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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해 주야로 60일간 쌓은 토산이 허물어지며 안시성을 덮쳐서 생긴 무너진 성의 틈새로 고구려 군사 수백 명이 나와 토산을 공격해 점령해버린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 태종은 안시성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토산을 재점령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당 태종은 장수들에게 토산이 아니라 안시성을 공격하라 명령했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도 이길 수 없었다는 이상한 기록을 남겼다.
또한 매우 이상한 점은 춘추필법의 중국사서와 이를 그대로 인용한 ‘삼국사기’에 토산을 빼앗기고 얼마 후 “황제는 요동지방은 일찍 추워져 풀이 마르고 물이 얼기 때문에 군사와 말을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없으며, 또한 군량이 떨어지려하므로 안시성에서의 철수를 명했다”는 기록이 느닷없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 태종이 철수명령을 내린 9월 18일은 양력으로는 10월 말로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오기 전으로 물이 얼려면 아직 시기상조이다. 얼마 전 이도종과 고연수가 평양성으로의 직접 진군을 건의했을 때, 장손무기는 천자의 안전한 친정을 위해서는 안시성과 건안성을 차례로 함락시킨 후 평양성으로 진군해야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때는 전혀 추위 걱정을 안 하더니 왜 지금은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도 전에 추위 때문에 철수해야한다고 갑자기 바뀐 걸까.
철수의 또 다른 이유가 군량 부족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5월 중순에 요동성을 함락시키고는 50만 섬의 양곡을 얻다. 6월 23일 고연수 등이 항복하면서 노획한 소 5만 두와 말 5만 필이 있고 그 외 군량도 많았을 텐데 군량이 떨어지려 한다는 기록은 허위이며 뭔가 진실을 숨기려고 둘러댄 위장 기록인 것이다.
게다가 이어지는 철수과정도 가관이다. “황제는 철수에 앞서 먼저 요주(요동성)와 개주(개모성)의 주민을 선발해 요수를 건너가게 하고 군사를 동원해 안시성 밑에서 시위를 하고 돌아갔다. 성 안에서는 모두 자취를 감추고 나오지 않았다”며 “성주가 절을 하며 작별을 고하자 황제는 그가 잘 싸워 성을 지켰음을 가상히 여겨 겹실로 짠 비단 1백 필을 내려줘 임금에 대한 충성을 격려했다”고 기록돼 있다.
철수하기에 앞서 약 5만 명의 주민을 당나라로 이주시킨 후 떠나겠다고 시위하는 당 태종에게 절하며 작별을 고하는 안시성주에게 임금을 섬기는 충성심이 갸륵하다면서 비단 100필을 하사했다는 이 기록은 지나가던 소가 웃을 기록이다.
이런 식으로 젊잖게 석별의 예의를 다하는 장면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당 태종은 적에게도 성덕을 베푸는 위대하고 인자한 황제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여하튼 안시성에서 1~2차례 소규모 국지전을 벌이다가 2달이나 걸려 쌓은 토산을 빼앗긴 당 태종이 추위와 군량 때문에 안시성에서 갑자기 철수했다는 중국기록은 마치 만취한 사람의 필름이 끊어지듯 뭔가 안시성에서 당 태종이 갑자기 철수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상황이 모두 생략된 것이 분명하다.
중국에서는 설연타(薛延陀)의 공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 태종이 철수했다고 하나 그걸 뒷받침할 역사기록은 없다. 또한 내부에서 변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사연인 즉은 연개소문과 정예병 3만이 남으로 장성을 넘어 상곡(上谷)을 습격하니 당시 어양에 머물고 있던 당나라 태자가 놀란 나머지 급하게 올린 변란 발생 봉화가 그날 당 태종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철수의 주된 이유가 될 수 없다.
‘태백일사’에는 “막리지(연개소문)는 수백의 기병을 거느리고 순시하며 난파에 주둔하면서 전황을 보고받고는 사방에서의 총공격을 명령했다. 고연수 등이 말갈과 더불어 협공하고 양만춘은 성에 올라 전투를 독려하니 사기가 더욱 떨쳐 모두 일당백이었다”며 “이기지 못함을 분하게 여긴 이세민이 감히 싸우려고 진을 나서자 양만춘이 소리를 지르며 활을 쏘아 이세민의 왼쪽 눈을 맞혔다. 말에서 굴러 떨어진 이세민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군사들 틈에 끼여 도망쳤다”고 당시 상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안시성에서 당 태종의 갑작스런 철수가 아닌 퇴각의 이유는 일찍 추워지는 겨울과 떨어져가는 군량 때문이 아니라 안시성주 양만춘이 쏜 독화살이 당 태종의 왼쪽 눈을 맞혔기 때문이다.
위국휘치(爲國諱恥) 즉 나라를 위해 수치를 숨긴다는 춘추필법의 사필원칙에 입각한 중국사서들은 이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기에 지금 중국인들은 당태종이 안시성에서 애꾸가 된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 태종이 요동정벌에서 돌아온 지 4년 만에 죽었다. 그 사인에 대해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이 각각 내종(內腫)·한질(寒疾)·이질(痢疾)로 서로 달리 기록했다. 이는 그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모두 요동에서 얻은 병 때문이라고 일치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당 태종은 양만춘이 쏜 독화살의 후유증으로 죽었음이 분명하다.
양만춘의 쾌거는 ‘태백일사’의 기록과 구전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의하면, 목은 이색의 정관음(貞觀吟)에는 “이는 주머니 속의 물건이라고 하더니만, 눈에 화살이 떨어질 줄 누가 알았으랴”고 했다. 노가재·김창흠의 천산시(千山詩)에 “천추에 대담한 양만춘이 규염(虯髥)의 눈동자를 쏘아 떨어뜨렸네.”라고 읊었다고 기술돼있다.
2007년 5월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당 태종이 안시성에서 눈에 화살 맞는 장면이 방영되었을 당시 필자는 중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잘 알고 지내던 중국인들이 필자를 만나면 씩씩거리면서 “한국 방송국들은 어떻게 정사에도 없는 남의 나라 황제(당태종)가 눈에 화살 맞는 드라마를 마치 역사적 사실인양 방영할 수 있느냐?”며 항의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드라마 연개소문이 수입되어 중국 여러 방송사에서 방영되자 많은 중국인들이 격분했다고 한다.
또한 위 ‘태백일사’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15만 고구려 지원군이 당 태종의 일격에 와해되자 고연수 등이 군사를 이끌고 항복한 후 항상 분개하고 한탄하다가 얼마 후 화병으로 죽었다는 중국기록 역시 위작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항복 이후 고연수의 태도가 그랬다면 당 태종에게 안시성은 함락시키기 어려우니 대신 평양성으로 직접 진군하자는 건의를 했겠는가 말이다.
또한 만일 그런 상황이었다면, 총사령관인 연개소문이 분명 안시성에 나타났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공불락의 요새로 입술 위치에 있는 안시성이 함락된다면 목젖 위치에 있는 도성(평양성)이 매우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연개소문이 요동의 전투를 양만춘과 추정국에게 맡기고 자신은 당 태종이 도망갈 퇴로를 미리 점검하고 있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고연수의 항복 기록은 완전 조작된 허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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