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자유주의 형성과 하나가 된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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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경의 인문 책방…에릭 홉스봄 <자본의 시대>

유럽의 식민주의적 팽창과 자유주의 세계의 갈등에 대해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8-03-24 12:09:39

타계한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장기 19세기’ 시리즈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책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해 19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마무리되는 이른바 ‘장기 19세기’. 연대기적 의미를 넘어서 이 긴 ‘19세기’를 특징짓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유주의’ 세계의 팽창 혹은 자유주의 세계의 헤게모니 획득이 아닐까.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서구 자유주의의 제도적 틀이 뿌리내린 핵심 시대인 19세기 중반을 다룬다.

1848년의 혁명과 자유주의의 체제확립

19세기는 특정 이념이나 제도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주의’가 크게 유행했던 시대다. 자유주의, 공화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등.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거대한 격동 속에서 시작된 19세기는 1840년대 이후로 새로운 제도적 틀을 형성해 가게 된다.

그 출발 중 하나는 유럽의 1848년 혁명으로 나타났다. 세계사에서 유래 없을 만큼 거대한 전 대륙적 혁명운동이 폭발했고 급진적 지식인들, 가난한 노동자들이 봉기에 열광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단연 혁명의 선두에 선 이들은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다.

1840년대는 유럽에서 노동자 및 실업자들의 빈곤이 ‘사회적 문제’라는 이름으로 크게 이슈가 된 시대였다. 소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에 대한 묘사가 그랬듯 가난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책임과 제도적 안전망 설치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1848년 혁명의 바리케이트 투쟁을 통해 이 위기를 자기해방의 기회로 전면화했다.

한편, 1848년의 혁명은 가파른 확장력만큼이나 빠르게 식어갔다. 급진파들은 혁명의 패배와 함께 크게 위축됐고 체제는 자유주의적인 프레임을 따라 또 다시 진화해 갔다. 혁명 후 유럽을 지배한 가장 기본적인 경제정책은 무역 자유화의 방침이었다.

자유무역의 주된 혜택은 영국이 가져갔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 역시 무역자유화를 통해 적지 않은 경제적 혜택들을 가져갈 수 있었다. 시장을 지배한 마인드 역시 ‘경제적 자유주의’였다. 당대의 지식인과 관료들에게 있어서 침해되지 말아야 할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영업의 자유’였다. 가능하면 어떠한 규제나 장벽도 없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간주됐다.

하나를 꿈꾼 자본주의 세계

당대 자본주의의 진화를 상징한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철도 건설이었다. 철도 건설은 19세기 중반 거대한 붐을 형성하며 멀리 떨어져 있던 수많은 도시들을 연결했다. 통신기술의 발달 역시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기폭제가 된다.

이런 진화는 생활현실에서도 많은 변화를 수반했다. 철도의 사용으로 ‘여행자’(traveller)라는 새로운 개념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철도를 통해 문명권 너머의 세계로 이동해 갔다. ‘여행자’는 이렇듯 문명과 (비)문명권으로의 이동을 감행하는 일종의 탐험자와 같은 이들을 일컫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통신기술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열었다. 19세기에는 하나의 통합된 세계에 대한 상상이 나타났다. 이 하나의 ‘세계’에 대한 꿈을 언어적으로 표방한 것이 에스페란토어였다. 사회주의자들은 제1인터내셔널을 창립하며 노동자들 간의 전 세계적인 통일 조직을 꿈꿨다.

동요와 갈등 속에 뿌리내린 자유주의

이렇듯 이 시대는 기술발전을 통한 이른바 ‘진보’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자유주의적 제도와 틀이 강력하게 뿌리내린 시기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거대한 혁명과 봉기들을 수반했고, 온건 자유주의자들은 이 투쟁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제도화할 필요를 느꼈다.

프랑스혁명 후 나타난 체제변동과 궤를 같이하며 새로운 도덕성과 가족모델이 강조됐다. 전통적 공동체 모델들이 해체된 후에 체제주도권을 쥔 부르주아들은 어떤 도덕성을 갈망했을까. 아마도 이들은 산업화된 자신들의 문명권과 비문명권을 구분하고자 했을 것이다. ‘교양’이라는 것이 백인들의 새로운 도덕적 규율을 표방하는 준거로 등장했고, 야만에 대한 거대한 혐오와 결합해 비(非)백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오를 양산했다.

요컨대, 1840년대로부터 1870년대에 이르는 30여 년간의 시대는 거대한 격동의 시대이면서 또한 새로운 시대의 틀이 형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자본의 유래 없는 팽창이 수반되면서 동시에 부르주아들의 생활관습과 제도가 강력하게 뿌리 내린 시기. 이 변화의 흐름들은 20세기의 세계사를 지배한 자본주의의 기틀을 규정하는 과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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