 온 결과로 평가한다”고 말하면서 일본의 역할이 있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한반도 평화 안착을 위해서는 주변국들의 지지와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이 자신들의 공이라고 여기는 듯한 태도는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외신들은 문 대통령의 외교 기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미국 CNN은 공식 SNS 계정을 통해 “트럼프와 김정은을 동시에 이끈 한국 지도자의 외교 기술은 찬사를 받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대화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세계사에 기록될 큰 사건이다. 한반도 평화를 주도하고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국가와 지도자는 역사적으로 높게 평가 될 것이다. 이제 대화의 첫 걸음을 뗐지만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은 이미 적지 않은 결실을 맺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게 이 결실은 ‘담 넘어 온 감’과 같다. 하지만 감의 주인은 한국이다. 우리 땅에 평화의 씨앗을 뿌렸고 가지가 이웃집 담장을 넘을 만큼 결실이 커졌다. 결실이 담장을 넘었다고 해서 자신의 것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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